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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병으로 베트남전에 참전했을 때의 안정효씨. 그의 참전 경험은 소설 <하얀전쟁>의 바탕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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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효 ‘지압 장군을 찾아서’
<지압 장군을 찾아서>(들녘)는 소설가 안정효가 2002년 한-베트남 수교 10주년을 맞아 한국방송 <일요스페셜> 제작진과 함께 호치민(옛 사이공)에서 하노이까지 통일열차로 종단하는 일종의 기행문이다. 그러나 화자는 안정효가 아니라 그의 데뷔작 <하얀전쟁>의 주인공 한기주다. 안씨는 서문에서 “기행문의 한계를 넘어 소설적 해석과 상상력까지 동원하도록 필자 자신을 해방시켜주기 위한 장치”라고 설명했다. 2002년 한-베트남 수교 100돌통일열차로 종단 기행문
소설적 해석·상상력 동원도
참전 죄의식은 옅어 철길을 타고 북상하는 탄탄한 구조. 전반부는 위도 17도선 이남, 후반부는 17도선 이북에서의 여정과 얼추 일치한다. 즉 전반에서는 미국이 패퇴한 전쟁, 후반에서는 호치민과 지압이 승리한 전쟁을 이야기한다. 작품은 세 경험이 버무려졌다. ①정훈병으로 베트남전 참전 ②자신의 소설 <하얀전쟁>을 영화화하는 베트남 현지 촬영팀 동행 ③텔레비전 촬영팀과 함께 베트남을 다시 방문. ①~③의 간극은 34년. 주인공 한기주는 20대 정훈병에서 원숙한 60대 소설가가 되어있다. 그런 만큼 작품읽기는 주인공 기주의 의식에 초점을 둘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원숙함과는 거리가 멀다. 그는 미군의 패전 이유로 정신무장의 해이와 반전운동을 든다. ‘민주적인 군대’는 집단을 나약하게 하고 왜소한 개인으로 분산시키기 때문에 전체주의적인 체제와 싸워 이기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조직된 군대는 가치관과 규범이 민간사회와 다르므로 인권이 짓밟히는 결과도 있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 예가 사이공 길거리에서 베트콩 용의자를 즉결처형하는 응웬응옥로안 장군. 그가 대단히 유능하고 친미적인 우파이며 전형적인 군인다운 인물이라면서 몇시간 전 그의 아내와 자식이 베트콩에게 사살되었음을 상기시킨다. 또 미군이 민간인 22명을 잔인하게 살해한 미라이 사건을 두고도 현장에 가보지 않고서 단독적인 사건 하나만을 따로 분리시켜 돌을 던지지 말라고 말한다. 전쟁 자체가 문제라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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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효 ‘지압 장군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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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17도선을 넘으면서 기주의 생각은 관대해져 열차에서 만난 남쪽 베트콩 출신자와 북쪽 베트밍 군인 출신의 입을 빌어 그들의 라이프스토리를 그들의 시각으로 그려준다. 나아가 프랑스군과 미군을 패퇴시킨 지압 장군의 영웅담을 시시콜콜 들려준다. 베트밍의 ‘성공적인’ 설날의 공세가 백미. 미군 측에서 일방적으로 휴전을 선포할 때마다 꼬박꼬박 응함으로써 중요한 순간에 이를 파기하면서 작전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지압장군의 계산 때문은 아니었을까라고 추켜세운다. 대미는 하노이에서의 보응웬지압 대장 면담. 지압의 승전회고담을 들으며 마치 관현악을 듣는 느낌을 받는다. 인터뷰를 끝내고 자신도 모르게 거수로써 작별인사를 한다. 무대에서 퇴장해야 하는 위대한 배우에 대한 슬픔을 표현하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를 일이라며 예순을 넘겨 화석으로 굳어가는 자신과 동지의식, 전우라는 생각을 한다. 지은이의 승자에 대한 무조건적 숭배, 또는 스스로 시대착오적 인물임을 자인하는 대목으로 읽힐 수도 있겠다.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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