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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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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공비행
저항의 무기랍시고 꺼낸게 고작 바바리맨의 그것이냐 ‘바바리맨’은 신출귀몰하기도 하다. 여학교 앞 어스름한 골목길에서, 대낮의 지하철 안에서, 아침 출근길의 버스정류장에서, 그밖에 감히 상상치도 못했던 여러 일상적인 공간 속에서 대한민국 여성들은 그 ‘맨’들과 마주쳐 왔다. 자꾸 보다 보면 제법 익숙해지지 않느냐고? 미안하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다. 그것이 폭력의 특성이다. 중학교 때 우리학교 앞에 단골로 나타나는 ‘맨’이 하나 있었다. 허구 헌 날 맞닥뜨리면서도 소녀들은 그를 목격할 때마다 꺅꺅 소리를 질러댔다. 한 선배언니가 말했다. “너희가 비명을 지르니까 그놈은 지가 잘나서 그런 거라고 오해하잖니. 앞으로는 놀란 척 하지 말고 그냥 무시해버려. 너는 하던 일 마저 해라, 나는 그냥 지나가겠다, 이런 표정으로!” 공포 섞인 비명으로 저를 맞이해야 마땅할 소녀들의 냉정하고 심드렁한 반응이 불만스러웠던지 얼마 뒤 그는 진짜 사라졌다. 물론 또 다른 새된 비명을 찾아 영업장을 옮겼을 테지만. 이쯤에서 그 얘기를 해야겠다. 온 국민이 다 알고 있는 그 사건 말이다. 유감스럽게도 나는 그 사건의 직접적인 목격자다. 지난 토요일, 날은 덥지, 쓰고 있는 소설은 안 풀려서 답답하지, 일도 안 되는데 밥은 먹어 뭘 하나 자책하며 밥 대신 수박을 썰어 입에 넣던 중이었다. 눈은 습관적으로 텔레비전 화면을 쫓고 있었다. 그때 그들이 나타났다. 누구나 그랬겠지만 처음에는 나도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파악하지 못했다. 어, 지금 쟤들이 뭐하는 거지? 어, 어, 아니, 설마! 홀딱 벗은 채로 펄쩍펄쩍 점프를 해대는 그들을 나는 그저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것 말고는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방청석이 쥐 죽은 듯 고요했던 건 다들 나처럼 할 말을 잃어서였을 것이다. 조금 뒤에야 내가 수박씨를 죄다 꿀떡 삼켜버렸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당했다’는 걸 깨달았다. 사건이 일파만파로 번지는 것을 보면서 머리 싸매고 앉아 생각했다. 인간의 알몸을 바로 성적인 상징으로 치환시키는 것도 어찌 보면 위험한 발상이잖아. 걔들은 그 짓을 통해 나름대로의 저항정신을 표현하려 했는지도 몰라. 그래, 방송국에 대하여, 제도권에 대하여 지들 딴에는 ‘퍽 큐’ 한방 날리는 심정이었을지도 모르지. 하해와 같은 심정으로 이해해보려 애썼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몸의 기억은 끈질기고 강렬하다. 열댓 살 무렵부터 잊을만하면 한번씩 이 도시 곳곳에서 부닥쳐왔던 바바리맨들. 토요일 저녁의 일을 더듬어 생각할수록, 기억 속에 단단히 각인된 그 불쾌하고 기분 나쁜 느낌이 스멀스멀 되살아나서 나는 어지러워졌다. 결론은 자명하다. 그게 누구든 간에 인간에게는, 원치 않는 타인의 알몸을 보지 않을 자유가 있고 성적 수치심을 느끼지 않을 권리가 있다. 그래서 나는 공중파 무대에서 ‘생 쇼’를 벌인 그들을 용서하지 못하겠다. 사건의 배후에 어떤 치밀한 음모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뭣 같은 세상, 우리가 일 한번 벌려주지! 헤이, 거기 알록달록 풍선 흔들어대는 오빠부대 꼬마아가씨들, 귀엽고도 한심하구나, 오늘 한번 진하게 놀라 볼래? 어쩌면 이렇게 ‘쉽게’ 시작된 일일지도 모른다는 가설에 한 표 던진다. 성폭력을 포함한 모든 폭력행위는 그렇게 알량한 권력을 과시하려는 같잖은 욕망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말 궁금한 부분은, 스스로 ‘저항’을 지향하는 인디밴드의 일원인 그들이, 딴에는 퍼포먼스라면서 짜잔 꺼내놓은 부위가 왜 하필 ‘성기’ 일까 하는 것이다. 처음 서는 방송국 생방송 무대에서 주눅 들지 않기 위해, 당당하고 자유롭게 맞장 깐다는 걸 과시하기 위해, 젊디젊은 그들이 숨겨둔 비장의 무기가 겨우 그것이라니. 그 가진 것 없음과 부박한 상상력이 진심으로 애처롭기 그지없다. 아, 전통도 유구한 바바리맨의 슬픈 무기여, 이제는 제발 안녕! 정이현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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