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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7.20 19:51 수정 : 2005.07.20 19:55

정이현 소설가

저공비행

무엇이 우등하고 열등한 취향인지 감별할 자 누구인가

얼마 전 문화방송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 대한 칼럼을 쓴 적이 있다. 신문사 쪽에서 ‘그래. 나 삼순이다. 어쩔래?’ 라는 제목을 달았다는 걸 지면을 보고야 알았다. 평소 내가 어떤 문예지에 무슨 소설을 발표하는지 따위에는 전혀 관심 없던 친구들이 줄줄이 전화를 걸어왔다. “야, 네가 무슨 삼순이야? 삼순이가 너보다 몇 살이나 어린 줄 몰라?” “그거 내가 붙인 제목 아니란 말이야. 나는 그냥 기자가 삼순이 보냐고 물어봐서 열심히 보고 있다고 대답한 거밖에 없단 말이야. 그러다가 얼떨결에 글 하나 쓴 거밖에 없다고.” “어이구, 바보야. 아무리 그래도 네 이름 석자 걸고서 조간신문에다가 떡하니, 삼순이 하는 시간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다고, 드라마 보면서 가슴이 뛴다고 쓰면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 사람들이 널 얼마나 무시하겠어?” “날 왜 무시해? 전 국민이 다 보는 드라마를 나도 재밌게 본다는데.” “그래도 그게 아니지. 뭐랄까, 수준이 낮아 보이잖아. 다른 소설가들이 너 때문에 괜히 도매금으로 넘어가면 어떻게 해!” 참, 그렇지. 잠시 까먹고 있었다. 나는 소설가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어쨌거나, 이른바 순수문학을 하는 사람인 것이다. 그런데 왜 드라마를 재밌게 본다고 말하면 안 되는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현실에서 처음 만나는 이에게 직업을 밝히면 거의 대부분 비슷한 반응이 돌아온다. “이거 참, 제가 워낙에 책을 안 읽어서 말이죠.” 그들이 황당하면서도 겸연쩍다는 표정을 감추지 않기 때문에 괜히 내가 더 미안해진다. 이윽고 그들은 한결같이, 토씨 하나 다르지 않게 묻는다. “드라마나 시나리오는 안 쓰세요?” “글쎄요. 별 계획 없는데요.” “왜요? 그 판이 돈을 많이 번다던데. 사실 요즘 누가 책사서 읽나요? 아, 아무래도 대중문화쪽은 수준이 좀 안 맞으신가 봐요?” 이쯤 되면 등줄기로 식은땀이 흐른다. 이제는 그 놈의 ‘수준’ 이라는 단어만 들으면 대놓고 놀림 받는 기분이 된다. (혹시 몰라서 하는 말인데 수준이라는 말이 취향을 뜻하는 것으로 바뀌었다면, 시트콤 <귀엽거나 미치거나>의 어이없는 조기종영으로 인한 충격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현빈과 다니엘 헤니의 실물을 보고 싶어 잠 못 이루는 것이 딱 내 수준이다.)

물론 한 명의 직업인으로서, 또한 -아직은 내 입으로 말하기 부끄럽지만- 한 명의 예술가로서 나는 소설 쓰는 일에 상당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내가 하는 작업이 세상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큼 정신적으로 ‘빡 센’ 일이라고 생각한다. 여론조사를 해본 적은 없지만, 창작을 업으로 하는 그 누구라도 모두들 내심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으리라 짐작한다. 단 한 장의 원고를 위하여, 단 한 번의 무대를 위하여, 단 하나의 컷을 위하여 홀로 감내해내야 하는 스트레스의 무게는, 감히 자기 영혼을 숙주 삼아 ‘없는 세계’를 창조하려는 자가 치러야 할 오만의 대가일 것이다. 그리고 너무나 당연하게도, 그 고통의 중량은 ‘순수예술’ 작가와 ‘대중문화’ 작가 모두의 어깨를 공평하게 내리누른다.

순수예술과 대중예술, 고급문화와 대중문화를 나누는 이분법은 이미 오래 전에 의미를 잃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문화 소비자로서의 하나의 ‘개인’은 일면성을 가진 존재가 아니다. <친절한 금자씨> 개봉일을 손꼽아 기다리고, 부천 필하모닉의 말러 연주회에 다녀오고, 오규원 시인의 새 시집을 읽고, 동시에 낄낄대며 시트콤 <올드미스 다이어리>를 보는 것이 바로 지금, 이곳을 사는 문화향유자의 모습이다. 한 사람 안에 다양한 문화적 취향들이 진즉에 뒤섞여 혼재되어 있는 것이다. 무엇이 우등하고 열등한 취향인지 콕 집어 감별할 수 있는 자, 그 누구인가. 파닥파닥 살아 움직이는 것은 자율적인 문화 텍스트들뿐이다. 앞으로 나의 저공비행은 단수(單數)로서의 문화가 아니라 복수(複數)로서의 ‘문화들’을 향한 즐거운 관찰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 자그마한 결심으로 첫 인사를 대신한다.

정이현/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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