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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8.17 17:22 수정 : 2005.08.17 17:24

정이현 소설가

저공비행

스물한살의 서태지가 ‘난 알아요’라는 노래로 데뷔했을 때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1992년의 그 봄, 나도 스물한살이었다. 전공수업은 적성에 맞지 않았고, 일상은 지리멸렬했으며, 세상은 모호한 공기로 뒤덮여 있었다. 세계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 천재지변이 일어나지 않는 한 앞으로도 영원히 이렇게 사소하게 마모되어 가리라는 것을 어렴풋이 눈치 채게 된 때가 그 나이 무렵인지도 모르겠다. 아침이면 터덜터덜 캠퍼스를 걸어 오르며 갈등했다. 그냥 확 땡땡이쳐버릴까? 아, 모르겠다. 그냥 확 휴학계를 내 버릴까? 아, 모르겠다. 도무지 아는 것이라곤 하나도 없는 청춘이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서태지의 목소리와 만났다. 맑고 천연하게, 그는 ‘난 알아요’라고 선언하고 있었다. 나는 한순간에 매혹 당했다. 몇 달이 지나지 않아 서태지라는 단어는 고유명사가 되었다. “서태지? 나랑 동갑이잖아.” 그렇게 말할 때 대체 내가 왜 자랑스러운 건지, 동시에, 기묘한 열등감으로 공연히 위축되는 건 왜인지 설명할 도리가 없었다.

동갑내기 스타라면 심은하도 빼놓을 수 없다. <미술관 옆 동물원>을 본 건 1998년 마지막 날 밤이었다. 스물일곱, 벌려놓은 일들은 많은데 수습하지 못해 낑낑대던 시절이었다. 환하고 사랑스러운 ‘춘희’를 따라 울고 웃다가 영화관 밖으로 나오니, 두어 시간 뒤면 한살 더 먹게 된다는 사실이 몹시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포스터 속 심은하의 미소를 훔쳐보면서 나는 들릴락 말락 한숨을 내쉬었던 것 같다. 난 아직도 가야할 방향조차 정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데, 같은 나이의 누군가는 이미 자기분야의 최정상에 우뚝 서있다니. 찬탄과 질투, 경배와 콤플렉스가 뒤섞인 복잡한 감정이 드는 것을 어쩌지 못했다.

장동건, 배용준, 고소영, 류시원 등등. 그 밖에도, 나와 동갑인 굵직굵직한 스타들의 수는 이상하리만치 많은 편이다. 아니다. 어쩌면 내가 유심히 그들의 행보를 지켜보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동갑내기 연예인들 중 몇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최고의 위치에 있으며, 또 몇은 한때 대스타였지만 어찌된 일인지 이제는 그렇게 부르기 망설여지기도 한다. 스타와 직업인의 차이는 무엇일까 곰곰 생각해보게 만드는 이름들도 있다. 그리고 어떤 경우는, 뒤통수를 후려치듯, 새로이 발견되어지기도 한다.

이십대 초반부터 봐온 얼굴인데, 늘 무심하게 지나쳐온 이들에게서 한 순간 오롯한 존재감을 느끼고 충격을 받게 되는 것이다. <여자 정혜>의 김지수, <범죄의 재구성>의 염정아가 그랬고, 최근 <내 이름은 김삼순>의 이아현이 그랬다. 그래, ‘쟤들’도 나와 동갑이었지. 그런데 저렇게 잘 했었나? 의아해하다가 이내 와락 반가워졌다. 시간이 괜히 흐르지는 않았구나, 안도감이 들었다. 나이가 든다는 게 반드시 성장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시간의 흐름을 견디는 법은 배우게 된다. 삼십대 중반. 자신이 무엇을 가장 잘 할 수 있으며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하고 빛나는지 정도는 알게 되는 나이라는 것을, 나는 그들을 통해 깨닫는다. 눈부신 스타인 적 없었던 배우들의 담담한 성장을 지켜보면서, 어쨌든 내 길을 한번 계속 가 보자, 용기를 추스른다.

서태지를 지금보다 더 자주 보고 싶고 심은하를 스크린에서 다시 만나고 싶지만 꾹 참는 이유 또한, 그들이 스스로 기꺼이 지금의 삶의 방식을 선택했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들이 어떤 선택을 하던 존중하고 이해하고 싶기 때문이다. ‘친구’란 무릇 그런 사이가 아니던가. 막막하던 스물한살과 스물일곱살을 함께 해준 그들이 내 친구가 아니라면, 친구는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누군가와 함께 나이 들어간다는 건, 그러니 분명 신비로운 일이다.

정이현/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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