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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7.20 18:28 수정 : 2005.07.20 18:42

물구나무 선 채 다리를 벌려 회전하는 에어트랙을 시범보이고 있다.

[100℃르포] 파스냄새 땀내음 뒤엉켜 돈다 돈다, 선풍기도 돌고 춤도 돌고


땀 냄새가 가득하다. 파스 냄새는 더 심하다. 무용, 연극 연습실을 수도 없이 다녀봤지만 냄새가 사뭇 다르다. 선풍기 두 대가 열심히 돌고 있다. 하지만 냄새를 쫓거나 열을 식혀주지는 못한다. 숙련된 주방장의 국자질처럼 연습실 냄새들을 ‘잘’ 뒤섞어 놓고만 있다.

‘비보잉’의 냄새다. 한 팔로 물구나무를 선 채 회전하거나 공중 돌기를 한다. 힘과 속도로 짜인 신체미가 두드러진 고난도의 브레이크 댄스다. 진원지는 서울 잠실의 신천역 근처 지하연습실. 비보잉 팀, 티아이피(TIP)의 진지다.

하루 8시간…벌써 한달째

지난 15일, 오후 6시. 그들이 춤을 추기 시작한 지는 이미 2시간. 오후 4시에 시작한 단체 연습은 밤 9시가 되어서야 끝이 난다. 그리고 자정 무렵부터 다시 2~3시간의 개별 연습이 시작된다. 한달 째다.

십 수명 사내들의 땀에 절어버린 듯 연습실 마루 바닥도 눅눅하다. 텔레비전에서나 보는 비보이(비보잉을 하는 춤꾼, 여성은 비걸)들의 머리에 두른 흰 수건, 검청색 말쑥한 힙합 청바지? 없다. 운동복의 무릎춤이 다들 헤졌다. 엉덩이는 까맣다.

“이번에 떨어지면 끝이에요.” 절절하다. “정말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연습하고 있거든요.” 이구동성이다.

티아이피는 오는 23일 서울 어린이대공원 돔아트홀에서 열리는 ‘배틀 오브 더 이어 2005 코리아’를 앞두고 있다. 여기서 우승하는 애오라지 한 팀만이 11월께 독일에서 열리는 ‘배틀 오브 더 이어’에 한국 대표로 나간다. 20년 역사를 지닌 독일 대회는 영국에서 열리는 ‘영국 챔피언십’과 함께 세계 2대 비보잉 대회로 꼽힌다.


비보이들은 이들 대회를 두고 ‘힙합의 세계 월드컵’이 부른다. 김기헌(22)은 “대회에서 우승하는 건 올림픽 금메달을 따는 것”이라고까지 말한다.

나경식(21). 손을 땅에 짚고 발을 현란하게 움직이는 풋워크가 특기다. 하지만 그는 중학교 때까지 “아무 것도 잘 하는 게 없었”던 이다. 친구 따라 추기 시작한 비보잉은 그래서 경식의 존재를 증명하는 또 하나의 ‘생명’인 셈. 대부분이 그렇다.

무릎은 해져, 엉덩이는 까맣게

국제 대회는 바로 이 생명력을 풀무질한다. 더 좌절하고, 더 역동하는 것. 한 사내가 말한다. “비보이 세계가 얼마나 냉정한지 아세요? 뭐 하나 이루면 한 달 뒤 잊혀요. 다른 새로운 모습 안 보여주면 그냥 사라져요.”



땅바닥에 팽이처럼 박혀 거침없이 도는 헤드스핀과 에어트랙이 자랑인 이종선(19)이 대전에서 올라온 이유도, 육군 병장 출신 황희왕(24)이 2년 전 제대 후 가방 하나 들고 서울로 올라온 이유도 그것이다.

맏형 황대균(27)이 10여 년 전 티아이피를 만들어 지금까지 존속시켜온 그 오랜 세월 또한 ‘길거리 아이’들의 치기나 겉멋으로만은 설명되지 않는다. 일탈의 결과란 성인용 시선으론 더 해석되지 않는다.

선풍기는 쉬지 않는다. 냄새가 비트 강한 음악에 섞인다. 한 명씩 돌아가며 개인기를 펼쳐보이는 군무(퍼포먼스)가 이어진다. 권현수(20)가 거꾸로 물구나무 선 채 일어서며 프리즈(순간 정지 동작)로 장식한다. 뒤에 선 무리들의 추임새도 춤이다. 박수도, 환호도 춤이다. 멈출 수 없어 보인다. 찰나, 황영귀(20)의 눈가가 현수의 발놀림으로 인해 찢어진다. 피가 묻어난다. 춤은 그제야 멈춘다. 영귀는 급히 병원에 실려가고, 비트 강한 말소리가 전해져온다. “이런 젠장. 눈이 이만큼 부었는데, 영귀 없으면 퍼포먼스 못 해요.” 그 사이 희왕은 말했다. “어디 한 구석 안 다친 애들이 없어요. 아, 이러면 안 되는데.”

이번 한국 대회에 참여하는 팀은 고작 10개 남짓. 하지만 독일 대회에서 우승하는 것보다 더 버겁다. 한국 비보이의 실력은 세계적이다. 한국 대표팀은 처음 출전한 2001년 독일 대회에서 베스트쇼상을 수상한 이래, 상을 놓친 적이 없다. 2002년 대회에서는 ‘익스프레션’ 팀이 우승을 했다. ‘갬블러’ 팀은 2003년엔 3위, 이듬해엔 우승을 했다.

한국 대회에서 다른 모든 팀을 물리쳐야 한다. 한국 비보이들의 숙명이다. 전 대회 우승자 자동진출 원칙에 따라 2003년 독일대회에 출전해 2등을 했던 익스프레션처럼, 올해 자동진출해 또 한 차례 세계 우승에 도전하는 갬블러만 빼고.

2002년 이후 국내전에서 항상 2, 3위를 했던 팀이 티아이피다. 2003년까지 국내전 대부분을 휩쓸었지만 세계 대회와 관련해서만은 유독 운이 닿지 않았다. 그 뒤 슬럼프도 적잖았다. 2001년 독일 대회 때는 사실 프로젝트팀이 참가했는데, 티아이피 식구들만 4명이었다. 2003년 영국대회에서 우승한 프로젝트 팀에도 5명이 참여했다.

“우리가 일본팀인 줄 알더라고요. 한국이라고 말해줬죠. 세계 대회의 물꼬를 우리가 튼 거예요. 자부심도 대단했죠.”(나경식) 올해가 절실한 건 그러나 화려한 과거를 기억한 때문은 아니다. 내년이 되면 주 멤버 가운데 3명이 군대를 간다.

찰나, 한 친구의 눈가에 파가…

헤드스핀
선풍기는 돈다. 춤도 계속된다. 무엇을 위해서가 아니라 살아있어서 춘다. 아르바이트나 막노동을 하면서까지 춤을 춘다. 20대 한 복판을 도려내어 온전히 비보잉에 내건다. 그 뒤는 자신들도 모른다.

희왕이 거꾸로 덤블링을 하더니 다시 제 자리로 점프한다. 등을 거꾸로 활처럼 휜 채 손을 내뻗는다. 다른 비보이들도 일제히 같은 방향으로 손을 뻗는다. 춤의 끝이 마치 20대의 끝이 아니길 바라는 몸짓이다.

“남들 나이트 가고 술 먹고 놀 때 우린 여기서 춤을 추거든요. 미친 듯 땀 흘리고요. 부모님은 미쳤느냐고 해요. 네, 그럼요. 미쳤을지도 몰라요.” 말짱한 눈빛으로 경식이 말한다. 그리곤 되묻는다. “젊었을 때 이렇게 한 가지 일에 미치는 사람들 어디 많나요?”

시진 김태형 기자 0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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