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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0.12 18:21 수정 : 2005.10.12 22:59

“이중섭·박수근 위작” 파장 미술사적 가치 평가없이 ‘짝퉁’ 가리듯 치고받아 언론 논란 부풀릴수록 시장논리만 남게돼 감정기관 통합도 시급


“이번 위작 논란은 미술계 사건이 아닙니다.”

검찰의 이중섭·박수근 위작 수사 발표 뒤 공공 미술인 ㄱ씨가 ‘내가 우울한 이유’라며 던진 말이다. 그는 반문했다. “문화는 없고 상품 찍기 게임의 룰만 있었어요. 이중섭 그림이 왜 이렇게 비싼 지에 대해선 의문조차 나오지 않는데, 미술이 끼어들 여지가 있겠습니까.”

검찰 발표를 계기로 대다수 언론들은 일부 화랑주들의 입을 빌어 미술시장 냉각, 컬렉터 감소 등의 후폭풍이 일고 있다고 대서특필했다. 하지만 정작 작가 등의 미술인들은 ㄱ씨처럼 무관심하거나 냉소적으로 사태를 바라보는 이들이 많다. 브랜드 명품의 ‘짝퉁’을 가리듯 논란이 진행되면서 미술사적 가치 평가 등의 문화적 외연을 거의 두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획자 이섭씨는 “시장이 죽는다는 건 둔감한 생각”이라며 “언론이 논란을 부풀릴수록 진품의 부가가치가 올라가기 때문에 작가도 작품도 사라지고 결국은 시장의 논리만 남게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작품의 진위 여부를 사법 당국이 본격적으로 수사해 판정한 사실상의 첫 사례가 된 이번 사태는 상품성으로만 작품들을 재단해온 국내 미술시장의 천민성과 배금주의를 단적으로 드러냈다. 지난 3월 서울옥션 쪽이 전문가들의 만류를 무릅쓰고 이중섭 유족들의 소장 그림을 경매에 출품한 데서 비롯된 진위 논란은 한국미술품감정가협회의 가짜 판정 사실 공개와 유족-위조단 결탁 의혹 제기를 거쳐 유족의 협회 관계자 고소 등으로 이어졌으며 다른 소장가가 두 작가의 미공개 작품 2700여 점을 전시 유통하려 했다는 의혹 등으로까지 확산됐다. 법정공방으로 간 진위논란에서 유족은 자신들의 소장품이라는 주장을 되풀이하고, 감정가 단체 쪽은 전문가들의 주관적인 안목감정에 바탕해 위작설을 제기했으나 논란의 관건은 위조조직의 실체 여부와 수천 점에 달하는 미공개 작품들의 값어치, 그리고 감정의 주도권 쟁탈전에 집중됐다.

위작 논란은 서구에서도 흔하다. 하지만 평단과 화상 등의 전문가들이 대개 자기 입장을 밝히며 풍성한 미술사적 쟁점을 도출한다는 측면에서 우리와 거리가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2차 대전 직후 네덜란드 바로크 거장 베르메르가 그린 기독교 성화인 것처럼 작품을 위조해 유통시킨 반 메헤렌의 위작 소동이다. 미술사가들과 미술관까지 감쪽 같이 속아넘어간 이 위작 파문은 재판 과정의 전후로 숱한 미술사가들의 견해와 논문이 발표되어 베르메르의 화력을 재조명하는 기폭제가 됐으며 지금도 미술관에 명작으로 소장되어 있다. 그러나 이번 이중섭 논란의 경우 전문가들은 이해 당사자들을 제외하고는 공개적으로 진위에 대한 명백한 주장을 꺼렸으며 철저히 당사자 감정싸움으로 진행됐다. 감정가 층이 얇고 전문가들이 감정가 단체 화랑의 이해관계에 깊이 얽매여 있는 것이 원인이다.

주관적 안목에 의존해온 국내 감정 시스템이 창피를 당한 전례도 적지 않다. 국립현대미술관 쪽이 91년 천경자의 <미인도>를 진품으로 단정했다가 작가가 자기 작품이 아니라고 반박하고 위조범까지 나타났고, 90년에는 김환기의 <봄처녀>란 작품을 화랑협회 감정위원회가 진품 판정했다가 위조범이 잡혀 판정을 번복하는 치욕도 있었다. 감정 인력의 자질 뿐 아니라 체계적 아카이브 조사가 부실해 나온 사례들이다. 감정기관도 화랑협회 감정위원회와 2001년 출범한 한국미술품감정가협회가 서로 주도권을 놓고 반목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어 재통합이 시급한 과제로 대두된 실정이다. 지난해 두 기관은 작고 작가 도상봉의 라일락 꽃 그림을 두고 엇갈리는 진위 판정을 내렸고, 이번 논란에서는 화랑협회 쪽이 감정가협회와의 불편한 관계 때문에 시종 침묵했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이번 논란은 미술사적 기반이 취약한 국내 시장에서 경매사의 신뢰성에 대한 화두도 던졌다. 서울옥션 쪽이 감정가협회 쪽 경고를 무시하고 이중섭 작품 출품을 강행한 것은 서구 쪽 경매에서는 있을 수 없는 비상식적 행태라는 지적이다. 무리한 출품으로 서울옥션이 기업 이미지에 상당한 타격을 입은 상황에서 11월 갤러리 현대와 학고재 등이 꾸린 케이옥션이라는 신생 경매사가 출범할 예정이어서 경매시장에는 적지않은 지형 변화가 예상되고 있기도 하다. 경매사 모두 유력화랑을 끼고 있다는 점에서 투명한 거래 관행을 기대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 시선이 적지않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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