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7.06 18:38
수정 : 2005.07.06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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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수 <서울예대학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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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유목민이 늘어나고 있다. 대학과 대학 사이 활성화되고 있는 학점 교류제 덕분이다. 특히 방학 중에 개척 정신으로 무장한 대학생들은 그 교류의 섬에 가고자 한다.
단 하나의 학생증만 가진 대학생은 이젠 옛 모습이다. 학점 교류라는 이름으로 타교 학생들에게 수업권을 주어 일부 학점을 취득할 수 있게 한다. 학교가 학생들의 넘나들기를 권장하고 있다.
학교가 서로 장단점을 교환하며 학생들에게 최대치의 학업 효과를 낼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다. 즉 학점교류의 큰 그림은 학술적 동기에 바탕을 둔다. 충남대 관계자는 “다른 사립 대학에서 자기들에게는 없는 전공을 보충하고자 했다”며 “우리 학교에 학생들을 보내고 싶다며 학점교류를 요청해 왔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이렇듯, 학점 교류가 과연 학제적인 동기에서, 학문의 교류를, 학술적으로 촉진하고 있을까. 계절학기라는 한달 속성 강의에서, 전공을 이제 막 시작한 학부생을 상대로, 교양 수업 정도를 열어놓고서 학문의 교류를 한다고? 제도와 현실의 간극 속에서 강의실을 오가는 대학생, 그들은 과연 무엇을 꿈꾸는가.
여행용 계절학기를 먼저 발견한다. 소위 다른 공기를 만끽하려고 학교를 선택하는 것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정슬기(연극원 3년)씨는 “녹음이 좋다고 해서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을 선택했다”고 말한다. 덧붙여 “한 달이라는 기간 동안 대전에 머무르는 비용으로 계절학기는 저렴한 편이다”라고 말한다. ‘배우라’보다 ‘떠나라’에 방점이 찍힌 셈.
서울공화국이 초래하는 비애도 있다. 서울의 소비문화를 동경하는 것인데, 카이스트 김광현(경영공학 3년)씨는 “대전과는 다른 분위기의 캠퍼스를 체험하고 싶었다”라고 전한다. “함께 간 친구들과 신촌에서 노느라 공부는 거의 못했다”며 “하지만 대학 문화의 한복판에서 제대로 분위기를 만끽했다”고 덧붙인다.
한예종의 정씨는 “고립된 학교의 조용한 환경이 좋았다”라고 말한 반면 카이스트 김씨는 “북적이는 학교 주변에서 밥 먹고 게임방에서 오락하며 여가를 즐겼다”라고 말해 학점 교류는 원초적인 욕구의 교환으로 더욱 활성화되고 있는 것이다. 계절학기 중에 학생들은 타 대학의 문화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하고자 한다. 수업보다 지역 문화 체험에 대한 만족도가 더 높은 이유다.
물론 진지하게 공부하는 이들도 있다. 학기별 학점 교류를 장려하는 학교에서는 유학가는 학생들을 위해 숙소를 마련해주기도 한다. 울산대의 경우 생활보조금 100만원을 지급하고 있다. 이 학교 안유진(항공우주공학 4년)씨는 “연구가 앞서 나간 학교에서 더 치열한 연구를 할 수 있었다”며 “전공 공부에 매진하며 진지하게 진로를 탐색했던 기회였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학교간 교류에 있어 학벌 계급주의는 큰 걸림돌이다. 한 지방대 관계자는 “2005학년도 1학기 서울대로 10명을 보냈지만 서울대에서 온 학생은 없었다”고 말한다. 학생 교환에서 상호교류가 아닌 일방통행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또한 한 학기 이상 수학한 이들에겐 정체성의 문제가 불거지기도 한다. 울산대 안씨는 “자기 비하에 빠지지 않으려면 목표의식을 뚜렷하게 가져야 한다”라고 강조한다. 또 다른 지방의 ㅈ대 정아무개(21)양은 “서울의 개인주의 풍토에 외로워서 중간에 포기한 친구도 있었다”며 “누군가 어느 대학에 다니냐고 물어보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스스로 헷갈려 하는 친구들도 있다”고 전한다.
낭만적 동기든, 학문적 동기든 사뿐히 다른 공간으로 비집고 들어가는 일도 대학생만의 특권이다. 그것만큼 나의 강의실을 넓히기 쉬운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특권 뒤엔 특책이 따르는 법이다. 외로움이나 향수, 자기비하에 빠지지 않으려면 항상 야망에 충실할 것. 이 시대 대학생 유목민이 살아남는 법이다.
김지수 <서울예대학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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