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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연 〈고대신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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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대학별곡
최루탄 냄새가 거리를 온통 물들이던 그 시절, 거리의 중심에 섰던 대학생들의 학적 상태는 대개 휴학 아니면 제적. 이들 운동권을 뺀 보통 대학생들은 다들 졸업을 빨리 하기에 바빴다. 이젠 아니다. 어학 연수나 인턴십과 같이 경력을 쌓거나 ‘스펙(학점, 토익점수 따위를 일컫는 속어) 보강용’으로 휴학을 택한다. 심지어 토익, 토플 점수를 높이려고 휴학하는 사례도 흔하다. 휴학은 전공 필수가 된 셈. 그런데 한가지 주목할 건, 너도나도 목적을 좇아 대학 생활을 자로 재듯 구획해갈수록, 한 편에선 대학 생활의 의욕 자체를 잃고서 휴학을 하는 학생들도 늘어난다는 점이다. 2005년 ‘잃어버린 세대’를 보는 듯한, 일컫자면 허무형 휴학생들이다. 경희대 김우정(국제통상 3년)씨는 이번 학기, 휴학했다. “대학에 들어와서 즐기면서 공부도 열심히 하고 싶었는데 갈수록 배운 게 없단 느낌이 들었다. 전공도 실무 중심이 아닌 원론 위주의 방식이다 보니 막상 내가 기대한 학문이 아니었단 생각에 스트레스를 받았다. 이젠 좀 쉬고 싶었다.” 비인간적일 만큼 경쟁적일 듯한 21세기 대학생에겐 어찌 어울려 보이지 않는다. “오직 대학에 가야 한다는 일념으로 끔찍한 입시시절을 견뎠지만 대학생활을 접하면서 그때 가졌던 ‘대학’이란 곳에 대한 온갖 환상과 기대가 무너지는 데서 오는 허무감 같은 게 있다”고 우정씨는 설명한다. 성균관대 ㅇ(?)씨도 1년 휴학을 결심했다. “(전공이) 안 맞으니까 성적이 안 나와서 유급까지 생각을 했었다. 전과도 생각했지만 학교 제도상 쉽지가 않았다. 나를 돌아보고, 정서적으로 안정을 찾고 싶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자신감을 많이 잃었던 것 같다”고 말한다. ㅇ씨는 특히 대학에서 대인관계에 심한 회의를 느낀 적도 있다고 고백한다. “2학년 말까지 동아리 회장을 했었는데 회장직에서 물러나고 나니까 아무도 날 찾아 주질 않았다”며 “거기서 오는 실망감이 매우 컸다”고 전한다. 차마 먼저 누구에게 다가가진 못했다. “1학년 때는 온통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고등학교 때 매일 한 반에서 부대끼던 친구들과는 다르다. 소속 공간이 급격하게 확장되니까. 일은 벌려 놓고 여러 활동은 하지만 학점관리 신경 쓰다보면 사람들하고 어울리는 게 시간 낭비란 생각마저 든다”고 답한다. 지난 해 휴학했던 한국외국어대 이원경(일어일문 4년)씨도 “2학년 때부터 본격적인 전공 공부를 시작하면 과제 부담도 많이 되고, 고학번 선배랑 같이 경쟁을 해야 하니까 스트레스가 가중된다”며 “학교에 끌려 다니는 기분이 들고 사람들하고도 멀어지게 되는 느낌이다”라고 설명한다. 현재 취업전선에 뛰어든 원경씨의 여자 동기 18명 가운데 4년만에 졸업을 한 이는 단 3명. “대학교가 더 이상 4년제가 아닌 것 같다”고 그는 말한다. “오히려 지금은 제때 졸업하는 게 어색한” 시대다.경력을 쌓기 위해 휴학했던 고려대 김한국(신문방송 4년)씨는 “정보가 많이 쏟아지고, 경험할 수 있는 영역도 넓어지니까 생각도 많아지고 제 계획이 주위 현실과 맞지 않을 때 갈등하는 것 같다”며 “학창 시절 이런저런 경력을 많이 쌓은 졸업생을 선호하는 기업 환경도 휴학을 많이 하게 만드는 이유 가운데 하나”라고 말한다. 사회가 부여한 숙제들이 너무 많아선가, 졸업한 선배들의 무거운 삶이 일찌감치 자신의 것으로 치환된 것인가. 낭만 대신 허무를 먼저 알아가는 대학생들이 휴학하는 사연이다. 김승연 <고대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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