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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6.29 17:07 수정 : 2005.06.29 17:07

[편집자주] 최근 영화 제작자들이 스타들의 제작 지분 요구 등을 문제삼고, 이에 배우들이 강력한 항의 표명을 하면서 영화계의 문제점이 수면위로 불거지고 있다. 한국 영상산업의 성장을 주도해온 영화계의 제작 현황과 문제점을 살펴보고, 이를 오히려 긍정적인 발전의 계기로 삼을 수 있는 대안을 3회에 걸쳐 제시해본다.



①스타시스템 의존 제작현실

캐스팅 0순위로 꼽히는 톱스타 A. 지난해 연말출연한 한 영화에서 개런티 5억원을 받았고 여기에 소속 매니지먼트사는 제작사의지분 30%를 가져갔다. 이 영화의 순제작비는 42억원으로 손익분기점은 170만명 가량은 되어야 하지만 영화의 총 관객수는 90만명에 못미쳤다. 하지만 차기작에서 A는 같은 개런티를 받았고 소속사의 지분 참여율은 오히려 50%로 올라갔다. 그런데 문제는 손실에 대해서는 책임지지 않는다는 것. 이 배우 소속사는 수익이 발생했을 때만 지분 30%를 적용받을 뿐 손실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았다.

충무로에 전에 없던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충무로 파워맨'으로 꼽히는 강우석감독이 톱스타들의 실명을 거론하며 쓴소리를 했고 이에 배우와 매니지먼트사는 감독에게 공식사과를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발단은 감정싸움으로 비춰지지만 배우와매니지먼트사에 대한 제작자들의 '서운함'은 이미 이전부터 터질 듯 팽배해 있었다.

제작자들의 모임인 제작가협회는 강 감독의 발언이 나온 다음날인 24일 이례적인 임시 총회를 준비하던 터. 이 때문에 원래 "전반적인 영화계의 문제점을 짚어볼"예정이었던 총회는 매니지먼트사를 성토하는 자리가 됐다.

톱스타 A의 경우에서처럼 제작사들이 입을 모아 비판하는 것은 높은 개런티와소속사의 공동제작과 지분 참여 요구다. 전체 수익의 절반 가량을 극장에 내어주고 남은 부분을 다시 투자사와 나눈 뒤 여기서 또 배우의 몫을 떼주기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니 웬만한 '대박'이 아니고서는 회사 경상비와 차기작 개발비 조차 남기기 힘든 처지다.


영화진흥위원회가 28일 발표한 '한국영화산업 수익성 분석과 투자활성화 방안연구'에 따르면 극장 수익성은 상승한 반면, 제작ㆍ투자사는 감소했다. 제작사들이 말하는 '스타 권력화'는 단지 스타배우의 경우에 국한돼 있지 않다. 지난 추석 개봉 기대작에 캐스팅 됐던 한 남자 배우는 촬영에 들어가기 직전 석연치못한 이유를 통보받고 다른 배우와 교체됐다. 교체된 배우는 이 영화의 남녀 주인공과 같은 소속사에 속한 배우였다.

매니지먼트사가 소위 '끼워팔기'로 조연배우 캐스팅 마저 독점한 사례다. 뿐만 아니다. 공동제작자로 참여한 스타배우의 영향력은 영화의 결말을 변화시키는 것으로까지 이어진다.

지난해 개봉했던 한 영화의 감독은 기자기사회가 끝난뒤 불쾌함을 감추지 못했다. 결말이 자신이 당초 설정했던 것과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 공동제작자로도 참여한 주연배우의 입김 때문이었다. 감독이 입을 닫는 선에서 봉합됐지만 영화는 결국 '디렉터스 컷'도 아닌 '배우의 버전'으로 관객을 만났고, 참패는 아니지만 기대에 못미치는 결과를 낳았다.

제작사와 배우 혹은 매니지먼트사 사이의 힘의 불균형은 신생 제작사가 대거 등장하면서 본격화 됐다. 단초 제공의 측면에서 제작사들의 책임도 피할 수 없는 것.유오성을 5억원에 캐스팅하며 당시 배우들의 개런티 수준을 대폭 올려놓았던 '별'의 제작사도 지금은 없어진 신생 영화사 스타후룻이다. 제작 노하우가 상대적으로 적은 이들 제작사들은 투자자들을 끌어모으기 위해 스타 캐스팅을 택했고, 파워가 점점 커진 스타배우와 매니지먼트사들은 지분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자본주의의 논리 그대로 스타들의 파워가 커져왔지만 제작사들이 우려하는것은 스타 권력화와 남용이 영화 산업의 붕괴로까지 이어질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서 나온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식의 산업적 위기감과 별도로 제작자들의 서운함에는 옛 충무로에대한 향수도 존재한다. 제작사 싸이더스의 차승재 대표는 "충무로는 예전에는 제작자나 배우 모두에게 자신의 꿈과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고 또 소중히 가꿔야 하는 텃밭같은 곳이었다. 영화는 산업이기 이전에 예술이다. 하지만 산업화 단계로 진입하며 물질만능주의적이고 물신적인 사고방식이 번지는 경향이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②스타 요구, 과연 부당한가

사례1 . 크랭크 인을 앞둔 한 영화의 주인공이 개런티로 4억원을 받았다. 이주인공의 필모그래피는 화려하지 않고 타율도 그리 좋다고 말할 수 없다. 이제 막 신인급을 벗어났다. 그러나 제작사는 이 돈을 줬다. 이후 제작사의 다른 관계자가 매니저에게 "어떻게 그 돈을 요구할 수 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자 매니저 왈, "그럼 왜 줬나. 계약은 한번에 이뤄졌다. 협상의 여지도 있었는데 그냥 주더라." 목소리를 높였던 그 관계자는 머쓱해졌다.

사례2. 이병헌 장진영 이정재 등이 소속된 플레이어엔터테인먼트의 김정수 대표는 "내가 요즘 7가지 일을 하느라 정신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파송송 계란탁'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영화 제작에 뛰어들었다. 올해만도 6-7편의 영화에 손을 대고 있다. 공동제작과 자체제작이 섞여 있다. 스타들을 다수 보유하고 있는데도 그가 제작에 뛰어든 이유는 "스타들만으로 매니지먼트사가 운영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스타의 주머니와 매니지먼트사의 주머니는 별개인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다.

사례3. 전국 300만명을 모은데다 작품성 면에서도 큰 영예를 일궜던 영화가 있다. 그러나 이 영화의 제작사에게는 돈이 '몇 푼' 쥐어지지 않았다. 배우나 매니저가 아닌, 감독 때문이었다. 감독과 감독의 소속사가 가져가는 지분으로 인해 정작 제작사는 '빛 좋은 개살구' 신세에 만족해야했다.

과연 현재 한국 영화계의 고비용 저효율 구조가 스타 시스템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혹시 언제나 그렇듯 스타들만이 모든 문제의 전면에 부각되는 것은 아닐까. 앞서 사례 1의 경우 이 주연배우의 몸값은 전작에 비해 급등했다. 이를 표피적으로만 볼 경우에는 그야말로 스타 파워의 부당한 행사로 느껴진다.

그러나 제작사와 투자사는 영화의 위험성과 난이도를 고려해 그 배우에게 4억원을 내줬다. 이 경우 개런티 때문에 영화의 총제작비가 상승한다고 보기 어렵다. 배우는 그만큼 받고 그만큼 노력을 하겠다는 자세인데다 배우 역시 작품이 잘 나오지 않을 경우의 '위험수당'으로 여길 수 있다.

사례 2의 경우는 매니지먼트사가 왜 공동제작을 요구하고 제작에까지 직접 뛰어드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스타급의 경우 매니지먼트사가 받는 지분은 많아야 20%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0%이기도 하다. 즉 A급을 데리고 있다고 그 매니지먼트사가 돈을 많이 버는 방정식은 아니라는 것. 오히려 스타를 데리고 있을 경우 그에 따른 '품위 유지비'는 더 많이 들어 신인 몇명을 데리고 있는 것보다 못한 경우도많다.워낙 스타 파워가 커져가는 현실에서 A급뿐 아니라 조금만 이름이 있는 스타라도 매니지먼트사의 입김은 세게 작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런 상황에서 매니지먼트사의 구미를 당기는 것이 '제작'이다. 제작을 하게되면 현금 유통이 원활하고 사무실 운영 경상비 정도는 마련되기 때문이다. 물론 이중 영화제작가협회가 지적한대로 단순 스타파워에만 기대어서 지분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 매니지먼트사들은 "몇몇 몰지각한 곳이 그런다고 전체 매니지먼트를 몰아세우면 안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특히 이들은 "캐스팅과 동시에 작품의 개발에 같이 뛰어들거나 혹은 제작 지원 등의 부분에서 힘을 보태는 경우도 분명히 있는데 이럴 경우 제작 지분 요구는 부당한 것이 아니다"고 주장한다.

사례3은 고비용 저효율의 문제점이 결코 배우 쪽에만 있지 않음을 증명한다. 웬만한 스타 배우 못지 않게 스타 감독이 챙겨가는 몫도 크다. 머지않아 이 문제도 수면 위로 떠오를 전망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작가'라는 이름으로 문제를 삼지 않는다. 감독은 '작가'라서 '용서'되고 배우는 '스타'라서 욕심을 부린다는 논리는 말이 되지 않는다.

또 하나 덧붙여 한 배우는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옛날을 생각하면 지금 제작사들 사정은 엄청나게 좋아졌다. 예전에는 거지도 상거지가 없었다. 그걸 생각하면 지금은 사정이 정말 좋아졌다. 따져보자. 제작자는 돈이 있다. 제작사가 돈이 없을 뿐이다." 다 나름대로의 입장은 분명히 있는 것이다.



③문제점, 오히려 해결책 될수도

29일 크랭크 인한 봉준호 감독의 120억 대작 '괴물'의 주연배우 송강호는 개런티로 5억원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이 돈을 현금으로 받는 대신 영화에 다시 투자하는 것으로 전환했다. 송강호는 이에 대해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120억원의 엄청난 제작비이기 때문에 초기 제작 비용을 줄여줌으로써 영화 준비 과정이 원활히 돌아가길 바랬다. 둘째는 '이 영화는 내 영화'라는 주인의식 때문이다. 투자자들에게 손해 끼치지않고 최선을 다하겠다는 생각에서다. 영화 만들기에 다양한 리스크가 있다면 그것을 줄이려는 다양한 방법과 노력도 여러가지가 있다"고 밝혔다.

현재 대두된 영화계 내홍을 해결하는 바람직한 대안 중 하나의 예라고 할 수 있겠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스타 시스템은 부인할 수도 없고 부인해서도 안된다. 광고모델료가 비싸면 그 모델을 쓰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광고 모델료 때문에 광고 시장이 죽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그렇다면 왜 제작자들이 스타들을 향해 직격탄을 날렸을까. 현 상황의 문제점은 도대체 무엇인가. 한국 영화의 고비용 저효율 구조로 인해 흥행을 해도 주머니에 돈이 생기는 쪽은 극장밖에 없다는 진단이 나왔다. 한국영화의 입장 수입은 극장과 투자사가 5대5로 가르고, 그중 투자사 몫에서 다시 6대4로 투자사와 제작사의 지분이 나뉜다. 이 제작사 몫에서 다시 배우 지분, 매니지먼트 지분을 가르면 제작사는 결국 손에 쥐는 돈이 거의 없다는 얘기. 이러한 현실이 이어지자 제작사들이 마침내 영화제작가협회이름으로 "못 살겠다"고 목소리를 낸 것이다.

여기에 오로지 스타에 기댄 제작사 혹은 제작자의 난립으로 영화의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비난도 이어지고 있다. 스타만을 앞세워 제작에 뛰어든 경우 영화에 대한 고민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수준으로 떨어지는 영화가 양산되기 십상인 것. 높은 개런티로 스타만을 캐스팅하면 영화를 다 만든 줄 아는 일부 생각없는 제작자들이 등장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기존 충무로 제작사들이 "신생 제작사들이 턱없이 몸값을 올리는 바람에 질서가 깨졌다"고 볼멘소리를 하는 것은 그런 맥락. 그러나 분명히 짚고 넘어가자. 완성도가 떨어지는 영화를 제작한 쪽이 반드시 매니지먼트사와 신생 영화사는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기존 충무로 영화사들 중에서도 이런 함량 미달의 영화를 내놓는 곳이 많다.

또한 영화제작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매니지먼트사들의 경우 대개는 "우리 회사 소속 배우에 기대서 제작하지 않는다"고 한다. 한 예로 싸이더스HQ와 두사부필름은 각각 '새드무비'와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을 제작하고 있다. 두 작품 모두 많은 주연급 배우가 필요한 '러브 액츄얼리'식 영화.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스타들이 즐비한 싸이더스HQ가 '새드무비'를 제작하는 것이 수월해보이지만 상황은 그렇지 않다.

싸이더스HQ의 김상영 이사는 "우리 배우라고 우리가 마음대로 컨트롤 하는 게 아니다. 경쟁작이라 할 수 있는 두 영화의 시나리오를 다 주고 배우의 선택에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실제로 싸이더스HQ의 배우들은 비슷한 모양새의 두 영화에 골고루 나눠 출연하고 있다.

한편 최근 일련의 사태에서 흥미로운 상황이 발견된다. 하나는 스타 시스템을성토하는 제작자들의 단체행동을 일부 매니저들이 못내 반기고 있다는 것이다. 매니저 입장에서도 스타 파워에 대해 속을 끓이고 있던 차에 제작자들이 들고 일어나 주니 오히려 고맙다는 반응도 나온다.

8월 출범을 목표로 하고 있는 매니지먼트협회(가칭)가 영화제작가협회가 표준제작규약 등을 내놓겠다고 하자 이를 환영한다는 의사를 밝혔다. 매니지먼트협회 역시지금까지의 잘못된 관행에 대해 점검하고, 긍정적인 발전방향을 검토하겠다고 나섰다. 협회 관계자는 "지금 이런 문제가 공론화된게 오히려 우리 영화계가 건강하다는 뜻 아닌가. 업계 모든 분야가 영화에 애정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성적으로 이를 풀어나가리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 문제와 비켜 서 있는 한 중견 스타는 "스타의 힘은 생각보다 크지 못하다. 영화의 흥행은 진정한 영화의 힘으로 되는 것이다. 초반에는 스타와 마케팅 힘으로 갈 수 있지만 영화가 안 받쳐주면 절대 다음 수순으로 못 넘어간다"면서 제작사가스타 탓을 하기 전에 자기검열을 철저히 할 것을 당부했다. 그는 "캐스팅이 안되는 이유는 돈이 아니라 작품이 좋지 않아서다. 자신의 기획력이나 작품을 제대로 세팅하지 못한 것에 대한 반성은 하지 않고 무턱대고 고비용 구조를 비난하면 안된다. 작품이 좋으면 그냥도 출연하는 게 배우다"고 말했다.

현 사태의 문제는 2000년대 이후 거대 자본 유입으로 급속도로 성장한 한국영화계가 그동안 브레이크나 자기 검열 없이 질주만 해온데서 기인한다. 지금껏 제작자와 배우, 매니지먼트사, 감독 모두 앞만 보고 달렸고 양적 성장에 대한 믿음에서 부분적 균열이 생기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애써 등한시 한 탓이다.

평론가들이 이번 사태에 대해 "어느쪽 입장이 옳다 그르다 말하기 힘들다"며 대부분 언급을 회피한 것 역시 이번 사태의 성격을 드러내는 답변이다. 딱히 누구의잘잘못이 아닌, 일종의 '성장통'으로 볼 수 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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