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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구멍’ 뚫고 무대를 휘젓다 미국 브로드웨이 무대에서는 무명의 신인배우가 스타가 되기는 어느 뮤지컬 대사처럼 “백만분의 일의 바늘 구멍을 뚫는” 일이다. 이런 사정은 최근 뮤지컬 바람이 무섭게 일고있는 한국도 마찬가지이다. 작품 수는 엄청나게 늘어났지만 워낙 배우 층이 얇은 탓에 주연급 배우들은 늘 그 얼굴이 그 얼굴이다. 엄청난 제작비를 감당하기에는 무명의 신인배우를 기용하는 일이 어지간한 모험이 아닐 수 없다. 지난 5일 대학로 학전그린 소극장에서 11년째 장기 공연되고 있는 록뮤지컬 <지하철 1호선>의 2005년 하반기팀의 첫 무대. 흑인 혼혈아 철수 역을 맡아 ‘깡패 연기’를 펼치고 있는 신인배우가 눈에 들어왔다. 이두일, 설경구, 장현성, 황정민, 최민철 등 숱한 명배우들이 거쳤던 고아 청년 철수 역을 맡은 배우는 놀랍게도 무대 경험이 전혀 없는 완전 초보였다. “두렵지는 않았지만 잘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어요. 떨리기도 하고 설레이기도 했어요. 살짝 흥분했는 것같아요. 고교 3학년 때 처음 <지하철…> 공연을 보고 오랫동안 꿈꿔왔던 무대였어요. 7번 정도 보았는데 그때마다 가슴이 찡 했어요.” 올 2월에 대학 뮤지컬과를 졸업하고 역대 최연소 철수 역으로 데뷔한 조성민(20)씨는 “대학교 1학년 때 멋모르고 <지하철…> 오디션에 응모했으나 떨어진 경험이 있다. 그동안 열심히 연기공부를 한 보람이 있다”고 오랜 애정을 털어놓았다.
그는 이날 ‘철수’ 역 외에도 악덕 부동산업자, 회사원, 노인, 과부(강남 사모님), 스님 등 6개 역을 대담하게 연기해 ‘초벌구이’답지 않은 기량을 뽐냈다. 집이 강화도이어서 두달 전부터 한성대 역 근처 고시원에서 생활하고 있는 그는 “하고 싶은 일을 하기 때문에 힘들어도 즐겁다”면서 “연기를 즐길 줄 아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김민기 연출가(극단 학전 대표)는 “첫 인상이 권투선수 마이크 타이슨 같지 않나. 철수 역과 인상이 비슷해서 배역을 결정했다”고 웃으면서도 “위험 부담이 있지만 바탕이 깨끗하고 열심히 하기 때문에 믿고 맡겼다”고 에둘러 칭찬했다. 하반기팀에는 완전 초보 조성민 외에 김민정, 이상원, 조선형, 강수영 등 신인급 11명이 지난 3월 300여명의 오디션 응모자를 뚫고 발탁됐으며, 2003년 ‘청소부’역의 정인애가 ‘선녀’ 역을 맡았다. <지하철 1호선> 공연이 있던 같은 날 5일 밤 서울 중구 충무아트홀 1층 대연습실. 오는 15일 종로 5가 연강홀에서 첫 공연을 앞두고 뮤지컬 <풋루스>의 출연배우들이 에어컨도 감당 못하는 찜통 더위 속에서 비지땀을 흘리고 있다. 뮤지컬컴퍼니 대중의 <풋루스>는 기성세대와 젊은세대의 갈등, 가족문제 등을 담은 댄스 뮤지컬로 에너지 넘치는 춤과 빌보드를 장식한 노래들 덕에 2002년 7월 국내 초연 당시 네티즌 선정 1위에 오르는 등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다. “저 배우 한번 눈여겨 보세요. 걸물 하나가 들어왔어요. 잘 생겼죠, 노래 잘하죠, 춤은 거의 프로수준입니다.” “음악적인 에너지가 넘쳐요. 음색이나 노래 솜씨도 뛰어나지만 무대에서 배우 자신을 드러내 보일 수 있는 음악적인 재능과 끼를 가졌어요.” 귓속말을 건네는 이종훈(한국연극협회장) 연출가와 엄기영(엠비시관현악단장) 음악감독의 눈짓 끝으로 한 배우의 모습이 잡혔다. 얼핏 보기에도 180㎝가 넘는 미끈한 몸매에 귀공자 풍 얼굴의 청년이 능란하게 힙합 춤을 추고 있다. 2002년 초연 때 무명의 김수용(29)과 최성원(27)을 스타덤에 올렸던 남자 주인공 렌 역을 그룹 태사자의 리드보컬 김영민과 함께 맡아 화제가 되고있는 진이한(25)씨. 그동안 작은 뮤지컬 몇편에서 단역으로 얼굴은 내비쳤던 그는 지난 4월 말 230명이 지원한 오디션에서 숱한 경쟁자를 뚫고 단번에 남자 주인공 역을 꿰찼다. “반항적이지만 정의감이 있고 활달한 성격의 렌 역이 잘 맞는 것같아요. 연기하기 편해요. 또 무대에 선 경험이 많아서인지 두려움 같은 것은 없이 잘 놀 수 있을 것같아요.” “어려서부터 노래와 춤에 끼가 있어 뮤지컬에 관심이 많았다”는 그는 한국방송 오락프로그램 ‘장미의 전쟁’에도 출연해 깜짝 인기를 끌기도 했으나 “연기로 무대에 서고 싶어서 뮤지컬에 도전했다”고 밝혔다. 두 무명배우의 화려한 데뷔 이후가 궁금하다.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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