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8.09 16:45
수정 : 2005.08.09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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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천사 십층석탑 완공 기념행사 9일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시민들이 국보86호 경천사 십층석탑 복원 완공 행사 후 공개된 석탑을 살펴보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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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보존과학, 그 한계를 보려거든 익산 미륵사지 석탑 해체 현장으로 가야 하며, 그것이 이룩할 수 있는 극한의 정점을 맛보려거든 새용산 국립중앙박물관으로 가면 된다.
막상 해체는 해 놓았으나 복구를 어떻게 할지 감감하기만 한 미륵사지 석탑에 견주어, 복원에만 꼬박 10년을 쏟아부은 경천사지 석탑이 21세기 한국의 석탑으로 재탄생했다.
9일 오후 새용산박물관(관장 이건무) 실내 중 '역사의 길'로 명명된 공간에 복원 완료된 경천사 석탑(국보 제86호)은 고려 충목왕 4년(1348) 경기 개풍군 광덕면 부소산 자락 경천사에 처음 들어섰을 그 당시 모습을 어떠했는지 알 길은 없으나, 지금보다 더 아름다웠다고 쉽게 장담하지는 못할 듯하다.
수백 점으로 조각나는 바람에 복구 불능, 회복 불능으로 치부되던 이 대리석 석탑을 한국 보존과학은 마치 새것처럼 '복제'해 냈다.
이날 석탑 보존 완공식에는 정동채 문화관광부 장관과 유홍준 문화재청장, 법장 조계종 총무원장을 비롯한 관계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하게 치러졌다.
이 석탑은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1995년 이후 2004년까지 꼬박 10년 동안 보존 처리가 실시됐다. 탑을 구성하는 전체 부재(부품)로는 198점이 들어갔으며, 이 중 원래 탑을 구성했던 부재는 162점이다. 36점은 탑 가운데를 채우는 적심석이 대부분인데 경천사지 석탑과 같은 재질인 강원도 정선 산 대리석을 넣었다.
이렇게 처리된 각 부재는 올 상반기에 새용산박물관으로 옮겨져 '조립공정'이 이날로 공식 마무리 된 것이다.
경천사 석탑은 1907년 일본 궁내대신 다나카 미스야키에 의해 일본에 밀반출되었다가 1918년 반환돼 경복궁 회랑에 보관됐다. 그러다가 1959년 경복궁 내 전통공예관 앞에 시멘트로 복원되었으며 1962년 12월 20일에 국보로 지정됐다.
그러나 산성비와 풍화작용에 의해 보존상 심각한 문제가 드러남에 따라 해체 복원이 결정됐다.
이 석탑은 여타 거의 모든 한국탑이 3.5.7.9층 따위의 홀수층인 것과는 달리 양수인 10층이라는 점이 독특하다. 이에 대해 많은 불교미술사학자가 경천사가 화엄종 계통 사찰이며 그 기본 경정인 '화엄경'에서 10이라는 숫자를 화엄의 완성이자 완순한 수로 보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으나, 성급한 판단이다.
중국에 불교가 갓 도입되거나, 아직 정착조차 못하던 시절인 서기 100년, 후한시대 허신이라는 사람이 편찬한 한자 사전인 '설문해자'에 의하면 에 대해 대해 "수를 완전하게 갖춤이다. 이라는 글자로써 동서를 삼고 ㅣ이라는 부호로써 남북을 삼으니, 동서남북 사방과 중앙을 모두 갖춘 셈이다(. , ㅣ, )라고 하고 있음이 그 증거가 된다.
즉, 불교와는 상관없이 이미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10이라는 숫자는 완전수인 셈이다. 이런 불교 도입 이전 동아시아 전통의 10이라는 관념이 불교와 결합되어 나타난 것이 10층 석탑이라고 보는 편이 더욱 정확할 할 것이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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