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6.22 18:40
수정 : 2005.06.22 18:40
대구에서 <한겨레>는 별난 신문이다. <한겨레>를 받아 보는 사람들도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는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아예 배달이 안 되는 동네도 있었다고 한다. 그런 대구에서 나는 창간 때부터 <한겨레>를 꼬박꼬박 받아 봤다. 거창한 명분을 들먹거리며 주위 사람들에게 <한겨레>를 자주 권하기도 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턴가 조금씩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나야 관성 때문에라도 버릇처럼 <한겨레>를 읽지만, 주위 사람들한테 자신있게 <한겨레>를 권할 수 있을지 망설여지기 시작한 것이다. 사명감과 역사의식이 희미해진 탓일까? 그럴지도 모를 일이지만 꼭 그것만은 아닌 것 같다. 깐깐하게 진보적인 기사에 탄탄한 편집까지, 한마디로 <한겨레> 뺨치는 경쟁 상품들이 생겨난 것이다. 종이 신문만이 아니다. 인터넷 신문들도 매우 위력적이다. 대표적 진보지라는 자격과 명예를 <한겨레>가 독점해야 한다는 법도 따지고 보면 없다. 신문 하나 골라 보면서 묵직한 사명감이나 역사적 의미를 논하는 것이 쉽지 않은 시대이기도 하다.
그렇게 고민하던 차에 <한겨레>의 제2창간 운동 소식을 접했다. “바로 이거다!”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필자의 걱정이 통한 것 같아서 반갑기도 했다. 그렇다면 제2창간 운동은 외부 선언용이어서는 안 된다. 자본금 확충도 중요한 숙제지만 꼭 그것만을 위한 것이어서는 곤란하다. 일차적으로는 내부 다짐용이고, 자기 혁신을 공개적으로 선언하는 것이어야 한다. 기자와 경영자가 근본적인 자기성찰을 통해서 더 나은 양질의 신문(퀄리티 페이퍼)을 만들어 내겠다고 약속하는 제2 창간 운동이 아니면 안 된다.
그래서 더 프로다운 신문, 치열한 신문으로 재탄생해주길 바란다. 습관 때문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를 만날 때의 기대와 설렘으로 찾는 신문일 수 있길 바란다. 17년 동안 이땅에 민주주의를 연 <한겨레>였던 것처럼, 앞으로 민주주의 이후 시대를 새롭게 열어가는 제2창간 <한겨레>이길 바란다. 족벌신문들에 치떨면서 달리 대안이 없어 손이 가는 진보신문이 아니라, 여러 진보 매체들 가운데서도 특별히 괜찮고 신뢰할 수 있는 진보신문이 되어 주길 바란다. 그럴 때에만 주주 추가 모집도, 자본금 확충도 의미있는 일일 것이다. 17년 전 민주주의와 언론자유를 열망한 뭇 사람들의 기대를 모아 내 성공시킨 것처럼, <한겨레>는 과감한 자기혁신을 통해 지금의 어려운 과제를 뛰어넘어 제2 창간을 성공적으로 이뤄내길 기대한다. 옳은 길에는 늘 따르는 이들이 있는 법이니, 광범한 지지가 몰려올 것을 믿으면서 말이다.
홍덕률/대구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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