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대가 더욱 꿈틀댔다-‘카바레 나이트 파티’에서 밤새다
|
100℃르포 - # 24:00 무대가 더욱 꿈틀댔다
‘파티’. 끼리끼리 어울리는 사교 모임부터 서울 홍대 앞 클럽 등에서 열리는 공연에까지 은근슬쩍 끼어들기 시작한 낱말이다. 한국에 이식돼 뿌리 내리고 있는 놀이 문화이지만 아직 남의 옷처럼 어색한 구석이 있다. ‘드레스코드’(참석할 사람들에게 특정한 의상을 입고 오도록 권유하는 스타일)까지 정해져 있으면 더 생소하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사람들은 어떻게 ‘파티’를 이해하고 즐길까? 지난 24일 더블유 서울 워커힐 호텔 개관 1주년 기념으로 열린 ‘카바레 나이트 파티’에서 그 단면을 찾아보려 했다. 세련된 인테리어로 입소문을 탄 이 호텔의 ‘우바’에서 열렸는데, 파티의 주제와 드레스코드는 특이하게 1970~80년대였다. # 20:00 어색…;; 썰렁하네요 저녁 8~9시. 썰렁했다. 푸른 빛과 흰빛 조명이 무대 위에서 너울댈 뿐 사람들은 상아색 소파나 둥근 의자에 앉아 와인 등을 홀짝이며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천장 가운데에는 캬바레 분위기를 살리려고 반짝이는 공 모양 조명이 돌아가고 디제이는 1970~80년대 그룹 ‘모던 토킹’이나 ‘슬라이 앤 더 패밀리 스톤’의 노래들을 쉼 없이 이어 붙였다. 영화 <토요일 밤의 열기>에 나왔던 나팔바지 등 재기 발랄한 옷차림을 상상했는데 그도 맞아 떨어지지 않았다. 등이 시원하게 파인 원피스를 입은 여성이나 몸의 선을 따라 매끈하게 흘러내리는 셔츠 차림의 남성들은 눈에 띄었다. 고급스럽되 옛날을 떠올리게 하지는 않았다. 한강의 밤 풍경이 펼쳐지는 창문 곁에 여성 세 명이 몸이 근질근질한 듯 조금씩 들썩이고 있었다. “카바레 나이트라고 해서 나팔바지에 쫄티를 싸왔는데 갈아입을 분위기가 아니네요. 실망이어요. 사람들이 ‘드레스코드’같은 문화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것 같아요.” 청바지에 흰 블라우스를 받쳐 입은 정은경(30)씨는 볼멘소리를 했다. 복고풍 분위기를 내려고 손으로 짠 초록색 목도리를 흔들던 유인실(30)씨는 “7만 원씩 냈으니 신나게 시간을 보내야 하는데”라며 초조해했다. # 22:00 쇼쇼쇼…분위기 확 그래도 소품으로 소극적이나마 ‘드레스코드’를 표현해 보려는 사람들은 있었다. 인터넷에서 패션 쇼핑몰을 운영하는 정재인(31)씨는 초록과 빨강이 엮인 자신의 쐐기무늬 하이힐과 붉은 귀고리를 가리켰다. “촌스러운 듯 화려한 모습을 보여주려고 한 거예요.” 커다란 선글라스에 초록색 미니스커트를 입은 김서형(21)씨는 영화 <친절한 금자씨>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했다. 어깨에 뽕이 들어간 검은색 원피스를 입은 김아무개(26)씨는 “드레스코드를 염두에 두더라도 너무 튈까봐 부담스러워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분위기를 내지는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굵은 머리띠나 물방울 무늬 원피스 등도 간간이 보였다.
|
무대가 더욱 꿈틀댔다-‘카바레 나이트 파티’에서 밤새다
|
어색했던 분위기는 밤 10시께 ‘쇼’가 시작된 뒤 바뀌었다. 엘비스 프레슬리처럼 머리를 뒤로 넘긴 사회자 ‘제레미’는 캬바레 무희처럼 반짝이 옷을 입은 백인 여성 두 명과 함께 등장했다. 이어 차차, 왈츠, 탱고, 자이브까지 온갖 춤이 이어졌다. 이도 모자라 온 몸에 표범, 공작, 물고기 무늬를 칠한 3명이 요염한 동작을 선보였고, 사람들을 무대 위로 이끌었다. 열기와 알코올로 얼큰해지면서 무대는 어느새 발 디딜 틈 없이 빼곡해졌다. 파티, 생각만큼 별스럽지 않았다. 호텔 파티와 클럽에서 춤추는 것 사이 차이는 뭘까? “비슷하죠. 다만 클럽보다 파티가 비슷한 계층을 모아주는 것 같아요. 사교모임 같은 성격이 더 있다고 할까요.” 주류회사에서 마케팅을 맡고 있다는 정동호(35)씨는 “트렌드를 읽기 위해 파티에 온다”며 “클럽은 주로 젊은이들이 간다면 20대 후반~30대 직장인들은 이런 곳에서 더 자유롭게 신바람을 낼 수 있다”고 덧붙였다. # 24:00 아슬아슬…알딸딸 패션 홍보대행사를 운영하고 있는 이종수(30)씨도 유행을 엿보려 파티를 찾는데 “클럽보다는 좀 더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파티에 대해 이보다 훨씬 냉소적인 사람들도 있다. 카우보이 같은 부츠를 신은 프로권투 선수 안해정(30)씨의 설명은 이렇다. “나이트클럽은 비싼 대신 웨이터가 여성들과 부킹해주죠. 홍대 앞 등에 있는 클럽에서는 말보다 행동으로 먼저 다가가죠. 여기서는 말을 걸며 접근해야 해요. 사실 모두 도도한 체하지만 마음 속엔 ‘오늘 건수 안 걸리나’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죠. 친한 척하지만 자기한테 득이 안 되면 전화도 안 할 거예요. 그래서 파티를 별로 안 좋아하는데 오늘은 7만 원 내고 마음대로 술 마시고 춤 출 수 있다고 해서 온 거죠.”
|
온몸에 표범, 공작, 물고기 무늬를 그려 넣은 무희들이 춤을 추고 있다.
|
자정을 넘어서자 무대는 더욱 꿈틀댔다. 검은 조끼에 청바지를 팬티가 보이도록 내려 입은 한 남성과 목 뒤로 묶는 윗옷을 입은 여성은 서로 어루만질 듯 아슬아슬하게 리듬을 탔다. 흥에 겨워 춤을 추던 이은아(27)씨는 “클럽만큼 자유롭고 훨씬 쾌적하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16년 살았다는 해외동포 헬렌(25)은 바에 기대 기분 좋게 알딸딸한 표정을 지었다. “춤도 추고 쇼도 보고 재미있잖아요. 미국에선 쇼까지 보여주는 건 진짜 비싸거든요. 신나요. 클럽에는 청바지에 대충 입고 가지만 파티에서는 좀더 차려입죠.” 임대현(35)씨는 “춤 추고 먹고 노는 건 어디나 마찬가지”라며 “파티도 사람이 사귀는 한 형태이고 이렇게 만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무대가 더욱 꿈틀댔다-‘카바레 나이트 파티’에서 밤새다
|
# 01:00 몇몇은 쓰러졌다 무대엔 ‘제레미’가 흰 바지에 흰 구두를 입고 다시 등장해 혼자 1970년대를 구가하듯 손가락을 하늘로 찔러댔다. 환호가 잇따랐다. 길이가 18m에 달하는 바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166평 규모의 공간 여기저기에선 춤이 이어졌다. 새벽 1시께가 넘어가면서 몇몇은 소파 위로 쓰러졌다. 음악과 춤으로 넘실거리던 이날 파티는 1천여 명이 즐겼고 새벽 3시까지 이어졌다. 글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사진 탁기형 기자 khtak@hani.co.kr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