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11.16 21:17
수정 : 2005.11.17 10:15
자비로운듯 냉랭한듯한 눈 우아하고 고고한 자태 뭇 사람의 넋을 빼놓다
그윽한 산사의 새벽, 온 머리에 열한개의 또다른 얼굴을 인 관세음보살은 온몸이 검붉게 빛났다. 연꽃잎 에워싼 받침대 위에 2m넘는 신장을 곧추 세운 그의 똑 부러진 눈매를 올려 보는 순간 절로 다리 힘이 풀린다. 소녀 같은 몸매를 수놓은 온갖 장신구도 일순 보이지 않았다. 냉기와 온기, 환희, 애조를 함께 녹인 관세음의 눈, 괴기스러운 머리의 작은 얼굴들은 그 자체로 대자대비의 화엄 세상이었다.
전통 조각사에서 최고의 보물인 경주 토함산 석굴암 답사의 백미는 단연 본존불과 더불어 십일면 관음보살상이다. 미술사가들은 말할 것도 없고 직접 친견한 답사객들에게 변치 않는 ‘신라의 연인’으로 자리잡은 이 보살상은 동양 미술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림조각’으로 손꼽는다. 주실의 중앙부 본존상 바로 뒤에 한몸처럼 직선상으로 놓여 평소 바깥 유리벽에서는 볼 수 없기에 신비로운 감흥은 각별하다. 잘룩한 허리에 가녀린 천의를 걸치고 오른손으로 옷의 영락을 살짝 들어올려 상큼한 액센트를 주었다. 왼손에 감로수 담긴 정병을 든 우아하고 고고한 몸체. 세겹의 목걸이와 가슴, 배를 가르는 구슬띠와 고리 장식, 팔찌, 발찌 등의 기기묘묘한 장신구 조각들은 보는 이를 황홀경에 몰아넣는다. 중생들 애원성을 듣고 바다같은 자비심으로 고통을 구제하는 보살이니 후대인들이나 그 팍팍한 화강암면에 공들여 돋을 새김을 한 신라 석공의 마음이나 매한가지일 터다.
십일면 관음상은 8세기 통일신라 때 조각이나 석굴암이 20세기 초 세상에 알려진 까닭에, 여느 유산과 달리 묵향의 기록들은 근현대기 문인들 자취로 넘쳐난다. 20년대 석굴암 십일면 관음상을 답사했던 소설가 현진건의 ‘불국사 기행’을 보자.
‘… 십일면관음보살은 더할 나위 없는 여성미와 육체미까지 나타내었다. …수없이 늘인 구슬 밑에 하늘하늘하는 옷자락은 서양 여자의 야회복을 생각나게 한다. 이 아른아른 옷자락 밑으로 알맞게 볼록한 젖가슴, 좁은 듯하면서도 슬밋한 허리를 대어 둥그스름하게 떠오른 허벅지, 토실토실한 종아리가 뚜렷이 드러났다. 그는 살아 움직인다! 그의 몸엔 분명히 맥이 뛰고 피가 흐른다…’
현진건은 상의 육체미에 다분히 탐닉했던 모양이다. ‘팔뚝을 만지고, 손을 쓰다듬고, 가슴을 어루만지며 어린 듯 취한 듯, 언제까지고 차마 발길을 돌릴 수 없었다”고 덧붙이고 있다. 시조집 <백팔번뇌>를 남긴 최남선을 비롯해 춘원 이광수, 청마 유치환, 동탁 조지훈, 미당 서정주, 한운사 등 숱한 시인, 작가 들도 본존불에 가려진 미의 여신을 글로 찬양했다. 특히 불자인 박희진 시인의 ‘관세음상에게’는 겸허하게 여문 시심과 깊은 투시안이 느껴지는 명시로 삼을 만하다.
‘ …당신 앞에선 말을 잃습니다/미(美)란 사람을 절망케 하는 것/이제 마음 놓고 죽어 가는 사람처럼/절로 쉬어지는 한숨이 있을 따름입니다…어느 명공의 솜씨인고 하는 건 통/떠오르지 않습니다//다만 어리석게 허나 간절히 바라게 되는 것은/저도 그처럼 당신을 기리는 단 한 편의/완미한 시를 쓰고 싶은 것입니다…하찮은 이름 석자를 붙이기엔/너무도 아득하게 영묘한 시를’
1909년 석굴암의 존재가 알려지자 이 관음상도 적지않은 아픔을 겪었다. 이구열씨의 <한국 문화재 수난사>를 보면 한일 병합 직전 실권자였던 일본 소네 통감이 방문한 뒤 관음상 앞에서 천년이상 동고동락 했던 정교한 석조 5층 소탑이 사라졌다고 기록하고 있다. 훔친 이가 소네였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지금도 일본 어디엔가 숨어있을 이 소탑의 귀환을 자비의 관음상은 간절히 빌고 있을 것이다. 관음상 머리에 있는 11개의 얼굴상도 조선총독부 자료인 <석굴암과 불국사>를 보면 꼭지면과 왼쪽의 두 얼굴이 없어졌다고 나온다. 현재 전해지는 관음상 머리의 여러 얼굴들과 꼭지의 불좌상은 후대 일본인들과 문화재관리국에서 보수한 것이다. 하지만 <십일면신주심경><불설십일면관음신주경> 등에 보면 십일면 관음상의 정수리에 불상 머리를 놓는다고 되어있어 복원이 잘못되었다는 비판도 있다.
새벽 예불을 나온 곱사등이 할머니는 십일면 관세음상 옆에서 ‘보살님 보살님’만 되뇌이며 거푸 절을 했다. 앞서 예불하던 스님은 관세음상이 숨은 본존불 앞에서 ‘수능고득점, 고시·사시 합격’을 축원했다. 세속의 욕망과 천상 관세음의 장엄한 미소가 갈마드는 한순간들, 영영 바라만 보았던 짝사랑의 추억 같은 애잔함을 안고 석굴암 주실의 미닫이 문을 열었다. ‘나보다 더 '나'를 사랑하는 이 천년을 천년을 사랑하는 이 새로 햇볕에 생겨났으면. /새로 햇볕에 생겨나와서 어둠 속에 날 가게 했으면.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서정주, <석굴암 관세음의 노래>)
경주/글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토함산 석굴>(문명대 지음, 한언 펴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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