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짱’ 되면…학교에서 대접이 달라져요
영화 <어른들은 몰라요>와 텔레비전 프로그램 <신세대 보고, 어른들은 몰라요>, 그리고 책과 노래로 만들어진 숱한 ‘어른들은 몰라요’. 어른들이 오죽 10대들을 몰랐으면 제목을 그렇게까지 달았겠나. 그래, 어른들은 10대를 모른다. 그 녀석들이 왜 콘테스트에 열광하는지, 그들에게 콘테스트는 어떤 의미인지 본인들 만큼 알 수가 없다. 그래서 10대들에게 직접 들어봤다.
● <여고괴담 4> 주인공 김옥빈(19)
허황된 꿈 좇는다고? 꿈 실현 발판이다
굳이 물어보니까 대답하는데, 친구들한테 예쁘다는 얘기는 많이 들었다.(웃음) 한번 몰두하면 무섭게 파고들지만 싫증을 잘내는 성격도 연기자라는 직업에 잘 맞는 것 같다. 하지만 콘테스트가 아니었다면, 연기자가 되지 못했을 거다. 지난해 두번의 콘테스트를 통해 인생을 바꿨다.
첫번째 콘테스트는 2003년 말부터 2004년 초까지 열린 1차 네이버 얼짱 콘테스트였다. 참가자가 4만명이었고, 경쟁률이 ‘2000:1’이라 뽑힐 거라는 생각은 솔직히 안 했다. 하지만 친구들과 전략회의까지 한 끝에 1등으로 뽑혔다. 막춤을 춘 뒤 특기인 합기도를 선보였다. 특출나게 훌륭한 장기를 선보이지 않는 한 차라리 망가지는 게 낫다는 회의 결과였다. 콘테스트 뒤 기획사와 계약했다.
두번째 콘테스트는 <여고괴담 4> 주인공 선발대회였다. 밤새워 대본을 외워 면접을 통과했고, 1박2일 합숙 준비도 열심히 했다. 영화에서 내가 맡은 ‘영언’은 양면성이 있는 인물이다. 내 안에 있는 양면성을 보여주려 노력했다. 나중에 감독님도 신나게 놀다가 심각하게 진지해지는 내 모습에서 영언을 발견하셨다고 했다.
어른들은 콘테스트, 특히 ‘연예인 콘테스트’에 대한 편견이 있다. 허황된 꿈을 좇다 정작 중요한 일을 놓칠까 걱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10대들도 바보는 아니다. 우리는 끼를 표출하는 방법으로 콘테스트를 선택했을 뿐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10대들은 콘테스트를 거치면서 오히려 자기 미래를 더 확실히 설계한다. 끼를 인정받으면 기회를 잡고 계속 그 길로 밀고 나아가는 거고,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미련없이 다른 길을 찾는다.
● 인천 화도진중 2학년 이유리(14)
한마디로 재밌는 놀이다
공부는 딱 중간이지만 만화를 잘 그리고 글짓기도 잘 한다. 그리고 서태지 광팬이다. 올 10월에 있을 서태지 콘서트에도 기필코 갈 거다. 하지만 콘서트 티켓이 너무 비싸다. 그래서 특기를 살려 상금이 걸려 있는 만화 콘테스트에 나가기로 했다.
8월 초에는 서태지 컴퍼니에서 개최하는 ‘마니아 페스티벌’ 카툰 대회에 나간다. 경쟁자들이 워낙 쟁쟁해서 입상을 장담할 수는 없다. 하지만 1등 하면 상금 50만원이고, 2등 20만원, 3등은 10만원이란다. 1주일 동안 꼬박 그려 서울 국제 만화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도 카툰을 냈다. 대상 200만원, 최우수상 50만원이다.
지난해에도 그랬다. 서태지 콘서트 티켓이 10만원이었는데, 글짓기 콘테스트에서 상금을 받은 덕에 갈 수 있었다. 인천 동구청에서 주최하는 콘테스트에 나갔다. ‘엄마’를 주제로 수필을 썼는데, 최우수상과 함께 상금 7만원을 받았다. 여기에 용돈을 보태 티켓을 구입했다.
물론 상금만 바라고 대회에 나가는 건 아니다. 그림 그리고 글쓰는 걸 잘하고, 좋아하기도 한다. 오래전부터 콘테스트에 꼭 나가보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최대 목표는 역시 입상과 상금이다. 아르바이트는 너무 힘들고 시간도 많이 들기 때문이다. 한달 내내 새벽잠 설쳐가며 신문을 돌려봤는데, 15만원 밖에 안 줬다. 그 시간에 열심히 콘테스트 준비해서 상을 받으면, 상금도 받고 경력도 쌓고 기분도 좋고 일석삼조다.
● 서울 대신고 2학년 윤희성(17)
상금 받고 경력 쌓고 기분도 좋아 ‘일석삼조’
취미는 주인공 시점에서 적을 물리치는 ‘1인칭 슈팅 게임’이다. <카르마> <히트 프로젝트> 같은 게임을 특히 좋아한다. 게임 콘테스트? 한 마디로 재밌는 놀이다. 친구들과 팀을 짜 1인칭 슈팅 게임 콘테스트에 나가 노는 것은 특히 재밌다.
지난 5월 인터넷 게임사이트에서 ‘히트 프로젝트 전국 학교 콘테스트’ 배너광고를 봤다. 한달 동안 게임 포인트를 가장 많이 올리는 팀이 우승하는 콘테스트였다. 반 친구들한테 소문내서 10명을 더 모아 대회에 참가했다. 처음엔 10등 밖이었다. 중간고사 기간이었지만 하루 3시간 넘게 게임에 열을 올렸다. 어떤 친구들은 밤새워 게임을 하며 포인트를 올렸다. 합심의 힘이랄까? 우승했다. 상품은 덤이었는데, 최신형 휴대폰 11개가 나왔다. 친구들이랑 인터넷 경매사이트에 올려 개당 45만원에 팔아 나눠가졌다. 덤치곤 세지?
처음 게임 콘테스트에 나간 것은 중3 초였다. 케이블 텔레비전 게임 채널에서 여는 1차 ‘카르마 리그’에 중2 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 3명과 함께 출전했다. 4등 했다. 새롭더라. 그래서 같은 해 2차 리그에는 중3 같은 반 친구들과 팀을 꾸려 출전했고, 8강에 들었다. 농구하고 잡담하는 것 말고 친구들과 함께 놀만한 꺼리가 없다. 그래서 콘테스트에 나가면 신난다. 더 중요한 건, 일단 게임에 함께 나가면 평소에 얘기 한번 안 하던 애들이랑도 금세 친해진다는 거다.
그리고 이구동성!
세 사람은 한결같이 말했다. 학교에서는 공부 말고 다른 재능을 인정받을 기회가 없었다고. 공부를 잘 하지 못했기 때문에 딱히 주목받을 일도 없었다고. 하지만 콘테스트에서 상을 받아오면 선생님과 친구들의 ‘보는 눈’이 확실히 달라졌단다. 그래서 자신감도 얻었다고 했다.
글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사진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30∼40대들이 말하는, 그때는…
“얼짱 미스롯데 공부짱 장학퀴즈 ‘꿈의 무대’ 였지
|
100도
|
1970~80년대 청소년들이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뽐냈던 대표적인 ‘콘테스트’를 꼽으라면 <장학퀴즈>와 미스 롯데 선발대회를 빼놓을 수 없다. 고만고만한 모의고사, 백일장 따위와는 비교가 안 되는 ‘꿈의 무대’였다. 요즘말로 바꾸면 미스 롯데는 ‘얼짱’, 장학퀴즈는 ‘공부짱’으로 인정받는 공식통로인 셈이었다.
‘빱빠바~.’ 하이든 트럼펫 협주곡 이플랫 장조 3악장이 흐르면 ‘모범 학생’ 다섯여명의 근엄한 표정이 카메라에 잡혔다. 학교의 명예를 짊어진 터라 바짝 긴장한 모습들이었다. 주장원, 월장원, 기장원까지 대장정이 남았다. 이렇게 고등학생 1만여명이 <장학퀴즈> 무대에 섰다. 1973년 2월18일 문화방송에서 시작한 뒤 1997년부터는 교육방송으로 자리를 옮긴 <장학퀴즈>는 올해로 1670여회에 접어든 최장수 프로그램이니 그럴만하다. 진행자도 차인태, 원종배, 박정숙, 송은이씨 등 30여명이 지나갔다.
1986년 기장원을 했던 권대석(35)씨는 이렇게 회상한다. “친구들의 반응이 열광적었어요. 제가 인기랑은 좀 거리가 먼 학생이었는데 장원한 뒤에 여학생들이 편지도 보냈다더군요. 선생님이 미리 받아 태워버리는 바람에 직접 읽지는 못했지만요.” 반면 2001년 기장원을 한 백종현씨의 기억은 이렇다. “그리 큰 화제는 아니었어요. 반에서나 좀 알아주는 정도였죠. 옛날처럼 그리 인기 있는 프로그램도 아니고 요즘 친구들은 관심사도 워낙 다양하니까요.”
90년대까지는 문학, 과학, 사회 등 5개 분야에서 문제가 나왔다면, 요즘엔 수능시험 관련 문제와 시사 상식 등이 반씩 출제된다고 한다. 또 달라진 건 70년대만 해도 8:2 정도로 소수였던 여학생의 출연 비중이 늘어 이제는 절반을 차지한다는 점이다.
<장학퀴즈>와 달리 미스 롯데는 어색한 화장을 한 풋풋한 청춘들로 빛났다. 원미경씨, 이미숙씨, 안문숙씨 등은 고등학생 때 이 무대를 통해 스타덤에 올랐다. 동네에서 예쁘다는 말께나 듣는 사람 치고 미스 롯데를 꿈꾸지 않은 이가 드물었을 정도였다고 한다.
81년 인기상을 받은 안문숙씨는 “내가 생각해도 그때 나 참 고왔다”라며 말문을 열었다. “학교와 부모님 허락을 받아야 했어요. 보수적이었던 선생님이 처음엔 허락 못 해주겠다고 했죠. 졸라서 겨우 받아냈어요. 개인기 같은 건 없고 외모 하나 믿고 나가는 거였죠. 경쟁률이 대단했어요. 37명을 뽑고 상은 5명에게만 주는데 제가 3192번, 모두 5천명이 지원했더라고요. 미스 롯데 되고나자마자 편지가 쌓이고…. 불행 끝 행복 시작이었다고 할까요?” 그의 동기가 조용원씨, 김현주씨(교통방송 ‘김현주의 라이브 에프엠’ 진행) 등이다.
1980년대 초반까지 이어지던 미스 롯데는 1987년 롯데 전속모델 선발대회로 바뀌었다. 그 첫번째 무대에서 뽑힌 배우 이미연씨는 한 남성의 옷자락으로 들락날락 얼굴을 내미는 초콜릿 광고로 청순한 매력을 뽐냈다. 간헐적으로 열리던 이 선발대회는 1994년 막을 내렸다. 최경인 롯데제과 홍보과장은 “선발 과정이 까다롭고 일이 많았는데 그만큼 광고효과를 거두지는 못한다는 판단에 끝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