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6.29 16:38
수정 : 2005.06.29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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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보드리야르 1992년 작 <뉴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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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속 이미지는 진실일가 왜곡일까”
세계 여러곳 여행하며
자연 풍경·도시 모습들
상징적 의미없이 찍어
“사진은 아무것도 아니니 아무 생각없이 보라” 주문
사진은 어디까지가 진실일까. 디지털 기법의 보급으로 현대 사진은 찍는 각도는 물론 콘텐츠까지 조작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사람들은 사진이 매체에 나오면 그 이미지를 진짜로 지레 단정해 버리기 일쑤다. 복제된 현실이 일상을 지배한다는 시물라크르 이론으로 세계적 철학자의 반열에 오른 프랑스의 장 보드리야르가 20여년간 사진을 찍은 건 이런 역설적 현실을 비틀려는 의지 때문이었다. 그는 “사진은 왜곡을 밥 먹듯 하는 매체다, 따라서 사진을 너무 믿으면 안 된다”고 말한다.
서울 통의동 대림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보드리야르 사진전은 가상현실의 문제점을 줄기차게 지적해온 이 철학자와 관객이 사진을 두고 벌이는 지적 게임장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컴퓨터 디지털 프린팅으로 인화한 사진들은 지나치는 주변의 일상 풍경을 슬쩍 찍은 것들인데, 통상적인 사진찍기의 어법과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순수한 이미지 채집가를 자처하며 찍은 이들 사진은 미국, 유럽, 남미 등 대도시의 폐허같은 뒷골목, 삭아가는 건물, 구조물의 단면을 찍은 것들이 상당수다. 뉴욕 뒷골목 붉은 빛 벽돌건물의 격자 구조, 포르투갈 바닷가 포구의 바닥돌, 바닷물에 잠기는 방파제의 일부분, 물잔에 거꾸로 투사되어 한 풍경으로 담긴 파리 바스티유 광장 등의 작품들은 노출시점, 촬영각도에 구애받지 않고 찍은 것들이다. 상파울로에서는 합성수지 차단벽의 울퉁불퉁한 곡면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는 컴컴한 뒷골목을 찍었고, 성당 의자바닥에 은은하게 비치는 황금빛 햇살을 잡아내기도 한다. 어떤 의미도 두지 않고 자신을 유혹하는 순수한 이미지 자체를 찍은 것들이라고 미술관쪽은 설명한다.
하지만 익숙한 듯 낯선 사진들이 작가의 희망처럼 단순히 보고 즐기는 차원으로 끝나지는 않는다는 것이 전시의 묘미다. 보드리야르는 우리가 흔히 보는 시선과 다른 독특한 지점에서 스냅사진 찍듯 대상물을 찍는다. 물속에 가라앉은 차에서 수면 위로 삐죽 튀어나온 차 문틀의 모습을 포착한 사진은 불가사의한 일상의 한순간을 보여준다. 그의 이미지 장난은 3층 들머리에 있는 ‘조각 같은 사람’이란 작품에서도 드러난다. 진흙을 온통 덮어쓰고 몸에 청색 진액을 칠한 알몸 여자의 모습은 연출사진 같지만 알고 보면 길거리를 가다 개그맨의 퍼포먼스를 그냥 찍은 데 불과하다. 그는 사진의 고정관념 즉 정확한 기록 재현이라는 의미를 의식하는 관객들의 뒤통수를 치는 작업들을 보여주는 셈이다. 하지만 앵글을 보는 그의 시선 속에 끼여든 욕망은 과연 실체가 없는 것일까. 전시장 해설사들은 생각 없이 보라고 강변하지만 전시장 벽에 붙은, 이미지의 순수성에 대한 보드리야르의 선문답같은 어록을 보면서 관객은 더욱 의미를 따지게 된다. 사진은 아무것도 아니니 아무 생각 없이 보라는 작가와 그의 철학적 행보 때문에 더욱 의미에 고심하는 관객들 사이의 미묘한 긴장과 간극이야말로 이 전시의 고갱이라고 할 수 있다. 17일까지. 매일 오후 2, 4시 전시설명회가 열린다. (02)720-0667.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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