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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수 〈서울예대학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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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대학별곡
‘빨리 빨리’. 대한민국은 물론이고 한국의 대학 사회까지 규정하는 말이다. 우린 틀림없이 속도의 강박에서 살고 있다. 수백 명이 밀집한 학생 식당에서 친구를 찾아야 하는데 핸드폰을 놓고 왔다면? 우여곡절 끝에 친구를 만났는데 식사가 밀려 늦어지고 있다면? 이 느려 터진 ‘상황’이 단순히 불편하다고 느끼는 데에 머물지 않고, 기필코 스트레스가 되어 자신에게 꽂히도록 한다. 그런데 최근 대학가에서 빨리빨리 시스템에 꼽힌 플러그를 빼고서 느린 삶에 접속하려는 움직임이 조금씩 발견되고 있다. 이름하여 슬로우 족(Slow 族). 작지만 창조적인 실천으로 삶의 속도를 조절하고 있었다. 성공회대 동아리 ‘반딧불이’는 학내에서 텃밭을 일구고 있다. 흙의 속도에 자신들을 그대로 맡긴다. 강효주(사회과학 3년)씨는 “도시의 메마른 삶에 젖은 우리의 생태적 감수성을 키워보자는 의도에서 시작했다”고 설명한다. 학교 뒷산에 네 평 남짓한 밭을 만들어 고랑을 파고 오이, 옥수수, 콩 등의 먹을거리를 재배한다. 이미 거둔 것도 있다. 인위를 최소화한다. 낙엽으로 직접 퇴비도 만든다. 강씨는 “농약을 쓰지 않고 잡초도 잘 뽑지 않았다”며 “생김새가 이상한 것도 있었지만 맛은 좋았다”고 전한다. <슬로 라이프>를 쓴 쓰지 신이치의 말처럼, 이들은 화학 비료를 동원해서 인간적 결실의 시간을 강요하는 ‘생산자’가 아니라 식물이 열매맺는 때를 기다리는 ‘대기자’에 가깝다. 산업의 한 분야로서의 ‘농업’이 아니라 생명의 시간을 따르는 ‘농사’를 체험하고 있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슬로 푸드’의 가치도 얻게 된다. 김훈식(사회과학 1년)씨는 “음식을 사 먹다가 키우니까 수확물이 생명처럼 느껴진다”고, 정효민(사회과학 1년)씨는 “의도적으로 전통 작물을 재배했다”며 “열매에 애착이 갔고 그래서 음식을 남김 없이, 더 맛있게 먹게 된다”고 설명한다. 전통 식재료를 살리고 음식을 느리게 향유하며 자연의 리듬을 따르는 것이다. 전깃불을 끄고 초를 켜자는 캔들 족도 있다. ‘캔들 나이트’는 애당초 절전 운동에서 시작되었지만, 삶의 느린 리듬을 회복하려는 문화 운동으로 변화한다. 밤에 촛불을 켠 채 함께 음악을 듣거나 대화를 나누는 형태의 모임이다. 이화여대 미야자와 아키(국문학 2년)씨는 “촛불을 켜면 텔레비전이나 핸드폰으로 단절되었던 대화가 되살아난다”고 설명한다. 서울대 양진영(소비자학 3년)씨는 “캔들 나이트엔 시간이 멈추는 듯 하다”며 “디지털의 속도에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공간에 집중할 수 있고, 정서가 흐르는 모임이 된다”고 전한다. 빠르고 메마른 소통을 강제하는 이동전화를 거부하는 이들도 적잖다. 네이버 카페 ‘푸르세’의 아이디 ‘suninzzang82’는 “수시로 날아드는 광고” 때문에 휴대폰을 버리고 대학교에 다닌 지가 벌써 세 달째다. “전화를 없애니까 친구들과 정제된 문자로 마음을 전하게 됐고 무엇보다 여유가 생겼다”고 전한다.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조수진(영화과 1년)씨는 전화보다 한참 발이 느린 비퍼(삐삐)로 소통한다. “벨 소리가 족쇄로 느껴졌고 전자파 때문에 병원치료를 받은 적도 있다”며 “원하는 연락만 받을 수 있다는 게 좋다”고 말한다. 속도를 버리니, 사람이 보인다. 슬로우 족들은 이렇게 공동체에 느리고도 주도적인 접속을 시도한다. 이들은 새로운 생활의 기술을 창조하고 있다. 특정 기술이나 제품 없이도 즐기며 쾌락을 더하는 기술, 공동체와 자연의 리듬을 회복하며 그것을 즐기는 이들의 기술을 누가 금욕이나 퇴화로 이름할 수 있을까. 슬로 족은 오늘도 느린 삶의 기술을 창조하며 대단히 적극적으로 잘 ‘놀고 있다.’김지수 <서울예대학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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