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6.29 22:28
수정 : 2005.06.29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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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문영/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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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 영화를 더 보라
2005년 6월19일 경기도 연천의 부대에서 병사 한 사람이 수류탄과 총기로 동료군인 8명을 살해했다. 그날부터 각종 미디어는 수많은 시나리오를 생산하거나 전달해왔다.
그 가운데 하나는 ‘언어폭력’이 있었다는 가해자의 진술에 바탕해 만들어진 인권 억압-사고의 인과론이다. 해결책은 인권신장 등 군 문화의 개선이다. 이는 열린우리당에 의해 대표적으로 주장되었다. 다른 하나는 기강해이-사고라는 인과론이다. ‘주적 철폐’ 등 현정부의 물러터진 안보정책이 참화를 불렀으므로 군기를 다시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한나라당에 의해 대표적으로 주장되었다.
조금 있다 가해자가 게임광이었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세대 문책론이 만들어졌다. 이 인과론은 꽤 구체적이다. 한 매체는 “그가 게임을 광적으로 즐겼다면 순간적으로 내부구조가 사각형인 GP내부를 같은 사각형 컴퓨터 화면 속의 가상현실로 착각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군 관계자의 말을 인용했다. 그리고 친절하게도 가해자가 온라인 홈페이지 가꾸기에 열성적이었다는 사실도 덧붙였다. 해결책은 신세대 병사 관리비법 발명이다.
‘언어폭력’이 믿을 만하지 못한 진술임이 드러나자 이번엔 가해자를 정신적으로 결함이 있는 ‘문제사병’이라고 규정하는 정신질환론이 등장했다. 그리고 사병들에 대한 광범하고 철저한 정신 감정이 해결책으로 제시됐다.
나는 이 사회심리학적 인과론들에 전혀 동의할 수 없다. 개인적으로는 GP 근무규정 준수 여부에 주목하는 서석원의 견해(<시사저널> 819호)나 징병제를 모병제로 바꾸자는 고종석의 주장에 전적으로 공감하지만, 여기서 또 다른 인과론을 주장하려는 건 아니다. 다만 이 인과론들의 허위와 폭력성을 말하고 싶다.
20년 전에 비슷한 사건이 같은 사단에서 일어났다는 사실과 유영철의 연쇄살인만으로 모든 인과론은 간단히 무력화된다. 문제는 이 인과론들의 무능력이 아니라 그것들이 벌이는 마녀사냥이다. 인권억압론은 언어폭력을 행했다고 진술된 고참 병사들을, 세대문책론은 게임광 혹은 인터넷 세대 전체를 괴물로 만들고 있다. 기강해이론은 북한을 다시 제거해야 할 사탄으로 만들어야 우리가 정화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며, 정신질환론은 정신 감정을 통과하지 못한 익명의 청년들에게 ‘정신적 문제가 있는 요주의 인물’이라는 또 다른 괴물의 형상을 뒤집어씌우는 것이다.
이 타자-괴물들에게 모든 잘못을 돌리고 그들을 추방함으로써, 우리는 그 위험하고 사악한 사건의 계열들로부터 면책되거나 그것을 피할 수 있다는 위안을 얻으려는 것이다. 그러나 경험으로 알고 있듯이 그런 마녀사냥으로 해결된 건 아무 것도 없다. 이 인과론들은 인간은 본질적으로 선하며 이상적 자아가 가능하다는 휴머니즘의 환상에 기초하고 있다. 그리고 그 환상을 신념화해 사악한 마녀사냥을 감행한다. 그것은 부시의 ‘악의 축’ 발상과 놀라울 만큼 유사하다.
우리는 앤터니 이스트호프의 말대로 “인간적인 것과 비인간적인 것을 모두 동등한 가능성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정신분석학에서 배우는 것은 비인간적인 것 혹은 광기를 통제할 수 있다는 오만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밖의 ‘마녀’ 가 만들어낸 게 아니라 우리 안에 처음부터 존재하고 있었으며 그것이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내 속에 있는 비인간성과 혼돈이 내 의지에 따라 소멸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임으로써 불안과 우울을 짊어지는 것과, 조잡한 인과론에 기댐으로써 마녀사냥을 묵인하고 그를 통해 일시적 위안을 얻는 것 중에서 선택해야 한다. 오로지 견디기 위해 후자의 선택이 불가피한 상황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전자를 더욱 많은 사람들이 선택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미디어와 정치는 속성상 결코 권장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여전히 홍상수의 영화를 더 많은 사람들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허문영/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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