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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6.29 16:30 수정 : 2005.06.29 16:30

조선후기 화원 화가 이인문이 그린 <미인도>. 겨드랑이 살이 보일 정도로 저고리가 짧고 소매통은 팔이 낄 정도로 좁다. 반면 잔주름 잡힌 치마는 풍만해 위는 갸날프고 아래는 풍성한 당대 여성 옷의 얼개를 보여준다.

(23) 옛 저고리

“지금 부녀들의 옷은, 저고리는 너무 짧고 좁으며, 치마는 너무 길고 넓어 요사스럽다. 새로 생긴 옷을 시험 삼아 입어보았더니, 소매에 팔을 꿰기가 몹시 어려웠고, 한번 팔을 구부리면 솔기가 터졌으며, 간신히 입고 나서 조금 있으면 팔에 혈기가 통하지 않아 살이 부풀어 벗기 어려웠다. 그래서 소매를 째고 벗기까지 하였으니, 어찌 그리도 요망스런 옷일까!”

18세기 실학자 이덕무는 저술집 <청장관전서>에서 신랄한 어조로 당시 선풍을 일으켰던 여인네들의 미니 저고리 패션을 질타하고 있다. 오늘날 미니스커트처럼 너나 할 것 없이 경쟁하듯 저고리 길이를 가슴께까지 줄였던 당시 유행은 어느 정도 외래 사조에 깨어 있었던 실학자를 포함한 남성 사대부들에게 무척 마뜩찮았던 모양이다. 그러나 몸에 대한 과시의 욕망을 되물림하는 패션의 역사에서 이런 풍토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인간적 현상이기도 했다. 사회적 생산력이 높아지고, 문화적 기운이 융성했던 18세기에 여인네들의 옷이라고 이런 현실적 흐름에서 예외일 수는 없었을 터다.

저고리는 윗옷과 아랫옷을 나누어 입은 우리 겨레 고유의 복식생활에서 바지, 치마와 더불어 가장 핵심적인 의복이다. 복식 연구자들은 위 아래로 옷을 나눠 갖춰 입는 전통 복식은 고대 북방 유목민족이 이동에 편리하도록 만든 복식인 카프탄 양식에서 비롯됐다고 보고 있다. 특히 여성 복식은 이후 시기에 따라 윗옷인 저고리와 아랫옷인 치마의 얼개가 서로 조화를 이루면서 변천해왔기 때문에 조선후기의 미니 저고리 바람이 각별히 새삼스러운 현상은 아니라는 견해다. 실제로 삼국시대와 고려초 엉덩이선까지 처졌던 저고리는 몽골의 침입 이후 원 왕조의 영향을 받으면서 짧아졌다가 여말 선초에 다시 길어지는 전례가 있었다. 또 통일신라 흥덕왕 9년인 834년 계급별로 옷의 착용법을 담은 복식금제의 규정을 보면 저고리의 일종인 단의에 금라라는 고급비단을 사용했다는 기록이 나와 이미 그때부터 패션유행에 민감했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다.

저고리는 신라 때와 고려말, 조선초 중국풍 의복이 수입되었음에도 앞을 터 고름을 묶고 입는 옛 얼개를 지켜왔지만, 본격적인 유행 패션으로 얼개를 띠고 나타난 것은 역시 조선 후기다. 조선의 고유한 문화를 추구했던 진경 문화 의식이 난만하게 성숙하면서 몸과 의복에서도 나름대로 근대적인 디자인 감각이 싹튼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저고리는 신분 귀천을 막론하고 점점 짧아져 19세기에는 20cm 아래까지 내려가고 가슴을 가릴 수 없게 되자 별도의 가림띠까지 등장할 정도가 된다. 소매가 꽉 끼는, 극히 활동성이 불편한 옷이 되었지만, 치마가 대신 넓어지고 스란단 같은 장식물까지 붙게 되어 저고리의 조형적 아름다움은 극대화된다. 복식 연구자인 금기숙 홍대 교수는 <조선복식미술>(열화당)이란 저술에서 “조선 초기 저고리는 윤곽선이 직선의 조화를 보이는 반면 후기에 저고리가 짧아질수록 선율적인 굴곡이 가미되면서 유연한 곡선미라는 조선 특유의 미감이 강화되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저고리의 변천사는 길고 짧음에 대한 논란의 역사로 쉬 재단하기 마련이나 당대 회화와 출토 유물에 나타난 복식을 보면 조화와 균제를 중시하는 선조들의 미감이 어김 없이 관철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주목되는 것이 저고리와 치마의 함수 관계다. 저고리가 짧아지면 치마는 풍성해졌고, 그와 더불어 머리를 장식하는 가체(모조 머리장식)도 커졌다. 덧붙여 선조들은 삼회장이라 하여 저고리의 깃·끝동·겨드랑이·고름 등을 별도의 천을 대어 수놓으면서 부위별로 미세하게 색감, 디자인 등을 변형시켜 자유자재의 멋을 구사했다. 신윤복이나 이인상의 <미인도>나 윤두서의 <나물 캐는 아낙> 등에 나오는 풍속도는 이런 양상을 대변한다. 19세기에는 이런 양상이 세부화되어 소매 아래 부분인 배래선이 곡선화하고, 20세기초엔 다시 반전되어 희고 긴 저고리, 통치마가 유행하다가 지금은 다시 짧아지는 등의 변천을 거듭하고 있다. 서구 복식에서 18~19세기 허리가 잘록한 코르셋 패션에 이어 20세기초 몸매 선이 평평한 샤넬 룩이 유행했던 것처럼 전통 복식사에서도 비슷한 주기가 되풀이되었던 셈이다. 당대 지식인들은 옷의 미감에 대한 평가 대신 ‘의복의 요물’ ‘오랑캐 산물’이라고 폄하했지만, 어떤 시대 관념도 멋을 선호하는 원초적 욕망을 완전히 누르지 못한다는 사실을 저고리 변천사는 일러주고 있다.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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