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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프컷’ 들고 서울온 피나 바우슈 |
26년전 서울공연때 ‘전라’ 장면 검열에
지난 주 내내 서울 엘지아트센터에서는 독일의 피나 바우슈가 이끄는 부퍼탈 무용단의 <러프 컷>이 공연되었다. 엘지아트센터 개관 5주년 작품이자 한국 공연문화사상 최초로 1급 해외 예술단체가 한국 기업의 지원을 받아 한국을 소재로 만든 예술작품이어서 의미가 남달랐다. 이 창작 작업의 단초는 그들의 2000년 엘지아트센터 공연(<넬켄(카네이션)>)에서 비롯됐지만 실상 피나 바우슈와 한국의 인연은 그로부터 20여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979년 2월3일 세계적 화제를 불러 모았던 <봄의 제전>을 세종문화회관에 올린 것이 부퍼탈 무용단의 첫 내한의 흔적이다.
시기적으로 볼 때 참으로 이례적인 사건이었다고 여겨진다. 이처럼 아방가르드적이고 파격적인 작품을 소화하기에 한국은 아직 보수적이고 문화적으로 개방되지 못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연은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는 사실이 놀랍다. “아니, 한국 관객들이 그렇게 조숙했단 말인가”라며 착각할 만하지만 이유는 따로 있다. 제물로 바쳐지는 처녀 역의 무용수가 전라로 춤을 춘다는 소문이 일파만파로 퍼지면서 이에 대한 찬반 여론이 시끄럽게 일어났고 관객들은 그 소문의 실체를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지금이야 무대에서 옷을 벗는 게 그리 호들갑 떨 일이 아닌 일반적인 표현 가운데 하나가 됐지만 더더욱 보수정권 아래의 당시로서는 분명 센세이션을 일으킬 만한 요소였을 것이다.
바우슈 개인으로서도 1979년 서울 공연은 아픈 추억으로 남아 있다. 그의 오랜 연인이자 감정적, 예술적 동반자였던 무대 디자이너 롤프 보르지크가 지병이 있는 상태로 추운 겨울 한국에 함께 왔다가 이후 병세가 악화돼 그 다음 해에 세상을 떠났다. 당시의 기억에 대해 바우슈는 “아주 오래 전, 매섭게 추운 겨울날, 아주 커다란 공연장에서 공연을 했다”고 시리게 회상하고 있다.
그런데 관객들은 과연 여성 무용수의 전라의 춤을 감상할 수 있었을까. 수고스럽게 찾아온 관객들로서는 아쉬웠겠지만 그 시도는 성공하지 못했다. 사전 검열에 걸려 당국과 실랑이를 벌인 피나 바우슈는 결국 신체의 중요한 부분은 최소한으로 가리고 춤을 추는 것으로 합의를 보고 말았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한 발 뒤로 물러섰던 피나 바우슈는 앞선 인도 캘커타에서의 공연만큼은 원전 그대로 강행했다. 당시 스리랑카, 싱가포르 등 동남아 5개국에서 <봄의 제전>을 먼저 순회 공연한 뒤 마지막으로 들른 곳이 바로 서울이었다. 종교적 보수성으로 철저하게 무장됐던 인도 관객들은 그 무용을 보고 경악하여 항의를 표시하다 못해 무대 위로 쳐들어올 태세였고 춤을 추던 무용수들은 신변의 위협을 느껴 두려움에 떨었다. 결국 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해 바우슈는 공연 중간 스스로 무대 조명 스위치를 꺼버렸다고 한다. 이 작품은 전 세계 방방곡곡을 돌면서 여러 차례의 난동과 환호를 반복한 끝에 부퍼탈 무용단의 고정 레퍼토리로 안착되었다. 그리고 25년여가 지난 지금 바로 ‘한국’을 주제로 한 작품을 서울에서 공식 초연한 것이다.
노승림 공연 칼럼니스트/성남문화재단 홍보부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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