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7.06 22:21
수정 : 2005.07.06 22:21
팝아트 작가 나라 요시토모 서울나들이에 2만여명 관람
삼성미술관 기획 “유행에 슬쩍 걸친 명품전 불과” 혹평도
“오타쿠는 어린 시절과 성년 사이에서 머뭇거린다… 유년과 환상의 세계 속에 남길 원하면서 노동시장, 실업률, 고용 투쟁, 혹은 경제 전쟁 속으로의 진입을 최대한 늦춘다. 반항아이자 탈영병인 그들은 스스로 소속되길 거부하는 우리 세계를 사용해 나름의 세계를 만든다….”
애니메이션, 컴퓨터, 가상현실 등에 미치도록 몰입하는 일본의 마니아 집단 오타쿠에 대한 영화감독 장 자크 베넥스의 말은 요즘 미술판의 화제인 일본 팝아트 작가 나라 요시토모 한국전의 인기를 설명하는 것처럼 들린다. 삼성 미술관이 마련한 그의 전시는 올 여름 단연 주목받는 미술판 화제다. 전시장인 서울 태평로 로댕갤러리에는 평일에도 1000명 이상의 관객들이 몰리고, 악동과 동물 캐릭터를 바탕으로 한 특유의 설치물마다 길게 줄을 서는 모습이 보인다. 인터넷 블로그 등에서 수년전부터 삽화와 디자인 캐릭터가 떴던 상황이지만 젊은 관객들의 반응은 예상 이상으로 뜨겁다.
그 역시 대중문화 오타구였던 요시모토의 등록상표는 순진하면서도 악마적 분위기의 이등신 아이, 아기 얼굴과 양의 머리통을 합성한 듯한 어린 동물 이미지 등이다. 전시장 또한 이런 이미지들을 벽면과 집 모양의 독특한 설치물, 80~90년대 독일 유학기의 표현주의적인 습작들을 통해 선보이고 있는데, 8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그의 작업이력을 자연스럽고 정교한 동선으로 풀어놓은 회고전 성격이 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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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라 요시토모 작 <긴긴 밤>(왼쪽 도판·1995)과 그의 설치작업인 <훌라훌라 정원>(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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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흥미로운 건 작품 자체보다 연예스타 대하듯 그의 공간적 흔적에 열광하는 관객들의 태도다. 들머리에 건축용 나무판으로 얼기설기 지어 놓은 집 모양 설치작품인 서울하우스는 내부에 담배꽁초와 드로잉, 소장품들이 들어찬 작가의 작업실을 재현했다. 젊은 관객들은 마치 대중 스타의 내밀한 거실을 순례하는 양 진지한 표정으로 작업실 사진을 찍고 스케치한다. 한번 출입이 10명으로 제한되고 개인 소지물을 미리 맡겨야 하는 수고도 아랑곳 않는다. 또 집 곳곳의 공간에 숨겨진 여러 캐릭터 이미지들을 나무 틈 사이 구멍으로 엿보고 디지털 카메라를 들이대느라 여념이 없다. 전시제목 글씨가 있는 현관 벽과 주요 작품들 앞에서 기념사진 찍기에도 바쁘다. 마치 연예인의 팬 서비스 행사장에 온 듯한 느낌이다. 흰 격리 공간에서 작품만 응시하던 기존 감상의 습관에 한방을 먹이고 있는 셈이다.
베넥스의 말처럼 그런 열광의 힘은 성년이 되는 것을 상상력의 힘으로 거부하고 유년기의 다양한 정서를 뽑아내는 작가의 공력에서 비롯된다. 서울 하우스에 이어 나오는 <훌라훌라 정원>은 풀밭에 얼굴을 가리고 누운 아이들의 뒷모습을 벽에 붙은 고양이와 토끼, 가요 스타의 여러 이미지들이 내려다 보는 환상 정원 같다. 생존 경쟁을 피하고 싶은 젊은이들의 유아적 심리에 착 감기는 도상들이다. 냄비, 담배꽁초, 라이터와 재털이, 드로잉이 가득한 작가 작업실의 어지러운 모습과 이 시대 영악한 아이들의 전형인 <쌍둥이 1> <쌍둥이 2>의 그림들은 서울하우스 테라스에서 보이는 로댕 작품인 <지옥의 문>과도 기묘하게 시선이 얽힌다.
하지만 이런 화젯감 이면에서 미술관의 전시 철학에 대한 의구심이 드는 것도 피할 수 없다. 로댕 전과 개념미술가 안규철 전, 독일 현대작가전, 웹 아티스트 장영혜 중공업전, 근대조각 3인전 등 이 미술관의 지난해 전시목록과 견주어 이 전시를 유치한 맥락은 무엇일까. 올해 말까지 예정된 후속 전시가 중견 작가 김홍주, 현대 패션전이라는 점은 또 무엇을 뜻할까. 최근 일본 네오팝 문화의 유행 흐름을 타고 일본 순회전의 끝물에 들여온 이 전시가 ‘유행에 슬쩍 걸친 명품 전에 불과하다’는 혹평을 같이 받는 이유는 여러 전시들을 꿰는 안목과 방향 감각이 거의 보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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