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5.06.29 16:28 수정 : 2005.06.29 16:28

김강지숙 <이대학보> 기자

시계주얼리학, 커피바리스타 전공, 마술 전공…. 학원 강좌가 아니다. 정규 대학들이 올해 새로 문을 연 ‘이색학과’명이다.

다양한 학과들이 만들어지는 이유는? 물론 취업이다. 올해 시계주얼리학과를 신설한 동서울대학에서 홍보기획을 담당하는 김재훈(31)씨는 “전문성을 강조한 취업이 이색학과의 목적”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거기엔 학과 경쟁을 넘어서 학생을 유치하기 위한 학교 경쟁이 내포돼 있다. 특정 직종에 맞는 ‘맞춤형 인간’을 만들어내기 위한 대학들은 신자유주의 시대 취업전선의 첨병 노릇을 하고 있다.

사실 ‘학과 춘추전국시대’가 시작된 지는 오래다. 고등학생 수와 대학 입학정원이 비슷해졌기 때문이다. 학생들도 취업과 적성이란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는 점에서 환영한 지 오래다. 동아방송대 음향제작과의 정정인(음악녹음전공 2년)씨는 “학과들이 상당히 세분화한데다 취업에 직결되는 수업을 해서 좋다”고 말한다.

하지만 정작 학과들, 적자생존하지 않을 수 없다. 사회의 요구에 적중해야만 진정한 학과로 거듭난다. 대구한의대 화장품 약리학과는 한방화장품·천연화장품을 연구하는 ‘웰빙맞춤형과’다. 95% 이상의 취업률을 기록한 이 학과는 웰빙바람을 타고 급속도로 인기를 얻었다. 현재는 학내 화장품 공장을 세울 정도로 성장했다. 지난해 만들어진 경북과학대학의 이종격투기과는, 이종격투기의 인기와 맞물려 더욱 눈길을 끌어 모은다. 김혜림 교수(이종격투기 전공)는 “경보·보안 쪽에 수요도 많고 커리큘럼도 안정돼 학생들의 만족도가 높다”고 전했다.

하지만 물 잘 만난 학과들은 이내 공급과잉이란 또 다른 벽을 만난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이색학과로 손꼽히던 부동산학과나 게임과는 우후죽순, 이제 넘쳐난다. 올해 초 건국대 부동산학과를 졸업하고 부동산컨설팅을 하고 있는 황아무개(25)씨는 “몇 개 없던 부동산학과가 인기를 얻자 여기저기서 비슷한 학과들이 생겨났다”며 “이색학과의 장점은 희소성에 있는데 앞으로는 취업이 예전 같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청강문화산업대 김완식(게임과 2년 휴학)씨는 “비인기 대학들이 살아남기 위해 다른 학교의 인기학과를 따라 전공에 대한 상세한 이해 없이 만드는 경우도 많다”며 안타까워한다. 당연히 공주영상정보대학의 문화예술마케팅과처럼 살아남지 못한 경우도 생긴다. 이곳은 올해 폐과됐다. 수요가 받쳐주지 않은 탓이다.

학교는 새 학과를 선점하기 위해 눈을 부릅뜨고 틈새를 뒤진다. 고대 안암병원에서 장례사로 일하고 있는 장아름(25)씨는 99년 만들어진 서울보건대 장례지도과의 첫 졸업생이다. 취업률이 대단한 과다. 그는 이 학과의 성공요인을 “처음으로 장례관련 직업을 학과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사람들이 흥미를 느낀 것 같다”고 설명하며 “장례 쪽 직업들이 돈을 많이 번다는 소문을 듣고 온 사람들이 많다”고 덧붙였다. 기 막힌 틈새공략이었던 셈이다.

이처럼 학과들의 춘추전국시대에는 단기간 군웅에 들어서는 학과가 있는 반면, 칼도 꺼내 보지 못하고 스러져간 학과도 있다. 경북과학대학 직원 황호법(36·홍보과)씨는 “이색학과가 많아졌다고는 하지만 학생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경우도 많다”고 말한다. 이색적인 이름을 내걸고 시작한 학과들이 해마다 이름을 바꾸다가 결국 고유의 색깔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생존을 위해 주변 환경에 따라 몸을 변형시키는 아메바처럼, 대학들도 이제 사회의 변화에 제 몸을 맞춘다. 대학은 더이상 학생들이 안온하게 머물 상아탑이 아니다. 학생들도 탑 아래 세상을 살아갈 날 선 칼을 먼저 원한다. 그 무기가 이내 휘어지거나, 녹슬어 버린다면? 아, 커피바리스타학은 나주대학에, 마술전공은 동아인재대학에 있다.


김강지숙 <이대학보> 기자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