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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무엇인가> E. H. 카/김택현 옮김/까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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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논술 세미나]
<역사란 무엇인가> 1. 과거 사실과 역사적 사실
2. 역사와 위대한 인물, 3. 과학적 역사 vs 문학적 역사, 4. 역사와 진보, 그리고 미래
다음책: 매트릭스로 철학하기
[책소개]
<역사란 무엇인가> E. H. 카/김택현 옮김/까치
<역사란 무엇인가>는 1961년 출판되자마자 역사학도뿐만 아니라 현대 지식인의 필독서가 됐다. 저자 에드워드 핼릿 카는 1961년부터 20년간 영국 외무부 공무원으로 근무했으며, 이후 <더 타임스> 부편집인, 옥스퍼드대학 정치학 교수를 지내는 등 이력이 다양하다.
<역사란 무엇인가>는 랑케의 실증주의 사관을 비판한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대화”라는 말로 유명하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가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은 마지막에 있다. 카는 “역사는 점진적인 개선을 추구한 사람들이 아닌 기존 질서에 근본적인 도전을 감행했던 사람들에 의해 진보했다”고 썼다. 카는 책 곳곳에 카를 마르크스의 말을 인용했고 공감을 표했다. 이 때문에 <역사란 무엇인가>는 군사독재 시절 한국에서는 금서로 묶이기도 했다.
[풀무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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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쇠퇴에 관한 지금의 모든 이야기는 그저 대학교수들이 옛날에는 하인을 부렸는데 이제는 직접 설거지를 한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물론 옛날의 하인들에게 교수들의 설거지는 진보의 상징일 수 있다. 아프리카에서 백인 지배의 상실은 대영제국의 옹호자들, 남아프리카의 백인 공화주의자들, 금광이나 동광 분야의 주식 투자자들에게는 근심스러운 일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진보처럼 보일 수 있다. 획득형질이 사회적 진보의 기초 파괴와 쇠퇴 이외에는 아무것도 내다보지 않으면서 진보에 대한 모든 신념과 인류에 의한 더 나은 진보에 대한 모든 전망을 어리석은 짓이라고 배제해버리는 오늘날의 회의주의와 절망의 조류는 엘리트주의의 한 형태다. 즉 위기에 의해서 자신들의 안전과 자신들의 특권을 가장 현저하게 침식당해 온 엘리트 사회집단의 산물, 그리고 한동안 세계의 나머지 지역에 대해서 가지고 있던 확실한 지배권을 박탈당해버린 엘리트 국가들의 산물에 불과하다. 이러한 움직임의 주된 창도자들은 지식인들, 즉 자신들이 봉사하고 있는 그 사회의 지배집단의 이념을 전파하는 자들이다. 한 사회의 이념은 그 사회의 지배계급의 이념인 것이다. 그 누구도 역전과 일탈과 중단 없이 곧장 일직선적으로 전진한 그런 종류의 진보는 없다. 따라서 가장 급격한 역전조차도 반드시 그 믿음에 치명타를 가하지 않는다. 진보의 시기뿐만 아니라 퇴보의 시기도 분명히 존재한다. 게다가 퇴보 이후의 전진이 똑같은 지점에서 혹은 똑같은 길을 따라서 다시 시작될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은 경솔한 생각일 것이다. 생물학자들이 거부하고 있는 획득형질의 전승이야말로 사회적 진보의 바로 그 기초인 것이다. 역사란 획득된 기술이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승되는 것을 통하여 이뤄지는 진보라 할 수 있다. 진보는 한 지역이나 계급이 그대로 밀고 나가면서 진행되지 않는다. 진보는 시간상으로나 지역적으로나 확실히 연속적이지 않다. 되레 지도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집단-혹은 계급·민족·대륙·문명-은 다음 시대에도 그와 똑같은 역할을 할 것 같지는 않다. 그 이유는 그 집단이 전 시대의 전통, 이해관계, 이데올로기 등에 너무 깊게 물든 나머지 다음 시대의 요구와 조건들에 부응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느 한 집단에게는 쇠퇴의 시기로 여겨지는 것이 다른 집단에게는 새로운 전진의 시작으로 여겨질 수 있는 일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통찰력이 중요하다 우리가 어떤 역사가를 객관적이라고 말할 때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그 역사가에게는 사회와 역사 속에서 자신의 위치로 인해서 제한되어 있는 시야를 넘어설 수 있는 능력-자신이 그 위치에 어느 정도까지 묶여 있는가를 인식할 수 있는, 다시 말하자면 완전한 객관성이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는 그의 능력에 얼마간 좌우된다. 둘째로, 그 역사가에게는 자신의 시야를 미래에 투사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그런 만큼 그는 자신이 처해 있는 바로 그 위치에 전적으로 속박된 사고방식을 가진 역사가들보다 과거에 대해서 더 심원하고 더 지속적으로 통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를 다루는 역사가는 미래의 이해에 다가설 때에만 객관성에 접근할 수 있다. 그러므로 역사는 단지 과거와 현재의 대화만은 아니다. 오히려 역사란 과거의 사건들과 서서히 등장하고 있는 미래의 목적들 사이의 대화다. 1880년대의 역사가보다 1920년대의 역사가가, 1920년대의 역사가보다는 오늘날의 역사가가 객관적인 판단에 더 근접해 있다. 아마 2000년의 역사가는 훨씬 더 근접해 있을 것이다. 이것은 역사에서의 객관성이란 바로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어떤 고정불변의 기준에 의존하거나 의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미래에 남겨진 그리고 역사과정이 전진함에 따라서 발전하게 되는 그러한 기준에 의존하거나 의존할 수 있는 것이라는 점이다. 역사는 과거와 미래 사이에 일관된 연관성을 확립할 때만 의미의 객관성을 가지게 된다. 지난 1세기 반 동안 노예제, 인종차별, 아동노동의 착취-이 모든 것이 한때는 도덕과는 무관하거나 도덕적으로 훌륭한 것으로 인정되었다-를 일반적으로 비도덕적이라고 생각하도록 만든 역사적 사실들을 생각해보라. 즉 역사가는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통찰력이 있어야 현재의 역사도 객관적으로 제대로 서술할 수 있다는 말이다. 역사가는 사실과 해석, 사실과 가치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사람이다.
[마치질] 유물사관과 기독교사관의 공통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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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금질] 역사책과 드라마의 차이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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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경 <아하! 한겨레> 편집장, ‘한겨레글쓰기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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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리기] 1. 아래 지문을 읽고 ‘역사는 승자의 기록인가’라는 주제로 글을 써 보시오. 글을 쓸 때 아래 지문과 같이 생각할 경우 발생할 문제점도 반드시 언급하시오. (600자) 역사는 대체로 사람들이 한 일의 기록이지, 하지 못한 일의 기록은 아니다. 그러한 한에서 역사는 불가피하게 일종의 성공담이라고 할 수 있다. 토니 교수는 역사가들은 ‘승리한 세력은 눈에 띄는 곳으로 끌어내고, 그들이 집어삼킨 세력은 보이지 않는 곳으로 밀어 넣음으로써’ 현존하는 질서에 ‘불가피성이라는 외관’을 부여한다고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역사가의 작업의 본질이 아닐까? … 역사에서는 ‘오직 국가를 형성하는 사람들만이 우리의 주목을 끌 수 있다’고 한 헤겔의 유명한 말은 한 가지 형태의 사회조직에만 배타적인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해롭기 짝이 없는 국가숭배의 길을 열어 주었다고 마땅히 비판을 받아왔다. 그러나 원칙적으로 볼 때 헤겔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올바른 것으로서, 그것은 역사 이전과 역사의 낯익은 구분을 표현하는 말이다. 상당한 정도까지 사회를 조직화하는 데 성공한 사람들만이 원시적인 야만인을 벗어나서 역사 안으로 들어간다는 말이다. <역사란 무엇인가> 5장 2. 서기 16세기 이후 세계를 주도하는 국가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서술해 보시오. (600자) 3. ‘풀무질’에 나오는 에드워드 핼릿 카의 설명을 토대로, 중국이 부상하고 미국이 쇠퇴하는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를 분석해 보시오. (800자) 4. ‘진정한 역사가란 어떤 사람인지’를 주제로 글을 써 보시오. (1200자) *중학생의 공부하는 힘 1318클래스(1318class.com)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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