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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수 〈서울예대학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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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대학별곡
8월 고3 교실에 속속 빈 의자들이 생겨난다. 이 빈 의자들은 수시 1차 합격자들이 떠난 자리. 아직 졸업은 하지 않았으나 이미 대학을 누비고 있는 이중 신분의 이들에게는 입시의 압박으로부터 한발 비켜설 수 있는 여유가 공인돼 있다. 수시라는 입시제도는 대학 자체기준으로 우수 특기자를 확보하고 균형 있는 지역발전을 꾀한다는 명분 아래 생겨났다. 이것의 가장 큰 매력은 1차에 합격한다면 8월 말 대학생이 된다는 점이다. 아주대 구자홍(자연과학부 1년)씨는 “수능을 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가장 기뻤다”고 말했다. 마지막 스퍼트를 올리며 수능에 매진할 수험생들과 6개월의 긴 휴학기를 맞이할 수시 1차 합격자들. 얄궂게도 엇갈린 이들의 운명 속에서 이 예비 대학생들은 6개월을 어떻게 보냈을까? 이들을 둘러싼 여러 이야기를 들어보자. 예비 ‘대학생’의 신분을 충실히 쌓는 경우가 있다. 대학이 구동하는 여러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이다. 동국대 김홍민(사회과학 1년)씨는 “학교 탐방이라는 이름으로 3개의 세미나를 들었다, 3학점을 미리 취득했다”고 말했다. “학교에서 지원해 준 영국 영어연수를 다녀왔다”는 아주대 구씨는 안정감 있게 대학생활을 시작한 경우다. 이런 프로그램들은 어떻게 평가되고 있을까? 연세대 이정훈(경영학 2년)씨는 “고등학생이 듣기에도 무리 없는 수업이었다, 적응하기에 알맞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반면 같은 학교 김민아(심리학 2년)씨는 “강의 점수가 낮게 나와 재수강 거리만 늘었다는 친구도 있었다”고 전했다. 이제 수시합격생이여 유의하라, 대학에 상주하기로 결정했다면 성적표에 지우고 싶은 흔적이 아니라 황금 같은 적응기를 남길 것. 프로그램이야 어떻든 가장 에너지 넘치는 일은 사람 만나기가 아닐까? 대학별 수시 새내기끼리 모임이 활발하게 결성되고 있었다. 동국대 김씨는 “카페 ‘동국 상상’이 만들어졌고 과를 초월해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라고 말한다. 연세대 김씨는 “같은 취향의 사람들이 모여 문화예술을 조직적으로 탐방하기도 하고, 선배들과 만나는 분야별 토론모임도 형성됐다”고 전한다. 이쯤 되면 이들이 대학을 다니는 기간은 4.5년인 셈이다. 이 여분의 시간이 그냥 흘러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수시 신입생들과 함께 했던 동국대 장은수(북한학 2년)씨는 “수능에서 벗어난 여유만이 있을 뿐 스스로 계획을 짜지 못하는 게 대부분이었다”며 후배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숙명여대 입학처장 박동곤씨는 “대부분 예비 대학생은 자신이 피동적이며 의존적이라는 점을 인식조차하지 못하고 있다”라고 문제점을 지적한다. 스스로 휴학기의 관리자로 나선 독립적 수시생들도 있다. 먼저 여행자가 되기로 한 연세대의 김민아씨. “학교에서 제공하는 강의에서 별로 얻을 것이 없다고 판단해서 호주 우프에 참여했다”며 여행으로 수시 합격자의 휴학기를 풍성하게 누린 선례를 남겼다. 인하대 정의철(기계공학 1년)씨는 자신의 꿈을 위해 6개월을 ‘올인’했다. “입시를 끝내 편한 마음이었다. 레이스 서킷을 계속 돌고 기초 체력 훈련에 매진했다. 그리고 자동차 경주에 많이 참여했다.” 세계적인 카레이서를 꿈꾸는 정씨의 회고다. 이들은 수능시험의 압박에서 벗어난 시간 동안 홀로 자기 분야에 매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고등학교 졸업 전에 미리 얻은 6개월 동안의 자유는 뜻밖의 선물이다. 하지만 이들에게 수능보다 더 어렵고 생소한 공부가 먼저 시작됐다. 갑자기 얻게 된 여유 앞에서 자신의 길을 창조해야 하는 인생수업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신진 수시 합격생들이 곧 몰려올 것이다. 새로운 이력 만들기는 이제 그들의 몫이다.김지수 <서울예대학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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