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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0.26 18:38 수정 : 2005.10.27 15:46

정이현 소설가

저공비행

나는 끊임없이 ‘오빠’를 좋아하는 아이였다. 오빠는 자주 바뀌었더랬다. 중학교 1학년 때는 대학농구계의 기린아 허재 선수가 사랑하는 나의 오빠였으나, 2학년이 되면서는 별밤지기 이문세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그 놈의 취향 한번 다양하기도 하지. 온몸으로 고독한 반항아의 포스를 풀풀 풍겨대던 최재성 오빠에서부터, 순박한 홑꺼풀 눈을 끔뻑이며 노래하던 변진섭 오빠에 이르기까지. 전형적인 꽃미남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 유일한 공통점일까, 십대 시절 내 사랑을 받았던 그 오빠들에게서 어떤 일관성을 찾아낸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심지어 그 사랑은, 이상은 ‘언니’에게도 뜨겁게 타올랐다)

‘친구 따라 강남 가는’ 일도 왕왕 일어났다. 친구가 좋아하는 스타를 괜히 따라 좋아하게 되는 경우 말이다. 한 임금을 섬기는 충신의 심정으로 열과 성을 다해 한 명의 스타를 좋아하고 각종 정보를 공유하다보면, 남들은 모르는 우리만의 끈끈한 우정이 샘솟는 느낌이었다. 원래는 별로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으나, 공통의 스타를 사모한다는 이유만으로 가까워진 친구 사이도 있었다. 나만의 오빠가, 드디어 ‘우리 오빠’가 되는 순간이다.

이 관계가 좀더 넓게 확대된 것이 팬클럽이 아닐까 싶다. 팬클럽은 스타를 추종하기 위해 존재하는 듯하지만, 실제 그 조직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나름의 자율적 세계를 가진 크고 작은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자발적 의지로 모인 다양한 사람들이 원활한 활동을 위해 조직도를 짜고 중지를 모으고 구체적인 내규를 만드는 것이다. 또한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문제점들을 스스로 규제하고 정화하기도 한다. 소녀들이 중심이 된 ‘오빠부대’거나, 20~30대 이상의 여성들이 주로 활동하는 ‘누나부대’거나, 스타를 떠나서도 팬클럽 회원들끼리 인간적인 교감을 나누고 팬클럽 활동을 통해 삶의 즐거움을 얻는다는 면에서는 별 차이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들의 행동은 자주 ‘팬질’이라는 표현으로 무시되고, 이들은 ‘빠순이’라는 이름으로 명명된다. 애써 해석하자면 ‘주구장창 오빠를 외치는 계집애들’ 쯤으로 번역되어질 그 단어는 노골적으로 모욕적인 뉘앙스를 품고 있다. ‘빠순이들’에 대해 지나친 혐오를 드러내며 집단공격을 가하는 모습은 인터넷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다. ‘안티 빠순 세력’ 의 논리는, 자본이 만들어 낸 상품일 뿐인 일부 아이돌 스타의 소녀팬들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과격하고 배타적인 ‘팬질’이 ‘업계의 올바른 질서’(뭐 이런 게 실제로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를 어지럽힌다는 것. 그 뒤에는 어쩌면 ‘뭣도 모르는 어린 여자애들이 잘났다고 나대는 꼴’이 보기 싫다는 심리도 어느 정도 섞여 있을지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죄라고는 단지 ‘우리 오빠’를 너무 사랑하는 것뿐인 소녀 팬들의 취향 자체에 대해 부정하고 폄하할 위치에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떤 음악 좋아하세요?”라는 질문에 좀 있어 뵈는 뮤지션들의 이름을 줄줄이 답해야 ‘가오’가 산다고 여기는 허위의식에 비한다면, 자신이 진짜 좋아하는 것에 대해 순수한 열정을 쏟아 붓는 그들의 태도가 훨씬 정직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 좋다는데 어쩌겠는가. 타인의 사랑에 대해 간섭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그러니, 남의 취향 ‘빠순이’로 매도하지 말고 저마다들 자신의 취향이나 잘 지켜나가자.

그리고 이 말은 반대로 팬클럽 소녀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것이기도 하다. 내 것이 소중하다면, 남의 것도 소중하다. 이 사람의 나의 별이라면 저 사람 또한 누군가의 별일지니, ‘우리 오빠’를 지키기 위해 ‘남의 오빠’를 걸고넘어지는 행동은 부디 하지 말기로 하자. 타인에게 해를 가하지 않고도 내 사랑을 더욱 뜨겁게 불태우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조용한 사랑법을 한번 찾아보자는 것. 그것이 한때 누군가의 ‘빠순이’였던 이 언니의 자그마한 당부다.

정이현/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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