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5.10.31 17:54 수정 : 2005.10.31 17:54

어린이 배려등 ‘친절한 전시’ 눈길-강우방

어린이 배려등 ‘친절한 전시’ 눈길…거대한 외관은 ‘남의 옷’ 입힌 듯

지난주 나는 독일 베를린에 있었다. 자유베를린대학에서 열린 ‘고구려 고분벽화 심포지엄’에 참석한 뒤, 이틀 더 머물며 시내 동아시아박물관에서 중앙아시아 미술품과 티벳 금속공예품을 관찰하고 기록·촬영했다. 페르가몬박물관에서는 그리스 로마 건축을 조사하고, 마침 열린 ‘헤라크레니움 최후의 순간’이라는 특별전도 보았다. 터키에서 옮겨온 페르가몬 신전의 조각과 제단을 진열한 곳을 제외하고는 전시실이 대부분 조그맣고 아늑했다. 박물관의 가장 중요한 기능 중 하나인 유물감상에는 최적의 분위기였다. 관람자들은 귓속말로 대화하며 몸가짐을 매우 조심스럽게 했다.

여행 일정상 28일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개관식에 참석할 수 없어, 하루 지나 박물관으로 갔다. 택시를 타고 정원을 지나 박물관 본관 건물 바로 앞까지 갈 수 있었는데, 편리하다기보다는 낯선 광경이었다. 세계 어느 박물관도 일반 차량이 박물관 구역 담 안으로까지 들어가는 경우는 거의 없는 까닭이다. 박물관이란 고귀한 정신이 담긴 미술품을 전시·보관·연구하는 곳이므로 세계 어디서나 경내에 경건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며칠동안 독일의 인간친화적 박물관에 익숙해 있던 터에, 갑자기 나타난 용산 박물관의 거대한 외관도 내 눈으로는 쉽게 감당키 어려웠다. 십년 전 국제 공모에서 당선된 이 박물관 설계도면을 살펴본 적이 있다. 아무리 설계를 수정한다해도 기본 틀을 바꿀 수 없음은 이미 숙지했던 사실이었다.

전시장에서는 박물관 학예원들이 모든 어려움을 무릅쓰고 전시에 전심전력을 쏟은 것이 한 눈에 보였다. 진열장 받침대의 표면구조와 색감이 전보다 훨씬 좋아졌으며, 전에 보지못했던 새 유물과 작품들이 대거 전시되어 큰 흥미를 끌었다. 별개 방에 단독 전시된 금동반가사유상에서 보이듯 조명도 훌륭하여 작품들이 돋보였다.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친절한 설명문을 적재적소에 배치했다. 진열장 받침대도 낮추어 어린이들도 편하게 볼 수 있도록 한 것은 매우 잘한 일이다. 아마도 어린이까지 배려하여 전시대를 낮춘 곳은 이 박물관뿐일 것이다.

종전과 달리 일본 중국 인도네시아 중앙아시아 유물들을 전시해 동양박물관의 성격을 띠게 된 것은 획기적이다. 지금까지는 우리나라 미술유산만 전시하여 왔으므로 국민들이 다른 나라와 우리 미술유산이 어떻게 다르며 우리전통미술의 특징이 무엇인지 살필 기회가 별로 없었다. 유물을 체계적으로 수집해 아낌없이 박물관에 기증한 개인 컬렉션을 기증자 이름으로 마련한 전시실도 관람자들에게 일깨우는 바가 많을 것이다.

학예원들의 훌륭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근본적으로 고칠 수 없게 된 건물 설계상의 얼개는, 사실 우리 미술의 정서와 잘 맞지 않는다. 건물자체는 물론 무용한 공간들이 너무 크고 넓다. 전시실마다 천장에까지 이르는 넓은 문들이 두 세 곳씩 열려 있어서, 작품에 집중하기가 어렵고, 열린 복도 같은 개념의 진열실들이 많았다. 실내를 리모델링하여 우리 미술의 정서에 걸맞는 내부 환경을 새로이 연출해야하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일 것이다. 외국인들이 이 박물관을 찾아와 전시품에는 탄성을 발하겠지만 거대한 건축물 자체에는 말을 다소 아끼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강우방 이화여대 초빙교수·전 국립경주박물관장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