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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6.22 16:20 수정 : 2005.07.26 19:19

정진환 연세대 <연세춘추> 기자

시험이 끝났다고 방학이 오는 건 아니다. 이 땅의 모든 성적은 억울하다. 방학 초입 성적 정정 기간은 대학생들의 중간, 기말시험에 이은 또 하나의 대전이다. 그곳의 암호명은 이렇다.

읍소형= 눈물을 흘려라, 그럼 열릴 것이다. “졸업 못 해요.” “장학금 못 받아요.” “아, 어머니가 저보고 군대나 가래요!” 최근에는 새내기들조차 전공 승인을 빌미삼아 읍소를 즐긴다나 뭐라나. 학점이 시들시들(C나 D학점) 후들후들(D나 F학점)하면 작전이 대체로 먹히지만 핀잔은 물론 되레 성적이 깎이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래도 가장 상투적인 게 가장 현실적인 것. A학점도 억울한 학생이 밤늦게 김아무개 교수를 찾아가 자신의 드라마와 같은 인생역로를 모두 털어놓으며 눈물어린 밤을 지샌 끝에 결국 A+를 받아냈다는 서울예대의 전설은 어느 대학에나 있는 전설이다.

자학형= 재수강 상한선이 설정돼 있는 대학에 많다. 학칙에 따라 C+ 또는 D학점 이상을 이수한 학생들은 해당 과목을 재수강할 수 없다. 빼도 박도 못하느니 버리겠다는 것. 학생들은 교수님 발목을 잡고 차라리 F를 달라고 사정하는 진풍경을 벌인다. 고려대는 모든 과목이 F학점일 경우, 등록금을 되돌려주는 희귀한 제도 덕분에 그런 유형이 등장하기도 한다고.

배째라형= 만만한 게 출결인가 보다. “저 이날 결석 안 했는데 결석 처리되어 있어요” 등등 무조건 우기고 본다. 이 경우 고통받는 이는 결국 교수와 학생 사이에 낀 조교다. 이화여대 김유선 조교(26·한국음악학)는 “결석 처리됐는데 출석했다며 찾아오는 학생들 보면 정말 난감하다”며 “웬만하면 믿으려고 하지만 사실, 거짓말인지 다 보인다”고 전한다. 대학생들, 혹시 돈 받고도 안 받았다고 우기는 ‘모르쇠’ 정치인들을 뉴스에서 보고 배운 건 아닌지.

하지만 대학들 대부분 상대평가 제도를 적용하고 있어서 성적 정정신청이 있어도 명백한 이유 없이 교수 재간으로 성적을 올리기 힘들다. ‘A 학점은 상위 30%, B는 상위 50%까지’ 하는 식으로 각 학점의 최대 인원이 정해져 있다. 그 비율을 넘어선 성적의 전산 처리 자체가 아예 불가능하게끔 학사 시스템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A-를 A+로 올려준다든지 하는 ‘배려’만이 가능하다. 20년 넘게 서울대 등에서 인문교양 과목을 강의해온 최아무개(65) 강사는 “과거 절대평가를 할 때만 하더라도 마음대로 학생들에게 좋은 학점을 줄 수 있었는데 그놈의 상대평가 때문에 이젠 그럴 수가 없다”고 말한다. 실제로 2003년 ㅇ대학의 한 시간강사가 학점을 올려달라고 청탁한 학생의 성적을 다른 학생의 것과 ‘스와핑’한 사실이 인터넷을 통해 알려진 탓에 징계를 받는 등 곤욕을 치러야했다.

연세대 김태현 교수(경영학)는 “성적 정정기간이 괴롭다”고 하소연한다. 이런 소리는 여기저기서 나온다. 그러면서 뛰는 학생들 위로 나는 교수들 반드시 나타난다. 성적 정정기간이 거의 끝날 무렵 성적을 알리거나 정정 기간 중 아예 휴대폰을 꺼놓고 잠적하는 것. ‘핸드폰이나 방문을 통한 이의제기는 절대로 불가하오니 반드시 상기된 이메일 주소를 통해서만 하시기 바랍니다’라는 내용의 그 흔한 공고문은 차라리 낫다. 하지만 “리포트나 출결, 시험 평가 기준이 명확하다면 때마다 교수들을 괴롭히는 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문은선(서강대 신문방송학 2년)씨의 말처럼 반드시 잘못이 학생에게만 있는 것은 아닐 터.

진정 학점이 부당한 경우도 적지 않을 것이다. 서술형 시험이 많아, 직접 답안지와 모범 답안을 비교하는 기회로 정정기간을 활용하는 보기 드문 학생들도 있고 아예 대놓고 교수나 강사, 조교 등에게 로비를 하는 경우도 있다. 또 하나의 인성평가가 정정기간에 이뤄지는 셈인데, 객관적으로 소통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청탁이나 동정 등이 작용할 여지가 있는 오프라인보다는 철저히 온라인상으로 성적정정이나 확인작업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대다수 학생들의 의견은 그래서 나온다.

정진환 연세대 <연세춘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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