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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간 사사받아
위조방지위해 구전되는
‘영세부’ 책으로 엮여
“옥새는 문화의 정수 꼭 복원을” 민씨가 이번에 정리한 영새부는 새인용0지천태(璽印用0地天泰:왕, 백성, 땅의 울림이 서로 돌고 공존해야 한다)를 시작으로 오색부수선0열(五色扶綏選0烈:인끈과 매듭은 빛깔에 따라 계층이 있다)에 이르기까지 모두 10단계로 되어 있다. 여기에는 옥새에 담아야 할 기본철학, 서법·장법, 전각, 조각, 주조술, 인끈과 매듭 등 옥새를 제작하는 모든 과정이 망라돼 있다. 민씨는 “옥새는 작아도 문화의 정수”라고 말했다. 그가 옥새전각에 입문한 것은 중2 때인 1968년. 할아버지의 친구로만 알았던 석불한테서 “한번 해볼래?” 하는 권유를 받은 것이 인연이 되어 스승의 타계 직전까지 17년 동안 사사받았다. 일찍이 석불로부터 후계자로 점 찍힌 것은 당시 그가 서예와 그림에 흥미를 가지고 배우고 있었기 때문. 그런 바탕과 흥미가 없었더라면 옥새전각 기술을 이어받지 못했을 거라는 민씨는 스승과의 만남이 운명적인 느낌조차 든다고 회고했다. 그는 스승으로부터 초윤이우(礎潤而雨) 즉, ‘어떤 결과에는 조짐이 있다’는 식으로 전각의 공간감, 예측력, 직관 등을 익혔다면서 그것이 동양학(명리학, 주역, 문자학)과 어우러지면서 총체적인 전각기술로 완성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무거운 구리덩이를 다루면서 척추를 다쳐 한때 하반신이 마비되는 고통을 겪기도 했다. 스승은 타계 일년 전에야 ‘졸업장’을 주면서 ‘마흔 이전에는 세상에 나가지 말라’고 당부했고 그는 약속을 지켰다. “옥새는 지나간 왕조의 유물이 절대 아닙니다.” 민씨는 박물관 학예사들조차 옥새를 하나의 궁중도장으로 취급한다며 개탄했다. 옥새는 종합적인 예술일 뿐더러 즉위 및 세자책봉 의식에 반드시 등장하는 등 퍼포먼스까지 포함하고 있다는 것. “의왕영왕책봉의궤에 나오는 영왕책인예궐내반차도(英王冊印詣闕內班次圖)를 보면 옥새를 실은 금인채여(金印彩轝)를 비롯한 각종 가마와 140여명의 수행원이 등장하는 장엄한 행렬이었다”면서 “이것을 재현하면 문화상품으로도 충분한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렇게 중요함에도 실제는 관심을 끌지 못하거나 외면당하고 있는 게 현실. 남아있는 옥새도 겨우 세 과에 지나지 않는다. 궁중유물전시관에는 빈갑만 남은 상태라고 민씨는 전했다. 적어도 앞으로 추진하는 왕실박물관에는 반드시 역대 옥새를 복원해 전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현재 사용하는 ‘대한민국 국새’의 형태나 균열 원인 등에 대해서 할 말이 많은 듯했으나 입을 다물었다. 글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 사진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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