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묘향산 보현사의 관음전. 대웅전 오른쪽에 자리잡고 있다.
|
묘향산 관광은 향산호텔에 여장을 풀면서 시작된다. 호텔 앞으로 지나는 청천강의 지류 향산천(묘향천·향암천)의 해맑고 푸른 물줄기를 거슬러 오르며, 국제친선전람관·보현사가 이어진다. 물길은 왼쪽 골짜기에서 내려와 합류하는 여러 지천을 거느렸다. 상원동·만폭동·칠성동 등 묘향산 산줄기에서 남쪽으로 흘러내리며 수많은 바위절경을 빚어내고 있는 계곡들이다.
한국전쟁때 14채 불타 10채 남아 팔만대장경 판본등 보관도
고려시대 고찰 보현사는 내향산의 최고 절경으로 꼽는 상원동 골짜기 들머리 부근의 너른 터에 자리잡고 있다. 실천·행동·도덕 등을 관장한다는 보현보살에서 이름을 따온 절이다. 조계문·해탈문·천왕문을 거친 뒤 만세루를 지나 대웅전에 이르는 동안 널찍한 터에 짜임새 있게 들어선 건축물들의 배치에 탄복하게 된다. 조계문 안으로 들면 우거진 전나무숲이 반기는데, 왼쪽으로 보현사비를 비롯한 여러개의 비석이 도열해 있다. 보현사비엔 1028년 탐밀 스님이 안심사를 세운 뒤 그 조카인 광학 스님이 1042년 243칸 규모의 보현사를 창건했다는 내용이 쓰여 있다.
보현사는 본디 24채의 건물과 탑들로 이뤄졌으나, 한국전쟁 때 미군 폭격으로 14채의 건물이 불타버렸다고 한다. 북쪽 해설강사는 “이 때 소중한 유물 1만여점도 함께 사라졌다”고 말했다. 지금 규모의 절은 1970년대에 복원한 것이다.
이런 가운데서도 대웅전 앞에 우뚝 솟은 8각9층석탑과 만세루 앞의 9층탑이 남아 있어 고찰의 정취를 맛보게 해준다. 각각 다보탑·석가탑이란 별칭으로 불리는 두 탑은 모두 북한 국보유적으로 지정돼 있다.
대웅전 옆으로 관음전과 영산전을 지나면 서산대사와 사명당·처영의 영정을 모시고 제사 지내는 수충사가 있다. 조선 숙종 때 서산대사를 기려 세운 사당이다. 수충사 앞 새로 지은 건물은 북쪽에서 역사박물관으로 개설한 팔만대장경 보관고다. 팔만대장경 판본과 청주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찍은 직지심경(1377년)이 보관돼 있다. 이 유물들은 한국전쟁 때 묘향산 비로봉 밑 금강암으로 옮겨 보관해 살아남았다고 한다.
평북 피현군 성동리 불정사에 있던 것을 옮겨온 다라니석당, 금강산 유점사에서 전쟁 뒤 옮겨온 유점사 종도 볼거리다. 유점사 종은 1469년 제작된 높이 2.1m, 무게 7.2t짜리다.
만폭동 3km 물길따라 쏟아져내리는 폭포들
|
묘향산 만폭동 골짜기의 무릉폭포. 물이 많이 줄었지만, 조금만 물이 불어도 암반 전체를 뒤덮으며 선경을 이룬다고 한다.
|
만폭동은 향로봉(1599m) 남쪽의 골짜기다. 크고 작은 수많은 폭포들이 있다 해서 붙은 이름이다. 들머리는 시멘트포장길이고, 폭포 무리가 시작됨을 알려주는 서곡폭포 지나면서 바위와 절벽으로 이어지는 가파른 계곡길을 타게 된다. 서곡폭포부터 맨 위쪽의 9층폭포까지 3㎞ 남짓한 물길을 따라 무릉폭포·은선폭포·유선폭포·비선폭포 등 거대한 암반과 그 위를 미끄러지고 쏟아져내리는 폭포가 줄줄이 사탕처럼 이어진다.
비가 덜 온 탓에 최근 수량이 줄어들어 웅장한 폭포들의 위용은 한풀 꺾인 모습이지만, 바위를 타고 흐르는 깨끗한 물살과 가을빛으로 붉게 단장한 산자락이 어우러져 빼어난 경치를 펼쳐보여 준다.
북쪽 여성 해설강사 허봉순(24)씨가 무릉폭포 앞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물이 많을 땐 저 꼭대기에서부터 쏟아져내리면서 이 커다란 바위자락 전체가 폭포로 되어 장관을 이룬단 말입니다. 등산객들은 발을 적시며 올라야 합니다.” 거대한 암반 옆으로 비스듬이 쏟아지는 높이 27m의 폭포다. 등산객들은 암반에 계단식으로 파놓은 홈을 따라 쇠밧줄을 잡고 지그재그로 올라간다.
무릉·은선·유선·비선폭포…붉게 물든 산자락과 조화 장관
올라가면서 은선정·만폭대·비선대 등 시야가 탁 트이는 정자·전망대와 오작교·유선다리 등 암반 사이를 이어주는 다리들이 곳곳에 있다. 만폭대에선 멀리 천주석이 바라다 보인다. “옛날 하늘에 구멍이 뚫려 45일간 비가 왔는데, 한 총각이 바위를 세워 막았다”는 그 바위가 바로 천주석이다.
일정상 비선폭포 앞에서 발길을 돌리고 내려와 아쉬움이 컸지만, 희고 큰 바위와 깨끗한 물길, 울창한 숲을 즐겼으니 우선 묘향산의 향기 한 자락만은 맡아본 셈이다.
향산천 물길 건너엔 국제친선전람관이 있다.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위원장이 각국의 지도자들과 각계각층 인사로부터 받았다는 선물을 모아 전시한 곳인데, 전시 물품과 건물 규모가 방대하다. 두 채의 양·한식 건물 200개의 방에, 178개 나라에서 보낸 21만9370점의 선물 중 일부를 전시하고 있다. 일종의 ‘세계 진귀·호화 공예품 종합전시관’을 떠올리게 한다. 수십자의 글씨를 새긴 쌀알에서부터 스탈린이 선물한 방탄열차까지 다양하다.
묘향산/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박물관·왕릉보며 역사속으로
순안공항 내려 평양 둘러보기
|
평양의 양각도호텔(48층) 객실에서 내려다본 대동강과 평양 시내 모습. 앞에 호텔이 운영하는 골프장이 보인다.
|
묘향산을 가려면 평양 순안공항을 거친다. 평양의 가을은 사진으로만 보던 썰렁한 거리 모습과는 달랐다. 비록 화려한 거리 풍경은 볼 수 없으나, ‘공원 속의 도시’라는 별칭답게 도시 주변과 대동강·보통강가의 울한 포플러숲, 거리의 은행나무·수삼나무 가로수들은 가을빛을 한껏 내뿜고 있었다. 평양 시내에서 둘러본 곳들을 소개한다.
교예극장 서커스 공연 본뒤
단고기로 허기진 배 달래
조선중앙역사박물관=원시시대부터 근대에 이르는 북한 지역의 유물을 둘러볼 수 있는 곳이다. 대동강변 인민대학습당 앞의 김일성 광장 오른쪽에 있다. 신·구석기부터 고조선·고구려·고려·조선시대의 유물 10만여점이 19개의 전시실에 나뉘어 전시돼 있는데, 백제·신라 것은 드물다. 고조선시대의 청동기 유물들과 덕흥리 고분 등 고구려시대 무덤에서 발견된 무수한 벽화들이 볼 만하다. 상원 검은모루 동굴에서 발견된 물소·사슴 등 동물 화석뼈들과 고구려시대의 천문도를 바탕으로 조선 초기 찍어냈다는 별자리 지도 ‘천상열차분야지도’, 고구려의 세번째 도읍인 안학궁(평양) 복원 모형도 인상적이다. 박물관 앞 광장 맞은편엔 조선미술박물관이 있다.
동명왕릉=고구려의 시조인 고주몽 동명왕의 묘다. 본디 졸본땅에 있던 것을 요녕성으로 옮겼고, 이어 길림성 집안으로 옮겼다가 장수왕이 427년 평양으로 천도하며 이곳으로 옮겨왔다고 한다. 주변에 흩어진 16기의 왕릉들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됐다. 고분 중에 가장 규모가 큰 것으로 알려진다. 2단의 돌기단 위에 흙을 덮어 분구를 만들었다. 일제 때 도굴 등으로 훼손돼 있던 것을 1993년 2년 공사끝에 복원하고, 능 앞에는 고주몽을 따르던 여덟 신하 문·무인상과 마상을 복원해 세웠다. 주변의 소나무숲이 매우 아름다운데, 옛날엔 이곳에서 사냥대회를 열고 잡은 짐승으로 능에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능 들머리엔 폐사됐던 고구려시대 절을 복원한 정릉사가 있다.
|
고려시대 고찰 보현사, 천년 세월 의연하게 품다
|
평양교예극장과 만경대학생소년궁전=교예극장은 수준 높은 서커스 공연과 체조, 빙상 묘기 등을 매일 공연하는 곳이다. 아찔한 공중그네 묘기와 곰을 이용한 공연, 체조 등을 볼 수 있다. 학생소년궁전은 북한의 7~17살 청소년 예체능·교양 교육의 본산이다. 과학동과 예능동으로 나뉘어, 바둑·전통무용·체조·악기연주 등 분야별로 전문가 수준의 교육을 한다. 2000석 규모의 극장에선 이곳에서 기량을 닦은 청소년들의 공연을 감상할 수 있다.
평양단고기집=북한에선 단고기(개고기) 요리를 중요한 민간 전통음식으로 공식 인정한다. 평양 시내에 수십개의 단고기 전문집이 있는데, 통일거리의 평양단고기집도 이중 하나다. 60년도부터 동대원구역에서 운영하던 신흥단고기집을 92년도에 통일거리로 옮겨 새로 열었다고 한다. 갈비·등뼈찜·다리찜·무침·탕 등 70여가지의 요리를, 2층 건물 9개의 대형 방에서 낸다. 그러나 한 안내원이 “실은 더 잘하는 집이 있다”며 귀띔한 곳이 있다. 보통강호텔 옆의 안산원형식당이다. 그는 “거기가 정말 알아주는, 평양 최고의 단고기 요리집”이라며 “식사 차림으로 동태국밥을 잘 하기로도 소문이 났다”고 설명했다. 재료는 전국 매집인들을 통해서 들여온다고 한다.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