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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통일문학의 해돋이’ 행사가 끝난 뒤 작가 홍석중(왼쪽)씨가 기자와 함께 백두산 천지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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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에서만난작가들] ① 소설가 홍석중
지난 20~25일 평양과 백두산, 묘향산 등지에서 열린 ‘6·15 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민족작가대회’(이하 남북작가대회)는 남과 북 사이의 문학적 분단을 넘어서는 첫걸음이었다. 남쪽 작가가 북쪽 잡지에 작품을 발표하고, 북쪽 작가의 작품을 남쪽 독자들이 읽는 식의 ‘문학적 통일’이 눈앞에 성큼 다가왔다. 남북작가대회에서 만난 북쪽 문인들을 차례로 소개한다. 홍석중(64)씨를 만난 것은 두 번째였다. 지난해 말 금강산에서 열린 만해문학상 시상식이 첫 번째 자리였다. 그 역시 남쪽 기자를 만나기는 처음이었을 텐데도, 홍씨는 별다른 주저와 거리낌 없이 말을 이어갔다. 좌중을 휘어잡으며 자주 웃게 만드는 말솜씨는 흡사 남쪽 작가 황석영씨를 떠오르게도 했다. 평양 도착 첫날인 20일 저녁 인민문화궁전 연회장에 들어서는 그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그는 금강산에서 만났던 기자의 얼굴을 금방 기억해 내고는 환하게 웃으며 다짜고짜 끌어안았다. 첫 번째 평양행의 긴장을 씻게 만드는 따뜻한 환대였다. 대회 기간 내내 그는 흡사 막내동생을 대하듯 기자의 이름을 친근하게 불렀다. 23일 새벽 백두산에서 있은 ‘통일문학의 해돋이’ 행사가 끝난 뒤에는 기자를 따로 불러 기념사진을 찍고 느닷없이 뺨에 뽀뽀를 하기까지 했다. 그만큼 거침이 없었다. ‘황구라’ 닮은 ‘홍구라’ 입담 대회 기간 내내 그는 남쪽 문인들 사이에 ‘스타’였다. 백두산에서는 천지를 배경으로 그와 기념사진을 찍으려는 남쪽 작가들이 줄을 이을 정도였다. 그의 소설 〈황진이〉가 남쪽에서 출간되어 호평 속에 읽혔다는 사실이 그와 무관하지 않을 터였다.(그는 이번 대회 기간에도 〈황진이〉의 남쪽 출간이 자신의 동의를 얻지 못한 불법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그가 〈임꺽정〉의 작가인 벽초 홍명희의 손자이자 국어학자 홍기문의 아들이라는 ‘배경’ 역시 남쪽 작가들의 관심을 샀을 것이었다. 역사소설은 남쪽 독자도 공감 홍석중씨는 1941년 9월 서울에서 태어나 48년 조부인 벽초를 따라 월북했다. 69년 김일성종합대학 어문학부를 졸업한 그는 70년 첫 단편소설 〈붉은 꽃송이〉를 발표했다. 그러나 30대의 10년 가량은 문학이 아닌 연극에 빠졌다가 79년부터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에 소속돼 창작 활동을 시작했다. 작가로서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린 작품은 남쪽에서도 출간된 적이 있는 장편 역사소설 〈높새바람〉(상권 83, 하권 90)이었다. 1506년 중종반정에서 1510년 삼포왜란까지 이어지는 시기를 배경 삼은 이 소설은 그가 과연 벽초의 손자임을 알 수 있게 해주었다. 지배계급이 아닌 민중의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보며, 겨레의 언어와 정서와 습속을 여실히 재현했다는 점에서 그것은 그러했다. 심지어는 소설의 시대적 배경 역시 〈임꺽정〉보다 불과 수십여 년 앞선 무렵이었다.(이런 유사성 때문에 북에서는 〈높새바람〉이 처음 발표되었을 때 벽초의 유작이 아닌가 하는 소문이 돌았다고 한다) 홍석중씨는 미완으로 끝난 벽초의 〈임꺽정〉 뒷부분을 마무리하여 〈청석골 대장 임꺽정〉이라는 이름으로 내놓기도 했는데, 이 역시 지난 80년대 말에 남쪽에서 출간된 바 있다. 〈높새바람〉에서부터 〈황진이〉(2002)에 이르기까지 그가 주로 역사소설을 써 왔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역사소설은 분단이라는 정치적 요인에 구애받지 않고 남북 민중 모두의 공통 기억과 정서에 호소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닌다. 그런 점에서 그는 남쪽 독자들이 북쪽 문학에 접근하는 데 발판으로 삼을 만하다. 황석영과 공동집필에 큰 기대 〈높새바람〉의 ‘맺음말’에서 그는 “역사의 물면 위에 뚜렷하게 솟아오른 역사적 사건들을 정확하게 이해하자면 물면 위에 솟아오르지 못한 이면사들과 작은 사건들, 잊혀지고 파묻힌 이름들에 대하여 각별한 주의를 돌려야 하는 것”이며 “진정한 역사는 민중들의 마음 속에 깃들어 대를 거쳐 마음으로 전해지는 것”이라 밝혔다. 이런 관점과 태도는 남쪽 작가들의 역사소설관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 점에서 홍석중씨가 이번 남북작가대회에서 황석영씨와 ‘공동작업’ 의지를 밝힌 것은 큰 관심과 기대를 모은다. 남과 북을 대표하는 두 소설가가 힘을 합쳐 이뤄낼 성과는 통일문학의 신새벽을 여는 쾌거가 될 것이다. 글·사진/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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