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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6.24 17:51 수정 : 2005.06.24 17:51



‘어쩌다’ 발 담근 출판사
17년만에 ‘사령탑’ 올라

1989년 졸병 디자이너로 입사해 지난 8일, 17년 만에 최고 사령탑에 오른 민음사 박상순(43) 편집인 대표이사. 흔한 일은 아닌지라 출판동네 안팎의 눈길이 쏠린 것은 당연. 23일 강남구 신사동 자신의 집무실에서 만난 박사장은 얼굴 한가득 주름지며 웃는 모습이 천진(?)했다. 일주일 전 전화통화에서 준비된 답변만 늘어놔 뺀질이일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박상순 표가 뭐냐고?
문학을 우선순위 삼겠다
편집자 ‘사오정’ 안타까워
“내가 하나의 가능성이길”

그러나 몸풀기가 끝나고 질문에 들어가자 역시 준비된 이야기를 쏟아냈다.

“미대 회화과를 나왔다. ‘어쩌다’ 출판사 직원이 되었고, 미대 출신이라고 ‘표지 디자인 해 볼래?’ 해서 최승호, 박영한, 정현종 등 작품집 디자인을 했다. 91년 ‘우연히’ 시인이 되어 문인들과 교류가 자연스러워졌다. 디자인, 제작, 편집 등 고루 거쳐 98년부터 주간이 되어 지금에 이르렀다.” 우선 자신의 이력을 뀄다.

“편집자는 사오십이 넘으면 회사를 나가야 한다. 독립해 출판사를 차리면 모든 과정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 그렇게 전문성을 펼칠 기회를 놓치는 게 현실이다. 그 점에서 나는 행복하다. 하나의 가능성으로 비쳤으면 좋겠다.” 의미까지 정리해놓고 ‘더 물어볼 것 있으면 물어봐’라는 투로 기자를 건너다 보았다.

-디자이너로서는 어땠나?


=표지 디자이너는 작품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것이다. 거의 모든 책이 내 손을 거쳤다. 500여권 정도? 거친 손놀림을 드러내 사람냄새가 나도록 했다. 다행히 작가들이 만족스러워하고 독특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사람들이 보르헤스전집 표지를 많이 기억하더라.

-시인이지요?

=3권을 냈다. 이것도 시냐, 새롭고 좋다, 등 평가가 엇갈린다. (대표작을 말한다면?) 데뷔작 ‘빵공장으로 통하는 철도’는 가난한 유년기의 기억을 몽환적으로 표현했다고 해석들을 한다.

-까놓고 얘기하면 월급쟁이 대표이사 아닌가.

=내가 편집인 대표이사가 된 것은 민음사라는 출판그룹 관점에서 경영 다각화의 일환이라고 본다. 박근섭 발행인 대표이사가 전체 운용을 맡고 나를 포함해 자회사 대표이사는 거기에 종속되어 있다고 봐야 한다. 기획·편집 부문은 전권이 주어져 있다. 그렇지만 경영범위 안에서다.

-어떻게 꾸려나갈 생각인가.

=전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한권씩 쌓인 책들이 민음사의 자산이다. 당장의 반응보다는 오래 읽히는 책을, 작은 책이라도 최선을 다해 잘 만들 것이다. 상업성에 연연하지 않을 것이다.

-박상순 표는 뭔가.

=문학을 우선 순위로 삼을 것이다. 2~3년 기획으로 시, 문학이론 전집을 낼 생각이다. 젊은 작가들, 실험적인 작품에 많은 기회를 줄 것이다. 프로젝트별로 젊은 자문기획위원을 꾸릴 것이다. ‘오늘의 작가’, ‘오늘의 시인’, ‘현대 사상의 모험’ 총서도 재정리해야 한다. 영·프·독에 편중된 번역물도 슬라브어권, 이탈리아 쪽으로 폭을 넓힐 것이다. 인문사회 전문이란 초심을 집중 심화하는 동시에 실험을 할 것이다.

“내년 이맘때 것까지 고민해야 하니 걱정거리가 많아졌다”는 그는 편집자들이 10년 20년 마음 편하게 일하는 선례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한번 더 피력했다. 편집자 목소리를 담아낼 모임이 만들어졌으면 한다는 뜻을 조심스럽게 말하고 정작 자신은 그 자리에 낄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웃었다.

“출판 불황을 얘기하는데 열정을 가지면 타개 방안은 있다. 새로운 독자와 장르를 개발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각각의 분야는 분명 정해진 독자가 있다. 문제는 사랑이다. 출판인들이 원고를 사랑으로 대하고 그 사랑이 구현되면 독자도 사랑의 힘으로 넓혀질 것이다.”

시인이자 출판사 편집인 대표이사인 인간 박상순이 결국 시인임을 확인해 주는 맺음말. 선망어린 시선이 쏠린 그가 계속 편집자들의 꿈으로 남을지는 오로지 그의 몫. 엘리베이터 앞에서 돌아서 들어가는 그의 어깨가 외로웠다.

글·사진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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