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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평양 고려호텔에서 남북작가대회 참석차 방북한 소설가 황석영(오른쪽)씨가 소설 <황진이>의 작가인 홍석중씨와 만나 포옹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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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작가대회서 얼싸안은 소설가 황석영-홍석중
평양과 백두산 등지에서 열린 ‘6.15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민족작가대회’(이하 남북작가대회)에 참가한 남쪽대표단(단장 고은) 98명이 6일간의 방북 일정을 마치고 25일 귀국했다. 대표단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르면 내년 6월 서울, 광주, 제주 등을 순회하는 제2차 남북작가대회를 열 계획”이라고 밝혔다. 남북의 문인들은 이번 행사를 통해 △6.15 민족문학인협회 구성 △통일문학상 시상 △문예지 공동 발행 등에 합의하는 성과를 얻었다. 이와 별개로 남북의 대표적 소설가인 황석영씨와, 벽초 홍명희의 손자이자 <황진이>의 작가인 홍석중씨가 공동창작을 하기로 합의했다. 89년 황씨가 방북했을 당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지난 21일 평양 고려호텔에서 다시 만나 “장르에 구애받지 말고 둘이 함께 글을 쓰자”고 약속했다. 창비 만해문학상 홍형이 받아 통쾌
문학의 힘 분단 뛰어넘은 일대 사건
‘황진이’ 민초·아름다운 우리말 감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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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 작가 황석영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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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나는 벽초 선생의 <임꺽정>을 1950년대에 누나들이 빌려온 책으로 어깨너머로 보면서 자랐다. 1970년대 구로공단 전자산업회사에 들어가 낮에 고된 일을 하고나서도 밤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임꺽정>을 손에 잡으면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나는 <임꺽정>을 세번 탐독했다. 벽초 선생의 문체에서 우리 말의 정체성을 공부했다. 벽초 선생이 없었다면 <장길산>을 쓸 수 없었을 것이다. 지난해 홍석중씨가 남쪽의 출판사 창비가 주관하는 만해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되었다는 소식을 런던에서 듣고 깜짝 놀랐다. 그리고 통쾌했다. 그것은 문학의 힘이 분단의 높은 벽을 뚫은 일대 사건이었다. 만해문학상 수상작 <황진이>를 보면서 우리 둘이 서로 떨어져 있어도 생각은 그리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했다. 민초, 민중, 백성의 삶 속에 면면히 흐르는 뜻을 놓치지 않았다는 데서 감명을 받았다. 그사이 더 풍부하고 능숙해진 우리 언어를 만날 수 있었고, 거침없는 남녀간 감정 묘사도 돋보였다. 난 ‘장길산’ 애독자…머리맡 꽂아둬
내 소설과 닮아 뿌리 하나란 생각
황형 첫 방북때 분단문학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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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작가 홍석중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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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중=<황진이>를 내고, 또 이렇게 황형을 만나 소감을 듣고 새삼 깨달은 것이 있다. 우리는 절대 분리해서 살지 못한다. <임꺽정>이 <장길산>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나는 <장길산>의 제일 애독자이다. 나만큼 <장길산>을 많이 읽은 독자도 없을 것이다. 머리맡에 늘 꽂아두고 순서없이 꺼내 읽는다. 어설픈 데도 있지만 매번 감탄한다. 그런데 <장길산>과 내 소설이 어딘가 모르게 닮은 데가 있다. 그러니까 서로 보완하는 거다. 우리 문학의 뿌리는 같은 거다. 우리 할아버지가 쓴 <임꺽정>은 할아버지 당신도 인정했지만 하층 생활을 잘 그리지 못했다. 우리 할아버지가 하층민의 생활을 잘 몰랐기 때문이다. 나 역시 하층민 생활에 대해 잘 몰랐는데 <장길산>을 통해 광대를 배웠다.
황=16년 전 나 혼자 북에 와 뒷골목 다니듯이 다녔는데 지금 남쪽 문인 100여명이 비행기를 타고 평양에 왔다. 이제 남북 문학이 하나가 되었다.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은 우리가 같은 말을 써왔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우리 말을 누가, 무엇이 갈라 놓을 수 있는가. 우리 문학은 하나다. 통일이 된 뒤 후세들은 ‘남과 북을 철통같이 갈라놓았는데 어떻게 하나가 될 수 있었을까’라며 깜짝 놀랄 것이다. 철통같은 분단의 벽 밑으로 소통이 있었던 것이다. 홍형과의 귀한 인연도 바로 그런 소통이다. 홍=우리 문학에서만큼은 분단문학이란 말을 쓰지 말자. 1989년 황형이 북에 왔을 때 이미 분단문학은 없어진 것이다. 황=나는 홍형의 그런 낙천성이 부럽기만 하다. 홍=16년 전에 약속했던 것이지만 우리 둘이 같이 작품을 쓰자. 짧은 것이든 긴 것이든 가리지 말자. 이젠 때가 되었다. 우리는 동시대를 살았고 아픔도 같이 느껴왔다. 서로 떨어져 있어도 늘 같은 생각을 하지 않았는가. 우리의 인간적이고 문학적인 친교를 이제 총화의 차원으로 갖고 가야 한다. 우리 둘이 같이 쓰는 것이 우리 문학이 하나되는 것이다. 편지글도 좋고 대담도 좋다. 장르를 구분하지 말자. 황=참 좋은 생각이다. 추진하자. 우리 둘이 소설을 번갈아 이어가며 쓸 수도 있겠다. 우리 후배들이 남북을 오가면서 서로의 원고를 전해주고. 정말 멋진 일이다. (평양=공동취재단)최재봉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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