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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0.12 18:27 수정 : 2005.11.25 11:40

임지영 <중대신문> 기자

2005대학별곡

‘대학생활 백서 100번째-친절한 리포트 도우미씨. 미뤄둔 과제 제출일이 당장 내일일 때, 힘 안 들이고 작성된 리포트를 쇼핑할 수 있게 도와주는 사이트를 일컬음. 단, 도우미 사용 가격은 유료.’

정말 친절해 보인다. 과제가 산더미같을 때도 이것만 있다면 해결할 수 있을 듯하다. 그래서인지 학생들의 이용률도 꽤 높은 편이다. ‘뉴비지니스연구소’의 최근 조사를 보면, 인터넷에서 결제 경험이 있는 대학생들의 16.5%가 리포트 사이트를 사용했다.

지적 재산권을 보호하면서 열린 지식 거래의 장을 추구한다는 리포트 사이트. 그러나 이는 리포트 ‘대행’의 실체를 가리는 허울좋은 수식에 지나지 않다는 비판이 많다. 포털 사이트의 지식 검색에는 리포트 대행 사이트와 관련된 대학생들의 질문이 끊이질 않는데 그 내용 대개가 아이디 ‘주33(jooo33)’의 질문처럼, “너무 많이 알려진 리포트 사이트 말고 다른 데 가르쳐 주세요”다. 많이 알려진 곳은 교수들이 꿰뚫고 있어 불안한 탓이다.

그러다보니 뛰는 학생 위에 나는 교수는 으름장을 놓는다. “리포트 사이트에 저도 다 가입했어요. 직접 가입해서 돈 내고 다운받습니다. 베낄 생각일랑 꿈도 꾸지 마세요.” 수업 첫날, 교수에겐 비장함이 묻어나고, 학생들은 움찔한다. 애초 다운받지 못할 과제를 내주는 교수도 있다. 오성균 중앙대 교수(독어독문학)는 “감상문 숙제를 내더라도 책의 저자와 가상 인터뷰를 해서 쓰라는 식으로 주문한다”고 말한다. 본인이 쓰지 않을 도리가 없게끔, 과제 양식은 점점 더 다양해진다.

이러니 소심한 중앙대 3학년 이아무개(25)씨, 속이 타지 않을 수 없다. 행여 들킬까봐 몇 번이나 사이트만 맴돌다가 그냥 나오는 그. 그런데 주위 친구들은 여기저기서 내려 받아 짜깁기만 잘도 한다. 웬만한 리포트를 능가한다. 점수도 그렇다. “억울하죠. 솔직히 들킬까봐 겁나서 그렇지 저도 하고 싶어요. 직접 하는 것보다 점수도 잘 나오니까 애들이 얄밉기도 하고 교수님도 야속합니다.”

하지만 이용자들이 늘면서 피해 사례도 속속 나오고 있다. 대표적인 게 ‘이 리포트가 아닌가벼’ 유형. 제목과 목차만 보고 결제해 내려 받았는데 실제 내용은 부실하거나 관련 내용이 아닌 경우다. 또 포털 사이트에서도 쉽게 검색되는 내용들을 리포트로 작성해 판매하는 경우도 많다. 저작권에 관한 보호가 체계적으로 이뤄지지 않는 것도 큰 문제점. 독일에도, 비슷한 사이트가 운영되고 있지만 판권문제나 법적 제재 관련 사항이 확실하게 보장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와는 사정이 많이 다르다.

인터넷이라는 매체를 통해 자유롭게 정보를 공유할 수 있다는 장점을 옹호하는 이도 물론 있다. 논문 검색도 원활해 깊이 있는 자료 공유가 가능하다는 말인데, 실상 500원, 1000원 짜리 리포트 내려받기 횟수에 견줘 만원을 호가하는 논문의 내려받기 횟수는 지나치게 초라하다.

오성균 교수는 “대학교육이 자기 언어 만들어가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남의 얘기를 자기 얘기처럼 삼는 건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모든 과제가 자기를 벼리는 작업이란 점도 힘주어 강조한다. 몇 번 클릭에 지식 쇼핑이 가능한 사이트, 분명 친절하긴 하지만 그것이 온전히 나의 것일 수 없다는 점에서 긴 안목으론 불친절한 도우미가 아닐런지. 지금도 열심히 클릭하고 있을 대학생들에게 부쳐, 사이버 안에서만 유효한 쇼핑 카트를 과감히 비워보는 걸 어떨까.


임지영 <중대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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