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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9.07 17:37 수정 : 2005.09.08 14:01

이가현 <한국예술종합학교신문> 기자

2005대학별곡

“결혼해서 편히 살고 싶어.” 터벅터벅 학원에서 집으로 향하는 박아무개(여·23)씨. 현재 대학교 4학년이다. 9급 공무원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매일 책과의 씨름이 지칠 때면, 박씨는 꾸물꾸물 한숨을 토해낸다. “나, 결혼이나 할까봐.” 하지만 박씨가 쉬이 내뱉는 말처럼 결혼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요즘 박씨는 결혼정보회사 광고에 지대한 관심을 보인다. ‘나도 가입해 볼까?’

결혼정보회사에 줄 선 대학생들이 큰 폭으로 늘고 있다. 왜냐고 물으면, “취업이 힘들어서”라고. 집안, 학벌, 외모 따져가며 일생의 안정과 안전을 보장해 주는 평생 직장, 그것이 바로 결혼인 것이다. 혹은 어차피 어려운 취업, “결혼이라도 해서 부모님께 효도하자”는 사람도 있다. 이러나 저러나 결국 젊은이들에게 결혼이 현실 피난처처럼 여겨지고 있는 셈. 윤아무개(여·22)씨는 결혼정보회사에서 남자들이 선호하는 여자 직업군이 교사라는 정보를 접한 후에 그야말로 “시집 잘 가려고” 교육대학에 진학했을 정도다.

하지만 이런 현상에 단단히 한몫하는 건 결혼정보회사의 눈에 불을 켠 마케팅이다. 결혼정보회사가 대거 늘어나며 살아남으려면 우수 회원, 그야말로 노블레스 회원을 확보하는 게 필수다. 보통 여자 25살, 남자 27살 이상을 가입조건으로 내걸지만, 여대생 회원은 조건외다. 여대생 회원수가 결혼정보회사의 능력을 판가름해주기도 한다.

직접 여대생에게 가입권유 전화를 거는 회사들로 넘치고, ‘Young Club’을 따로 두어 일반회원보다 저렴한 절반의 가입비를 제시하는 곳도 있다. 번호는 어떻게 아느냐고? 대개 “졸업앨범” 또는 “아는 사람 통해서”라고 하지만 이들의 만만치 않은 정보력의 비밀은 누구도 모른다. 가입 권유와 함께 할인 제안도 받았던 박아무개(여·홍익대 2년)씨는 “할인은 물론, 여학생은 가입비를 면제해 준다는 말도 있다”며 “이런 가입 전화를 받은 친구들이 꽤 있다”고 귀뜸한다.

결혼정보회사 ‘듀오’의 홍보 담당 오미경씨는 “특정 대학의 동문회 조직과 협력, 제휴 관계를 맺어 그 학교 출신자들에게 할인 등의 특권을 주고 있다”며, “지금은 두 대학 뿐이지만 반응이 좋아 더 많은 학교들과 관계를 맺으려고 계획 중”이라고 설명한다.

얼마 전, 조사할 게 있어 인터넷 결혼정보회사 가입을 했다는 지강일(한예종 미술원 건축과 3년)씨는 “학력이나 키, 종교, 혈액형 등의 내 정보를 입력하는 게 있었지만 거부감을 느끼지는 않았다”며 “더 좋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 당연한 거 아니냐”고 말한다.

하지만 다칠 수도 있다. 학벌, 집안, 외모 등의 조건으로 회원이 서열화된다는 건 널리 알려진 얘기다. 가입 조건도 달라진다. 한 달에 네 차례 가량 ‘상대’를 만난다는 조건으로 들이는 가입비가 대략 100여만원. 할인 혜택을 받은 서울여대, 이화여대의 학생들이 있다고 한다. 특정 대학에 한하여 가입비를 아예 면제시켜주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가입하고 싶어도 내가 가진 조건이 좋지 않아 엄두도 못 낸다”는 ‘불필요한’ 인생의 좌절은 그래서 나온다.

결혼은 인륜지대사다. 더 나은 삶을 꾸리기 위해 결혼정보회사의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에 적극적으로 임하는 자들이다. 하지만 대학생의 젊음에는 남은 인생에 대한 ‘치열함’보다 지금 당장의 치열함이 더 어울린다.


결혼정보회사에 가입한 대학생들의 이야기를 접했을 때 검게 물든 저녁의 가을 하늘처럼 쓸쓸한 것도, 혹시나 하는 의심 때문이다. 결혼정보회사 가입을 사회에 내딛으려는 발걸음에 대한 보험처럼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이가현 <한국예술종합학교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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