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5.07.17 18:51 수정 : 2005.07.17 18:59

“총든 여군이 의주성 지켰답니다”

조용호 목포대 교수(어문학부 고전문학)는 최근 〈19세기 선비의 의주·금강산 기행〉(삼우반)이라는 책을 옮겨 냈다.

조 교수가 이 책을 발간하게 된 계기는 1998년께 서강대 도서관에서 우연히 〈금강일기 부 서유록〉을 발견하면서였다. 160년 전 한 선비가 북한 지방과 금강산을 답사한 기행문이어서 호기심을 자극했다. 조 교수는 “당시의 날씨와 풍광, 사람 사는 모습 등이 자세히 적혀 있어 매우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서유록’은 이 선비가 1846년 11월17일~12월25일 평안도를 돌며 적은 기행문이다. 의주부윤으로 있던 친구 윤치희의 초청을 받은 그는 파주와 송도(개성), 평양, 정주, 의주를 거쳐 청나라 봉성까지 여행한다. 그는 조선인과 청나라 사람들이 섞여 상업 활동을 벌였던 봉성에서 ‘귀뚫어 고리를 건 하얀 살결 아가씨’(창녀)와 청나라 상인 등 이국적인 풍경을 생생하게 기록했다.

12월5일 그는 봉성 여관 주인과 필담을 하면서 ‘양주 출신 강씨고 51살이며 벼슬은 진사고 자식 넷을 두고 있다’고 밝힌다. 조 교수는 ‘7대조 승지공이 선조를 따라 의주로 갔다’는 기록 등을 종합해 이 선비가 ‘강희영’(진주 강씨)일 것으로 추정했다.

이 선비는 12월8일 의주 기녀들이 군복을 입고 총 쏘는 연습을 하는 ‘기이한 장면’을 목격했다. “예로부터 총 쏘는 여인들(여군)을 길러 성을 지켜왔다”는 의주 사람의 이야기도 전한다. 조 교수는 “압록강에서 120리 떨어진 ‘책문’은 중국 영토인 봉성에서 30리 전인데도 의주부 군사들이 파견돼 있었다고 적혀 있다”며 “옛 간도가 옛 지도상에만 조선 영토였던 것이 아니라 조선의 지배권이 행사됐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료적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앞서 이 선비는 1841년 5월13일 친구 2명과 서울 성균관을 출발해 6월13일 금강산에 도착할 때까지 여정을 ‘금강일기’에 개성 있는 문체로 적었다. 그는 금강산 곳곳을 돌며 양사언·송시열 등 선인들이 새겨놓은 기암괴석을 발견하고 감회에 젖기도 한다. 이 책에는 정선과 김홍도가 그린 금강산·평양 그림 65장을 실어 현장감을 살리고 있다.

광주/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