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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1.02 16:17 수정 : 2005.11.02 16:17

"한류를 뒷받침할 미학적 뼈대 필요하다"

"한류가 미학과 함께 가면 좋겠고, 이 책이 그것을 자극하는 힘이 된다면 더욱 좋겠습니다."

김지하 시인이 5-6년전부터 명지대와 민예총 문예아카데미에서 했던 미학강의를 정리한 책 '흰 그늘의 미학을 찾아서'(실천문학사)를 내놓았다. 같은 출판사에서 1999년 출간한 '예감에 가득 찬 숲 그늘', 지난해 2월 출간한 '탈춤의 민족미학'을 잇는 저자의 미학강의 연작이다.

책 출간을 계기로 2일 인사동에서 만난 김 시인은 "'흰 그늘'에서 그늘이 인생의 쓴맛과 단맛, 희로애락, 한을 표현한다면 흰빛은 신성함, 신명같은 것과 관련된다"면서 "흰 그늘의 미학은 개인적으로 겪었던 정신적 분열상태를 극복하고 정신적 통합에 이르는 과정을 미학의 개념으로 정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삼국유사'의 고구려 유화 편에서 방에 갇힌 유화가 들이친 햇빛을 피했다가 흰 그늘을 껴안은 뒤 주몽을 낳았다는 대목이 나온다"면서 "이 책은 흰 그늘이 민족신화나 민족의 미학적 원형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 따져본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근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 독일 교회의 날 기념행사, 문명기행 등을 위해 2주 가량 프랑크푸르트, 프라하, 빈, 부다페스트, 아테네, 로마 등을 방문하고 돌아온 그는 "유럽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마다 한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보며 우리가 '문화입국'까지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현지 목사로부터 한국이 삼성, LG만 잘 하는 줄 알았는데 문화도 꽤 강력하다는 것을 느꼈다는 말을 들었다"고 전하기도 했다.


김 시인은 "이제 한류도 미학적 뼈대를 세울 때가 됐다"면서 "예술종합학교 심광현 교수가 제시한 바 있는 흥과 한의 개념을 동반한 것이 '흰 그늘'이며, 이러한 개념이 한류의 미학적 논의를 촉발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칼 구스타프 융의 '그림자론'은 의식에서 침전된 욕구불만이 무의식에 축적됐다가 신경질이나 히스테리처럼 갑자기 튀어나온다"면서 "모차르트는 그것을 예술창조의 원리로 활용한 것"이라고 흰 그늘의 미학을 설명해 나갔다.

나아가 "우리 문학 가운데 정지용의 시집 '백록담'에는 흰 그늘의 이미지가 여러 차례 나온다"면서 "정지용은 감성적으로는 민족주의자, 이성적으로는 모더니스트, 영성적으로는 가톨릭이라는 세 가지 모순된 성질을 갖고 있으면서도 서로 충돌을 일으키지 않았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흰 그늘'의 민족신화적 원형은 북방유목계의 색채감각인 검은 그늘과 남방해양계의 눈부신 태양, 환웅과 웅녀의 결합 등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시인은 최근 한국영화를 통해 흰 그늘의 미학을 설명하기도 했다. 그는 "류승완 감독의 '주먹이 운다'를 보다가 이유없이 울었다"면서 "밑바닥에서 누추하게 살아온 사람이 만들어내는 매끈한 액션은 너덜너덜한 한을 뚫고 올라온 흥이어서 평론가들조차 그런 감동을 예상치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런 난데 없는 감동이야말로 흰 그늘의 미학이며, 그것은 외국인들에게도 분명히 감동을 줄 것"이라고도 했다.

섬사람들의 오래된 한과 종교를 넘어서려는 선비적 자세 등이 조선시대 천주교의 이입과정 속에서 복잡하게 전개되는 김대승 감독의 '혈의 누', 흥과 한의 정서가 불교적 연기설 속에서 펼쳐지는 김기덕 감독의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 등도 흰 그늘의 미학을 보여주는 수작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한류 현상을 뒷받침할 미학이나 예술이론에 대한 논의가 지금부터라도 활발하게 펼쳐져야 하고, 우리가 탐구할 미학은 한류의 성장발전과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나아가 "흰 그늘의 미학은 인간의 정신적 천민화, 도회적 삶의 혼란상을 극복하는데 강한 소구력을 갖고 있다"면서 "그것은 그늘과 흰빛, 한과 흥, 익살과 숭고미, 슬픔에서 신명에 이르는 통합적 미학으로 발전할 수 있으며, 여기서 뻗어나간 기초예술이나 학술분야의 한류는 하나의 문명행태로까지 나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독일 방문시 민중신학자 위르겐 몰트만 박사와 '생명의 신학'이라는 주제로 대담했던 그는 "축구에서 새세대의 가능성을 본다고 말하자 몰트만 박사는 '축구는 전쟁'이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고 일화를 소개했다. 그러면서 "내가 중요한 것은 스코어가 아니라 응원문화라고 강조하면서 지난 서울 월드컵 때 독일에 패한 한국에 대해 응원단이 '괜찮아'라고 외친 것을 예로 들자 객석에서 박수가 터져나왔다"고 덧붙였다.

몰트만 박사는 "축구신학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며 농담했지만 공격적이고 전투적인 유럽축구와 한국축구의 응원문화는 분명히 다르고, 이는 한류의 미학적 근간을 이룬다고 김 시인은 강조했다. 그는 자신이 철학자나 미학자가 아닐지라도 이번에 출간한 '흰 그늘의 미학을 찾아서'가 한류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촉매역할을 하길 기대했다.

http://blog.yonhapnews.co.kr/chuuki

정천기 기자 ckchung@yna.co.kr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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