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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6.22 18:12 수정 : 2005.06.22 18:12

제 갈 길 가게 냅두면 된다
난 그저 즐길뿐이다

임범 문화부장이 기어이 한 소리 한다. 딴 말만 하지 말고 대중문화 얘기 하라니까. …맞다. 이 지면은 그걸 쓰라고 내어 준 곳이다. ……없다, 할 말이. 대중 문화는 그저 제 갈 길 멋대로 가게 냅두면 된다. 알아서 가는 대중들의 문화, 옆에서 지도편달하는 말들이 공허하다. 이제 문화에 지침이 필요없는 시대다. 그냥 간다. 바라던 바다.

예술의전당에서 오페라를 봤다. 평론가 말로는 아주 훌륭한 스태프들과 배우란다. 평론가와 친한 어떤 교양인이 평론가 옆에서 말한다. 떳떳지 못한 주인공들의 사랑이 너무 슬프고, 몸종의 재롱이 재미나서 배꼽 빠졌단다. …피 나겠다. 촌스런 스토리에 하품만 해대고, 노래 부르는 배우의 삑사리 난 음을 들으며 한 건 건진 듯 낄낄대던 난, 그의 감흥을 들으며 헛웃음을 흘렸다. 100년 전 이태리 사람들의 이야기와 노래를 가슴 절절히 바라보는 그 교양인에게 권했다.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라니까. 그는 텔레비전을 보지 않는다. 바쁘단다.

과천 국립 미술관을 갔다. 평론가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유명한 화가들의 그림이 늘어서 있다. 예술가를 흠모하는 또 다른 교양인이 벽에 걸린 그림 하나 하나를 고개를 끄덕이며 바라본다. 요즘 화가들이 그림이 안 팔려서 먹고 살기 힘들다며, 그림 한 점 사는 데 인색한 한국인의 문화적 피폐함을 한탄한다. …비싸잖아. 미술사적 가치 빼고는 별 매력도 없는 대다수의 벽걸이용 그림 속을 바삐 헤쳐 걷는 나는, …아, 욜라 다리 아프다. 그 많은 그림 한점 한점을 원거리 근거리 감상을 하는 땀방울 맺힌 교양인을 애처롭게 바라봤다. 그리고 그의 손을 다정히 잡아 끈다. 만화가게 가자. 그는 만화를 보지 않는다. 바쁘단다.

이렇게 문화는 고급과 저급으로 나뉘어져 왔다. 이 둘간의 간극이 바로 현재 문화 지식인과 문화 대중의 간극이다. 문화 지식인들 아니, 교양문화인들은 바쁘다. 예술의전당을 가야하고, 국립 미술관을 가야 하고, 교보문고에 가야 한다. 그래서 텔레비전, 만화를 볼 새가 없다. 그들의 비상업적이고 순수한 문화취향을 탓할 바는 아니다. 헌데 그간에 한국의 대중문화를 주도해 왔던 이들이 바로 이 교양 문화인들었단 사실에 뒷골이 땡긴다. 아직도 교양문화인들은 무질서하고 난잡하고 천박한 대중 상업 문화에 대해 훈계하고 교육시키려 한다. 자끄 라깡을 들먹이고 들뢰즈를 들이 민다. 뭐래냐, 쟤? 안 먹힌다. 그들 교양언어 들을 시간에 차라리 욕설 난무한 인터넷 리플보러 간다.

그에 비해 문화 대중은 오페라도 보고 전시회도 가고 책도 읽을 뿐만 아니라, 텔레비전과 만화까지 즐긴다. 그 많은 일을 하면서 아직도 심심하다고 여유를 부린다. 오늘날 교양문화인들이 문화대중을 따라 잡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화 지식인들의 문화는 교양이지만, 대중들의 문화는 심심풀이 유희다. 문화를 공부하는 자는 문화를 즐기는 자를 따라 올 수 없다.

문화의 다채로움을 격없이 즐기며 이를 해석하고 재창조해내야 할 문화 지식인들은 100년 전의 서양 귀족문화의 척도 속에서 몸부린친다. 그들은 일상대화에서조차 자신의 말을 하지 않고 유명 작가와 철학자들의 문장을 나열한다. 내가 그들 좀 안다. 성품이 가식적이고 현학적인 사람들은 아니다. 그저 촌스럽고 무식할 뿐이다. 이사도라 던컨의 연애사는 줄줄이 꿰고 있으면서, 이효리는 이름만 들어 봤다는 무식한 사람들. 안됐다.

인터넷은 한국 대중문화의 주체를 바꿨다. 소위 문화예술 전문가라 일컫는 이들 교양 문화인들의 조직적인 계몽교양문화를 밀어냈다. 개별적이고 무질서한 익명의 대중들이 내뱉는 단발적이고 다발적인 게릴라 문화 시대를 불러 왔다. 난 좋다.


다소 거칠고, 감정적이고 유치해도 난 지금의 대중 문화가 좋다. 정제되지 않고 막 되먹은 대중들의 문화 행태가 난 좋다. 걱정 할 바 없다. 나라 안 망한다. 이리저리 놀고 싸우다가 가만히 그들의 철학과 윤리를 만들어 내는 우리 문화 대중이 난 참 좋다. 그래서 난 대중 문화에 할 말 없다. 그저 즐길 뿐이다.

인정옥/ 드라마작가, <네 멋대로 해라> <아일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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