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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문영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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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공비행
‘칼의 노래’ ‘불멸의 이순신’ ‘천군’ “보라, 우리 눈앞에 나타나는 그의 모습 /거북선 거느리고 호령하는 그의 위풍 /일생을 오직 한길, 정의에 살던 /그이시다, 나라를 구하려고 피를 흘리신 그이시다 /충무공, 오 충무공, 민족의 태양이시여 /충무공, 오 충무공, 역사의 면류관이여…”. 30년 가까이 한번도 떠올리지 않았던 이 가사를, 어제 본 영화의 결말도 곧잘 잊는 내 두뇌는 놀랍게도 기억하고 있었다. 초등학교 때 ‘면류관’이란 단어의 뜻도 모른 채 배워 충무공 탄신일마다 불렀다. 그리고 언젠가 그 노래를 떠났고 이순신을 잊었다. 이순신은 관제 영웅이었다. 군인 대통령 박정희는 재임 18년 동안 14번이나 이순신 탄신일 기념행사에 참석할 정도로 그를 숭배했다. 현충사를 성역화했고, 광화문에 거대한 동상을 세웠으며, 끔찍하게 관변적인 수사로 채워진 이런 노래를 만들어 아이들에게 평생 잊지 못할만큼 반복하게 만들었다. 이순신의 재등장은 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의 대중적 성공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올해엔 그 소설이 원작이라는 텔레비전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이 제작돼 현재 방영되고 있다. 지난주에는 그를 주인공으로 삼은 영화 <천군>이 개봉됐다. 2005년 7월 현재, 내 주위엔 세 명의 이순신이 어른거리고 있다. 각기 다른 이순신이다. 나는 <칼의 노래>를 좋아했다. 이를테면 이런 대목. 한반도를 죽음의 땅으로 만든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죽기 직전 이런 시를 남긴다. ‘몸이여, 이슬로 와서 이슬로 가니 /오사카의 영화여, 꿈속의 꿈이로다’. 그 시를 전해 듣고 이순신은 이렇게 독백한다. “저러한 시구를 이 세상에 남겨두어서는 안된다고, 진실로 이 남쪽 바다를 적의 피로 붉게 물들이지 않으면 안된다고, 내 술 취한 칼은 마구 울었다.” 김훈의 이순신은 왜군을 증오하지 않는다. 그가 증오하는 건 도요토미가 아니라 그 ‘허무하고 요염한’ 수사다. 실은 그는 모든 수사를 견딜 수 없다. 그 수사의 배후에서 작동하는 당대의 가치를 견딜 수 없다. 그는 조선의 무인이었고, 적이 왔을 때 싸워야 했다. 임금이나 백성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 자리에 있었기에 싸워야 했다. 그는 육체의 명령에 따른다. 그는 자신의 검에다 이렇게 새겼다. ‘한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피가 강산을 물들이도다.’ 그의 칼에 ‘충’이나 ‘의’가 아니라, 칼의 본성에 집중한 건조하고 차가운 문장이 새겨져 있다는 사실에 나는 깊이 안도한다. 그는 잔인하며 냉정한 사람이다. 이순신은 이렇게 독백한다. “적의 적으로서 죽는 내 죽음의 자리에서 내 무와 충이 소멸해주기를 나는 바랐다.”텔레비전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은 김훈의 이순신의 독백을 간혹 인용하지만 일본군을 사악한, 때로 서툰 타자로, 이순신을 나라의 앞날과 백성의 고통을 근심하는 민족 영웅으로 만든다. 이순신을 연기하는 김명민의 어둡고 깊은 얼굴과 선조의 신경증에 대한 묘사가 없었다면, 이 드라마는 <칼의 노래>보다 30년전의 노래에 훨씬 가까울 뻔 했다. 영화 <천군>은 이순신이 무과에 급제하기 전에 평범한 청년이었을 것이라는 가정 하에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남북연합군이 청년 이순신을 도와 여진족을 물리친다는 이야기다. 한반도 핵무장을 은근히 지지하는 이 영화의 견해는 위험하지만 결국 논쟁거리일 것이다. 견디기 힘든 건 여진족이 이유 없이 조선의 아이를 살해함으로써, 별 생각 없던 이순신을 분노케 해 영웅적 지도자로 나서게 만드는 장면이다. 이 무서운 동기화는 파시스트 정치학의 산물이다. 타자가 한없이 사악해짐으로써, 내가 정립되는 것이다. 세가지 욕망이 세가지 이순신을 만들었다. 나는 어느 이순신이 실재와 가까운지 알 수 없다. 다만, 이순신의 이름이 다시 국가주의적 선동에 동원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 끔찍한 노래를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다. 그리고 삶에 내재하는 불안과 모멸을 타자에 대한 증오로 치환하는 나쁜 서사를 다시 만나고 싶지 않다. 허문영/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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