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9.05 18:21
수정 : 2005.09.05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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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생명문화포럼에서 여신에 대한 발표를 한 스웨덴 크리스티나 버그렌(왼쪽)과 고혜경 교수. 이들은 “삶과 죽음, 재생의 원리를 한 몸에 담고 있는 여신을 오늘날 재조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입모아 말했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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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생명문화포럼
버그렌 “여성의 파괴력은 재탄생 위한것”
고혜경 “우린 자신의 신성함 잊고 살아”
2일부터 5일까지 열린 올해 세계생명문화포럼의 화두는 ‘여성’이었다. 포럼 개막공연 ‘천지굿’의 대본을 쓴 김지하 시인은 천지인 삼계의 대권을 상징하는 칼을 남성이 여성에게 넘겨주는 장면을 통해 ‘여성성’의 문제를 제시했다. 이런 문제제기를 여성들은 어떻게 볼까. 신화학자이자 고고학자인 크리스티나 버그렌 스웨덴 고전연구소 연구원(71)과 한국의 여신 연구를 해온 고혜경 녹색대학 교수(42), 이번 행사의 발표자이기도 한 두 사람이 지난 3일 만나 대담을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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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생명문화포럼 경기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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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나 버그렌=천지굿을 보는 건 색다른 경험이었다. 단 맘에 걸리는 건 강증산의 아내가 받은 칼에 천이 감긴 부분이다. 여성에게도 파괴력이 있는데 그걸 소극적으로 표현했다. 여신 신화에서 여성의 파괴적 에너지는 늘 재탄생의 개념을 바탕에 둔다. 독일, 스칸디나비아 등 유럽에서는 어디를 가든 3명의 여신이 물레를 잣는 이야기가 있다. 첫번째 여신은 물레를 돌려 실을 뽑고, 두번째 여신은 씨실과 날실을 엮어짜고, 세번째 여신은 그것을 잘라버린다. 아이를 뱃속에서 길러 탯줄을 자르고, 아이를 키워 집을 떠나보내는 이들은 여성이 아닌가. 생명을 만들고 자르는 건 여성의 숙명이다. 그러니 천을 감지 않고 그냥 칼을 넘겨주었어도 된다고 본다.
고혜경=동감이다. 여성의 파괴는 재생과 양육의 거름이다. 여성에겐 만물을 ‘살리는 힘’이 있다. 여신의 전통도 마찬가지다. 가부장적, 남성적 전통을 바꾸는 것도 일단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한 파괴로 봐야 한다. 제주도 설문할망은 오줌을 눠 섬을 가르면서 땅과 바다를 창조했다. 탄생을 위한 파괴다.
크리스티나=중국 서부 관세음보살상이나 러시아 바바야가 여신상은 엄격하고 무서운 할머니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리스 아프로디테 등도 마찬가지다. 잔인하고, 어두운 파괴의 측면이 없는 여신은 없다. 죽음이 없고 어떻게 삶이 있나. 한국의 태극도 음양의 조화를 나타낸 것 아닌가. 이분법 세계관에서 벗어나 음양의 조화, 통합을 이루려는 건 지금 시대 인류의 열망이라고 본다. 그래서 재생과 생명의 법칙을 알고 있는 여신이 현시대에서 재조명되는 일이 중요하다.
고=태초의 여신이 실을 잣고, 베를 짜고, 요리를 하던 일상은 창조행위였다. 우리의 일상적 삶 안에 창조적 신성이 담겨있어야 한다는 충고다. 하지만 우리는 일상에서 신성을 잊고 산다. 여신을 통해 우리는 자신이 신성한 존재로서 일상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크리스티나=윤회도 결국은 생명의 회전이다. 선사시대 고고학 상징은 생명이 결코 소멸될 수 없다는 걸 보여준다. 한반도는 중요한 열쇠를 쥔 곳이다. 빙하기 이후 도자기 항아리를 처음 만든 이들이 바로 한반도인들이다. 항아리는 생명, 씨앗의 방이자 삶과 죽음을 가리키는 회전의 상징이다. 흙을 구웠다가 부수면 다시 흙으로 돌아가지 않나. 생명 시작과 끝의 상징, 항아리를 한반도에서 만들기 시작했다는 데 나는 크게 주목하고 있다.
글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사진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아빠는 ‘아바’…엄마는 ‘엄머’ 우리말과 닮았네?
전통굿 선보인 몽골 어원커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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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어원커족 샤먼 투밍양(가운데 앉은 사람)이 동료들과 함께 3일 파주시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 강당에서 전통 민속굿을 하고 있다. 세계생명문화포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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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생명문화포럼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의 눈길을 많이 끈 사람들 가운데 하나가 몽골에서 온 어원커족 사람들이다. 어원커족의 말과 풍습이 우리나라와 비슷한 점이 많기 때문이다. 러시아 발음으로 에벵키(Ewenki)라고도 불리는 이들로 러시아 남부에 20만명, 내몽골에 2만명 등이 산다고 한다.
현재 살아있는 어원커족 샤먼 3명 가운데 가장 연장자인 투밍양(76)과 문자가 없어 사라질 위기에 처한 어원커족 말을 기호를 써서 사전으로 만든 언어학자 두 또얼치(67), 그리고 미술가인 그의 딸 두 빠오루오르와(28) 등이 이번 행사에서 어원커족 전통 굿을 선보였다. 3일 저녁 열린 굿에서 투밍양은 방패처럼 생긴 가죽북을 치며 하늘에 제사지낼 때 부르는 제천신가와 축씨족부락평안가를 불렀다. 샤먼의 복장은 독특했다. 쇠로 만든 원반을 치렁치렁 달아 무게만도 60㎏나 됐다.
신이 내린 것인지 투밍양은 제천신가를 부르면서 가끔씩 몸을 떨다 벌떡 일어나 무대를 뛰어 다니며 굿을 했다. 그는 “어원커 사람들은 큰 일을 앞두고는 언제나 샤먼을 찾았다”며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부족을 위해 기도하며 아픈 사람들의 병을 낫게 해주는 게 나의 일이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상고시대의 무당의 역할과 비슷하다.
참석자들은 어원커족의 말과 우리나라 말이 비슷하다는 점을 알고 신기해했다. 두 빠오루오르와는 아버지를 “아바”라고 불렀다. 그는 “어머니는 엄머라고 부른다”고 했다. 두 또얼치는 “어원커족 사전에는 아리랑, 쓰리랑, 아리, 쓰리, 아라리 등의 말도 등재되어 있다”고 말했다.
어원커족 역사학자들은 자신들의 조상이 만주 동부 간도에서 온 것으로 보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들이 숙신, 옥저, 읍루의 후예라고 했다. 어원커족이 자신들을 부를 때 ‘어’라는 발음을 거의 하지 않는다. 원커라고 들린다. 원커(Wenki)는 옥저()의 발음과 비슷하다.
어원커족은 곰을 신성한 동물로 여겨 숭배한다. 곰을 사냥한 뒤에는 그 앞에서 절을 하며 “내가 죽인 것이 아닙니다”라는 주문을 왼다고 했다. 고기를 먹은 뒤에는 남은 뼈를 추스려 사람과 똑같이 장례를 치를 정도로 곰을 높이 대접했다고 한다.
권복기 기자
bokki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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