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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7.06 17:48 수정 : 2005.07.06 17:48


△ (사진설명) (위)서울 대학로 TJ미디어의 질러넷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아래)종로2가에 위치한 금영의 악쓰는 하마 노래방의 내부. 노래방의 풍경과 기술은 점차 닮아가지만 기기 속 보이지 않는 소리의 대결은 더 치열해진다. 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

“젊게 질러” 태진, “네박자로” 금영

우리 나라 국민 가운데 그 이름을 모르는 이는 없다, 고 단정하겠다. ‘금영’양과 ‘태진’군. 만인의 연인이다. 2005년 전국 3만5천여개의 노래방에선 누구든 태진(올 1월 태진은 ‘TJ 미디어’로 이름을 바꿨지만) 아니면 금영을 만나게 된다. 단란주점 등까지 치면 대략 7만 업소. 한반도 통틀어 1000명당 1곳 꼴이다.

최고 전성기를 구가하던 1990년대 중반, 국민은 외로울 때도 즐거울 때도 구분 없이 노래방을 드나들었다. 노래방 기기 하나가 한달에 최고 500만원의 수익을 올리던 시절이다. 태진과 금영은 지치지 않고 노래를 반주해줬다. 살아오면서 한 번도 만점을 받아본 적 없는 이들에게 무시로 100점을 줬고 들러리 인생에게 팡파르를 울려주는 데에도 인색하지 않았다. 1990년대 말 금융 환란을 ‘경상’만 입은 채 이겨낼 수 있었던 데에도 구겨진 우리네 일상을 위무하던 노래방의 공이 10분의1 가량 있었다면 억지일까.

노래반주기 양대산맥
태진, 좀더 빠른 리듬 젊은측 즐겨찾아
금영, 울림있는 사운드 중년층 안식처로
두 업체 시장 95% 차지

찜질방에 경마오락실에 자리를 찔끔 내주지만
여전히 우리와 동고동락 한다

지금 전국 노래방 기기의 50%는 금영이, 45%는 태진이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우리가 그들을 안다 말할 수 있는가. 사실 태진과 금영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서로 경쟁적으로 반주 실력을 뽐내되 양대 산맥으로서 상호 보완하며 지금까지 발전해온 탓이다. 태진의 윤재환 사장은 “금영과 태진이 시소를 하기 때문에, 시장도 커졌고 고객의 만족도도 더 커진 것”이라며 “금영 없이 태진 혼자였다면 노래방 문화나 시장 모두 망가졌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시각은 금영도 마찬가지.


금영방과 태진방 이 따로 있다. 기술은 결국 닮게 되어 있지만, 금영 팬은 애면글면 금영 기기만을 찾고, 태진 쪽은 바득바득 태진 기기만을 찾는 실정이다. 노래방 기기들이야말로 감성과 직접 교감을 하는 터라, 미세한 차이가 기호를 가르고 문화를 구별짓기도 하는 것. 기기도, 팬들도 자존심 싸움이 대단하다. 태진은 ‘질러존(노래방 명칭)’으로 대변되는 젊은이들의 아지트와 연동하고, 금영은 금영하고만 거래하는 프랜차이즈 ‘송대관 네박자 노래방’이 상징하는 중년층의 안식처로 이어진다. 금영은 원곡에 충실해 30~40대 이상이 적응하기 편하고, 노래에 좀더 속도를 보태고 웨이브도 많이 넣는 태진엔 젊은이들이 훨씬 더 매력을 느낀다.

금영과 태진 은 사실 노래방 기기업계의 후발주자다. 미디 음악(컴퓨터가 만든 기계음) 세대다. 밴드가 연주한 기본음만 녹음해 재생하는 낡은 방식의 아싸 시대와 엄연히 구분된다. 노래방을 잉태한 건 아싸였지만, 청년으로 키운 건 태진과 금영이다. 후속 브랜드 개발과 마케팅에 실패하며 주춤하던 아싸를 젖히고 94년부터 태진이 1위 업체로 등극하고, 그러자마자 바로 뒤쫓아오는 금영과 ‘시소 게임’을 하면서 가능해졌던 것이다. 미디 음악의 틀 아래 다양한 기술과 서비스가 개발되면서 금영과 태진의 차이도 미세하지만 뚜렷해진다.

호랑이 담배 피며 노래 부르던 시절 이었을 것이다. 1991년. 노래방 혁명이 시작되던 그해 여름. 쭈뼛쭈볏 500원 동전을 꺼내며 커피 한 잔을 뽑듯 노래를 뽑았던 곳. 혁명의 시작은 부산이었다. 가정 등에 팔았던 컴퓨터 자동반주기만 있었던 시절, 부산로열전자가 가사를 입히는 기술을 개발했다. 이어 아싸의 컴퓨터 자동반주기에 입혀 부산 동아대 앞 100평 가게에 들여놓으며 처음 ‘노래방’이란 간판을 붙였다. 어울려 노래 부르며 춤을 췄던 대학가의 잔디가 두 눈을 부릅떴고, 술도가에서 장단을 맞춰주던 젓가락의 허리는 여전히 꼿꼿했지만, 노래방은 순식간에 전국으로 확산됐다. ‘아싸’는 일순 전 국민을 가수로 만들었다.

소리없는 소리의 대결 은 더 치열해진다. 이젠 휴대폰 벨 소리가 당시 노래방 혁명가였던 아싸의 소리를 낸다. 태진은 섬세한 터치가 두드러지지만 금영은 울림 있는 사운드를 특장으로 내세운다. 금영의 김인근 경영기획실장은 “우리는 소리의 원천으로서는 업계 최고급에 속하는 일본 롤랜드사의 음원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고 내세운다. 96년도엔 육성 코러스를 넣고 시디형 반주기에서 하드디스크형 반주기로 전환하면서 태진을 젖혔던 금영의 필살기다. 반면 태진은 미디 음악조차 넘어서며 지난해부터는 라이브 음악을 그대로 채취해 또다시 재등극을 노린다. 지난해 5월 회사 1층에 마련한 30억원짜리 스튜디오에서 함춘호, 이성열(기타), 신현권(베이스) 등 최고의 세션을 불러 직접 연주한 음악을 담아내는 것. 안 그러면 미디 음악 기술이 워낙 뛰어나 외려 기능이 떨어진다. 대부분의 노래방은 속절없이 태진과 금영을 모두 구비해 입맛 따라 노래를 부르도록 할 수밖에 없다.

사투리는 쓰지 않지만 지역 대결도 만만치 않다. 서울 출생의 태진은 주로 서울과 수도권에서, 처음 부산에 둥지를 틀었던 금영은 지방에서 자신들의 공고한 성을 구축해뒀다. 젊은 세대는 태진을, 기성 세대가 금영을 선호하는 것 역시 소리를 넘어 문화의 차이에서 노정된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것은 작은 다툼일 뿐 두 회사는 내처 달린다. 노래방 서비스로 아침의 신곡을 저녁에 부를 수 있도록 인터넷 망이 기기와 연결됐고, 자신의 노래를 벨 소리, 컬러링, 미니홈페이지의 배경음악으로 사용하는 게 가능한 시대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예전의 노래방이 있던 자리를 하나하나 꿰찬 찜질방, 경마오락실 등으로 주저 없이 발걸음을 돌리는 국민들에게 서운한 감정도 못내 없지 않다는 금영과 태진. 신곡 시장을 포함해 전체 노래방 관련 산업이 2조원선에서 포화상태에 다다랐다는 경제적 진단과 여전히 가장 낮은 단가로 유흥을 즐길 수 있는 ‘국민 오락’로서 변치 말아야 한다는 사회적 진단 사이에서 끙끙 갈등한다. 등허리에 음표처럼 땀이 맺힐 때까지 노래를 불러제꼈던 서민들의 21세기 놀이 문화를 위해, 또 하나의 새 혁명을 꿈꾸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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