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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7.03 17:52 수정 : 2005.07.03 17:52

묵향의 일진광풍 두명필의 삶과 예술

원교 이광사(1705~1777)와 창암 이삼만(1770~1847)은 서예사에서 후학인 추사 김정희(1786~1856)의 그림자에 묻혀버린 명필들이다. 조선적 특색을 표현하는 진경 문화가 무르익은 18세기 영정조 시대 두 대가는 동국진체라는 조선풍 서체로 일가를 이룬다. 하지만 일생은 재앙과 절망으로 가득했으니, 역적으로 몰린 원교는 23년간 귀양살이를 하다 객사했고, 창암은 약초를 캐어 연명하며 나뭇가지와 지팡이로 글씨를 수련해야 했다. 글씨들 또한 강건·고아한 추사체의 등장에 가려 세인들의 기억에서 잊혀졌다.

<원교와 창암 글씨에 미치다>(한얼 미디어)는 두 거장의 글씨 세계와 인생역정을 독특한 실마리를 통해 재조명한 책이다. 그 실마리는 원교의 서첩에 창암의 글씨가 덧붙어진 유묵서첩이다. 한국화가 조방원씨가 30여년전 구한 초서풍의 이 희귀본을 최준호씨가 10여년간 독해한 끝에 정자로 풀고 해설을 덧붙여 놓은 것이 책의 얼개가 된다.

1, 2부에 서술된 원교와 창암의 초서 글씨들에 대한 서술은 현란하다. 획을 죽 늘이고 빗자루로 쓴 것처럼 하얀 여백(비백)을 드러낸 원교의 동국진체는 교묘함과 힘찬 기세가 함께 녹아있다. 힘차게 내려 긋다가 커다란 원을 그리면서 획에 리듬감을 주는 특징을 필자는 풍차필법, 팔랑개비 필법이란 별칭으로 부른다. 비오는 중에 걸상 맞대고 꽃 밑에서 술잔을 든다는 뜻의 ‘우중연탑 화하비상(雨中連榻 花下飛觴)’ 이란 시구를 쓴 초서 글씨를 두고, 꽃 밑에서 나비나 벌들이 날아다니는 듯한 붓놀림의 춤이라고 상찬한다. 창암의 글씨는 헐렁한 듯 고졸하면서도 용틀임하는 듯한 분방한 붓놀림과 비백의 매력이 꿈틀거린다. 미세한 비백 글씨를 가능하게 하는 꾀꼬리붓 등 그가 고안한 민중적 필기구 등을 소개하면서 필자는 창암에게 미치도록 글씨를 썼던 ‘서광(書狂)’이란 별칭을 헌사한다. ‘입으로 소털 같이 많은 것을 외우고 마음으로 성인의 학문과 통한다’ ‘바다를 발로 차서 파도를 일으키고 산을 들어 옮겨 봉우리를 깨뜨린다’는 원교와 창암의 기개어린 글귀 등은 삶의 원칙을 일깨우는 경구로도 맞춤하다. 원교, 창암의 기구한 일생과 추사와의 인연을 담은 3부, 조선의 서예가와 서체를 망라한 도표와 유묵첩 원본 도판들이 말미까지 이어진다. 1만2천원.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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