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가장 중요한 척도의 하나인 효율성의 면에서 볼 때도 휴대폰은 그 진가를 유감 없이 발휘합니다. 아무 곳에서 아무런 장애 없이 누구나 교신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매력적인 일인가요? 친구에게, 가족에게, 직장 동료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즉각 조치를 취할 수 있고, 통화가 되지 않으면 음성사서함으로 혹은 문자로 할 말을 다하고, 기기만 잘 다룰 줄 안다면 꼭 지켜야 할 약속시간도 알려주고, 아침에 일어날 때 자명종 기능도 할 수 있고, 심지어는 인터넷도 할 수 있으니..., 그 좋은 점을 다 헤아리기 힘들 것 같군요. 편리하게, 효율적으로 살고 싶은 우리 시대의 욕망과 너무나도 잘 맞아떨어지는 것, 그것이 바로 휴대폰입니다. 컴퓨터, 자동차, 휴대폰, 인터넷이 없는 세상에서는 행복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염려가 들기도 합니다. 그러고 보니 컴퓨터, 자동차, 휴대폰, 인터넷의 또 하나의 속성은 ‘속도’라는 점이 드러납니다. 새로운 기종의 컴퓨터가 나오면 일 년 전의 컴퓨터는 구형이 되어버리고, 시시각각 나오는 신형 자동차는 내 귀여운 티코를 더욱 초라한 것으로 만들고, 가볍고 세련된 신형 휴대폰은 아무 이상 없이 잘 사용하고 있는 지금의 휴대폰을 무전기 취급받게 하고, 전용선이 깔리지 않은 인터넷은 사람을 짜증나게 하고 열 받게 하고 분개하게 하고 좌절하게 만듭니다. 그렇습니다. 그러기에 더욱 빠른 컴퓨터가 계속 나와야 하고, 더욱 좋은 성능의 자동차가 계속 나와야 하고, 더욱 가볍고 다양한 기능의 휴대폰이 계속 나와야 하고, 더욱 빠르게 빠르게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인터넷이 계속 나와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삶은 더욱 경쾌해지고 신속해지고 정확해지고 그럼으로써 우리는 너무나 편리해지고 편리해지고 편리해지고 편리해지고 급기야 행복해질 것입니다. 그래야 합니다. 우리는 조금이라도 더 일찍 행복해지기 위해서 우리의 어린 자식들에게 컴퓨터와 인터넷을 익히게 하고, 최신형의 휴대폰을 지니게 하고 때가 되면 가차없이 운전면허를 취득케 해야 합니다. 아이들이 거리에서 교실에서 복도에서 운동장에서 기숙사에서 때로는 화장실에서 침실에서 식당에서 경쾌하게 울리는 휴대폰 소리에 국가대표선수보다도 민첩하게 반응하고 여보세요 하면서 시작되는 생기 넘치고 발랄한 모습을 보노라면, 아직은 휴대폰 문화에 백프로 적응하지 못한 우리로서는 다소의 열등감과 자괴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이들의 행복이 푹푹 베어 있는 순발력과 민첩성과 흐뭇한 마음을 주체하기 힘이 들 것입니다. 이야기를 더 길게 할 필요도 없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편리하고 유용하고 정겨움이 넘치는 휴대폰을 일부 정보화 시대에 적응하지 못한 어른들이 청소년들의 휴대폰 소지에 대해 시비를 거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좋은 것을 왜 막습니까? 인류의 역사는 언제나 새로움을 향한 도전이었고, 그 새로움은 또 다른 새로움에 자리를 물려주면서 역사의 진보가 이룩되고 있지 않습니까? 무궁무진한 좋은 점을 자랑하는 휴대폰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이지 이를 적극 활용하고 이것을 통해 행복을 만끽하고 있는데,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고 남의 행복에 대해 질투를 느끼고 학생들의 휴대폰 이용을 막으려 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만에 하나 조금이라도 나쁜 구석이 있다면 왜 어른들은 다 휴대폰을 소지하고 휴대폰 이용 인구가 전 국민의 절반을 넘겠습니까? 백 번을 양보해서 혹 공중 장소에서 타인에게 피해가 된다고, 잠시 전원을 꺼두면 되는 것이고, 진동으로 해두면 무슨 피해가 됩니까? 혹 몰지각한 학생들이 있어 잠시 휴대폰 문화를 흐리게 하는 수도 있지만 그거야말로 극히 일부에 국한된 것이 대다수 건전한 휴대폰 이용 학생들은 공중질서를 잘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일부의 문제가 되는 경우를 가지고 대다수 선량한 이용자들이 피해를 보는 일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2 제 마음을 잘 헤아릴 줄 아는 멀리 있는 친구한테 편지가 왔습니다. 쉬는 시간에 살짝 보고 밤에 다시 꺼냈습니다. 만년필로 또박또박 써 내려간 편지 속에는 고운이 상진이의 학교와 유치원 생활을 묻는가 하면 내 앞으로의 삶에 대해서도 염려하고 지난날의 추억도 되새기고 있었습니다. 내 손에 오기까지는 이삼일이 걸렸겠지만 그 다정다감한 마음은 온기를 잃지 않고 있었습니다. 밖에는 구름 사이로 달이 얼굴을 내밀고 집안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습니다. 상추, 열무, 아욱, 박 등을 심은 텃밭에는 열무만이 부지런히 싹을 땅위로 올리고 있었습니다. 나머지 것들도 며칠 내로 싹을 틔울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풍성해집니다. 비록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 가족의 관심과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순도 높은 초록의 싹을 당당하게 지상으로 내밀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과는 대화를 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생겼습니다. 마음 속에 그리는 일은 서툴고 눈에 확실하게 보이는 것만을 믿고 살아갑니다. 생명이란 것이 항상 눈에 확연하게 드러나는 것만은 아니고, 때로는 기다려야 되는 법인데, 확실한 것만을 믿으려 하고 빠른 것만을 숭배하고 더디고 느린 것은 외면하고 맙니다. 어느 생명체고 생명활동은 항상 신속할 수만은 없고 항상 분명할 수만은 없고 항상 정확할 수만은 없습니다. 나름대로의 온전한 생명활동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때로는 더디기도 하고 때로는 기다리기도 하고 때로는 내적인 성숙을 기한 다음에 세상에 자신을 드러냅니다. 모든 것이 사람이 원하는 대로 빠르고 신속하게 진행되는 것만은 아닌데 말입니다. 다시 방안으로 들어가 편지를 썼습니다. 쉽게 써지지 않는 편지. 하고 싶은 말을 떠올렸지만, 친구에는 어떻게 받아들여질까를 생각하고 이래저래 뜸을 들이고 숙성을 시킨 다음에 겨우 한 장의 서신을 마무리지었습니다. 전화로 간단하게 소식을 전할 수 있는 편리함만으로는 담을 수 없는 체온을 편지에는 담을 수가 있습니다. 전화보다는 훨씬 불편하고 시간도 많이 걸리고 봉투와 우표를 준비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그 불편함과 번거로움보다 아주 오래가는 은근하고 깊이 있는 즐거움이 편지에는 담겨있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그 불편함은 결코 나를 불편하게 하지 않고 그 번거로움은 나를 결코 번거롭게 하지는 않습니다. 그 불편함과 번거로움은 내내 내 생활의 윤택제가 되고 활력소가 되고 때로는 소망이 되기도 합니다. 깊이 헤아리고 생각해 보니 아이들의 휴대폰 사용은 그리 권장할 만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핸드폰이 타인과의 ‘통화’를 기능으로 한다면,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과 즉각적인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는 편리함 속에는 놓칠 수 없는 소중한 것들을 잃게 합니다. 행복이 편의에 상당 부분 기대어 있다는 것은 인정되지만, 편의가 행복한 삶의 결정적인 척도가 될 수는 없습니다. 핸드폰은 자신은 물론 타인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하는 계기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맙니다. 발랄하고 생기 넘치는 것은 좋지만, 그것이 내면의 깊이에서 나오지 않는 외부의 자극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허상에 불과한 것입니다. 빈 깡통과 다를 게 없습니다. 따지고 보니 핸드폰 사용은 그 자체로 문제가 되기도 하지만, 우리의 삶의 방식이 온전한 것인가에 대한 좀더 근본적인 성찰을 요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편의와 효율성에 길들여지고, 참고 기다리는 법을 배우지 않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시대가 그러니 우리도 어쩔 수 없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소박한 것보다는 화려한 것이 더 가치 있고, 느린 것보다 빠른 것이 좋고, 돌아가는 것보다 내질러 가는 것이 옹호되고, 작은 것보다 큰 것이 구형보다 신형이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좋은 세상이 되었다고 우리도 시대를 항상 뒤좇고 항상 세태를 수용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되진 않습니다. 핸드폰의 편의와 유용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편의와 효율성을 추구하라고 가르치기보다는 인내와 기다리는 법을 가르치고, 보이지 않는 것을 헤아리게 하고,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을 갖게 하고, 여리고 작은 것에도 마음 쓸 수 있게 하는 그런 사람이 되라고 ‘가르쳐야’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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