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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부부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
"내가 그리는 선, 하늘 끝에 더 갔을까. 내가 찍은 점, 저 총총히 빛나는 별 만큼이나 했을까. 눈을 감으면 환히 보이는 무지개보다 더 환해지는 우리 강산..."(1970년 1월27일)
"김환기는 편지를 참 잘 쓴다.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다감한 글이다. 때로는 지나치게 정이 넘쳐 흐르는. 그러나 나는 곧 답장을 쓰지 않았다. 그러면 일방적으로 또 편지가 왔다. 나는 그의 편지를 몇번씩 받으면 한번씩 답을 썼고, 그러는 동안에 한번 밖에 만나지 않았던 우리는 편지로써 가까워졌다."
1995년 출판됐다가 절판된 수화 김환기 화백(1913-1974)의 짧은 글을 모은 수필집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376쪽.환기출판사)가 드로잉과 사진을 곁들여 다시 출판됐다.
또 시인 이상과 동거하다 사별한 후 김환기를 만나 예술과 인생의 공동운명체인 30년을 함께 한 부인 김향안(. 본명 변동림 1916-2004) 여사의 수필집 '월하의 마음'도 함께 나왔다. 각권 1만8천원.
이산 김광섭의 시 '저녁에'에 나오는 구절인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1970년 김환기의 한국미술대상전 대상 수상작의 이름.
김환기가 1940년대 청년기부터 뉴욕에서 생을 마칠때까지 생각의 조각들을 담은 편지와 일기, 수필들을 통해 그의 인간미 넘치고 독창적이면서 유머 넘치는 일면과 웬만한 문필가 못지 않은 그의 글맛을 맛볼 수 있다.
1955-1959년 파리 시절 프랑스에서의 교우관계, 1963-1974 뉴욕시절 잠시 떨어져있던 김향안 여사에게 보낸 편지, 피카소, 달리, 미로에 대한 김환기의 평론과 각종 전시회 감상평 등도 별도로 실려있다.
김환기는 뉴욕 체류 첫해인 1963년 12월12일 부인을 향해 "이제까지의 것은 하나도 안 좋아. 이제부터의 그림이 좋아. 저 정리된 단순한 구도, 저 미묘한 푸른 빛깔. 이것이 나만이 할 수 있는 세계이며 일일 거야..."라고 쓰고 있다.
넘치는 창작열로 일에 몰두하던 1972년 11월27일 일기에 완성됐다고 기록돼 있는 푸른색 점시리즈 작품 '27-XI-72'는 지난 9일 국내 경매에서 김환기 그림 사상 최고가인 6억9천만원에 낙찰됐다.
조채희 기자 chaehee@yna.co.kr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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