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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연 〈고대신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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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대학별곡
개강을 열흘 남짓 앞두고 대학생들의 발등에 다시 불이 떨어진다. 수강신청기간이다. 경주는 이때부터, 실력은 여기서부터 판가름난다. 방학이 저무는 아쉬움을 달랠 겨를도 없이 모두 성공적(!)인 시간표 완성을 위한 ‘전면전’에 돌입한다. ‘주삼파’(일주에 3일만 학교 오는 무리)의 꿈을 이루려고, 1교시에 들어도 절대 안 졸립다는 아무개 교수의 수업을 듣기 위해, 연인과 함께 수영을 배우려고, 어쨌든 기필코 이번 학기에 졸업을 해야 하니까…. 이유들도 각양각색이다. 확실한 건 ‘클릭’ 한 번으로 수강신청이 이뤄지는 초고속, 첨단의 환경에서 1,2초가 한 학기의 운명을 좌우한다는 사실. 어차피 속도를 컴퓨터와는 다툴 수 없는 법. 옆의 학생보다 빠르기만 하면 되는 ‘비법’들이 치열하게 개발되기 마련이다. 고려대 이재익(인문학부 1년)씨의 설명이다. “쉬프트 키 밑에 10원짜리 동전을 넣으면 그 동전이 계속 엔터키를 누르게 돼요.” 일명 ‘낚시걸이’다. 여러 명이 동시에 그 과목을 신청하려는 중이라면 더더욱 낚시걸이를 해야 신청이 성공적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커진다. 수강 신청은 보통 오전 9시부터 가능한데 7시, 심지어 6시부터 학교는 붐비기 시작한다. 이화여대 서미경(수학과 졸)씨는 “아침 7시 정도부터 문도 열리지 않은 컴퓨터실 앞에서 학생들이 줄을 선다”고 회상한다. 거래가 생기지 않을 수 없다. 경희대 임자영(영문 4년)씨는 “학점 여유가 있는 친구에게 관심가는 과목을 미리 친구 명의로 신청해달라고 부탁하기도 한다”고 전한다. 자신이 신청한 과목과 함께 비교, 선택한 뒤 수강신청정정기간에 최종 시간표를 짤 요량이다. 친구와 맞교환도 가능하다. 거래의 상대가 굳이 친구일 필요는 없다. 수강신청 기간마다 각 학교 자유게시판은 과목을 교환하려는 수십, 수백개의 ‘거래 신청서’로 넘쳐난다. 은밀하고, 뜨겁게. “스키 34(교시)랑 교환하실 분-웨이트나 호신술”, “스키 화1,2(교시)⇒금 1,2 교환 원합니다.”(중앙대 자유게시판). “신앙과 과학-김OO 교수님꺼 저렴하게 넘깁니다. 정확히 55분에 드랍(포기)하겠습니다. 튕기신 분 넘겨 드릴게요.”(pokerface79) “CEO 경영특강 취소하실 분을 찾는다”며 아이디 ‘생각하는 그놈’은 자신의 연락처와 이메일 주소를 남긴다. (서강대 청년광장) “워낙 인기가 많은 스포츠 과목은 1, 2분안에 마감이 되기 때문에 이런 ‘거래’가 많은 것 같다”고 자영씨는 말한다. 미경씨는 “소문난 교수의 수업이나 ‘취업 영어’ 등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인기교양과목도 ‘벼룩시장 리스트’의 단골 과목”이라고 덧붙인다. 자신의 성적이 누설될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친구에게 수강신청을 맡기는 학생도 있다. 그래도 복안대로 안 되면 결국 교수 연구실로 진격. 뜻한 바를 반드시 이뤄내고야 마는 2005년 대학생의 열정(?)의 현 주소가 이 기간에 그대로 드러난다.특정 전공 과목의 정원까지 먼저 채워버리는, 타과생 점령군도 적지 않다. 하지만 주삼파 시간표를 만들고, 님도 보고 뽕도 따고, 점수까지 후한 교수의 수업을 따낸 그 열의도 막상 학기가 시작되면 사그러드나보다. “그러면 뭘 하나요. 수업 잘 안 들어가고, 나중에 성적도 안 나올 걸….” 성균관대 이상희(심리학 4년)씨가 배시시 웃는다. 우여곡절 수강신청 기간 때, ‘튕기고’ ‘튕겨지느라’ 새 학기 시작하기도 전에 진을 다 뺀 것은 아닌지. 공연히 남의 수업만 가로채는 건 아닌지. 하지만 ‘다 걸기’쪽이든 ‘도 닦듯’ 기다리는 유형이든, 땀 흘리며 이 서바이벌에서 살아남기 위해 지금도 어디선가 컴퓨터를 끼고 고공질주 하고 있을 모든 대학생들에게 ‘아자!’를 외칠 수밖에 없는 이유. 수강신청도 제대로 못하면요, 운동화 끈을 매기도 전에 낙오자가 되거든요. 김승연/고려대 <고대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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