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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1.15 18:57 수정 : 2005.11.15 18:57

홍천사 <시왕도> 중 ‘발설지옥’ 부분. 길게 뽑아낸 혀 위로 소가 쟁기질하고 있다.

“옛날옛날에 귀신이 살았는데∼“ 임방 ‘천예록’ 과 압축판 펴내


공자가 말하지 않는다는 괴력난신(怪力亂神)을 조선의 사대부는 말한다.

조선 후기 임방(1640~1724)이 지은 <천예록>(성균관대출판부 펴냄)이 성균관대 민족문학사연구소 정환국 연구실장의 번역으로 출간됐다. ‘하늘가 이야기’라는 뜻의 <천예록>은 일종의 판타지. 조선시대 민간에 전승하던 신선, 귀신, 요괴, 이인, 여성 등 다양한 존재의 기이한 사적을 채록한 작품이다. ‘괴력난신’을 기휘한 유교 시대에 <금오신화>와 더불어 희귀한 예외에 속한다.

유학자 ‘괴력난신’ 채록 이례적
어수룩한 귀신·엽기녀 웃음 유발

<천예록>은 일본 천리대본, 김영복본, 미 버클리대 초본, 일본 천리대 소장 <어우야담> 소재 초본 등 6개의 이본이 있다. 모두 필사본이다. <천예록>은 한차례 번역되었으나 불완전한 천리대본을 교감을 거치지 않은 채 번역함으로써 오역이 많았으며 빠뜨린 부분도 있었다. 이번 번역본은 천리대본에서 빠진 제1화 ‘지리산로미봉진’을 김영복본에서 취하여 62화의 틀을 갖췄으며 천리대본을 바탕으로 김영복본과 대조, 교감하여 오탈자를 바로잡았다.

지은이 임방은 17세기말~18세기초 노론의 핵심인물로 기로소의 원로로 추앙받기도 했으나 상당기간 파직과 유배생활을 하는 등 평탄치 않은 삶을 살았다. “인품이 청아하고 시율을 좋아했다”고 하나 <천예록>의 논평을 보면 당대 전기류(傳奇類), 송대 필기집(筆記集) 등을 즐겨본 것으로 추정된다.

62편 가운데 가장 주목되는 이야기는 신선, 귀신, 요괴에 관한 것. 실존 인물들과 얽히고 설켜 생동감이 넘친다. 예를 들어 여행자가 신선과 조우한다거나, 실제인물이 신선이 되어 거리를 활보한다. 귀신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웃음을 주거나 사람한테 부림을 당하기도 한다. 정체 모를 괴물이 출현하여 사람을 괴롭히는가 하면, 요괴들이 여우나 할미로 둔갑하여 괴변을 일으킨다. 사람이 이물로 변하기도 한다.

도사, 무사, 고승 등 역시 비상한 재주를 발휘하는데, 이지함처럼 알려진 이도 있으나 대부분 무명인 점이 특징. 임진·병자 양란을 거치면서 신통력으로 난세를 돌파하거나 난리 속에서도 태연하게 살아가는 민중의 투영으로 본다. 못된 무리를 일시에 격퇴하여 인정을 통쾌하게 하는가 하면 귀신을 부리기까지 한다.

지금의 시각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12편의 인정세태와 연애담. 여성이 활달하게 그려진 반면 남성은 무기력하거나 색을 밝히는 것으로 희화화된 점이 특징. 기녀를 업신여겼다가 창피를 당하는 관리, 아내한테 볼기를 맞고 수염이 잘린 남편, 어처구니없이 아름다운 여인을 놓쳐 비웃음을 산 진사 등이 등장한다. 신분을 뛰어넘어 혼인에 이르는 옥소선, 일타홍 이야기는 62편 가운데 가장 완벽한 서사 구조를 가지고 있다.

<천예록>은 임방과 동시대 포송령(1640~1715)이 엮은 중국의 <요재지이>와 비교된다. 옮긴이 정환국씨는 “명말 청초의 변란기에 저술된 점에서 임병 양란을 통과한 <천예록>과 흡사하다”고 전했다. 그러나 “<천예록>은 <요재지이>에 비해 ‘괴력난신’과 거리를 두고 있다”면서 “갑자기, 크게 놀라, 뜻밖에, 우연히, 어느 날 등의 단어들이 일상성과 비일상성을 중재하는 동시에 지은이가 비일상성과 거리를 두는 수단으로 쓰인다”고 분석했다.

62편 가운데 재미있는 28편을 따로 뽑아 <조선의 신선과 귀신 이야기>를 엮어 함께 펴냈다.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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