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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1.18 23:29 수정 : 2005.11.18 23:37

‘평양’ 기들릴 작, 문학세계사./필진네트워크 피터팻

2005년 11월18일자 일간지들(일부 방송뉴스 포함)은 <타임>를 인용해 미국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는 한 만화책에 대한 소식을 전했다. 캐나다의 애니메이터이자 만화가인 기 드리즐(기들릴)이 펴낸 <평양, 북한에서의 여행>이 바로 그 화제의 만화. 그런데 이 책이 이미 1년 전인 2004년 9월에 <평양-프랑스 만화가의 좌충우돌 여행기>(문학세계사)란 제목으로 국내에 출판되었던 책이라는 것을 기사를 전해준 기자들은 미처 몰랐던 모양이다.

기사에 의하면 <타임>은 이 만화를 아트 슈피겔만의 <쥐>나 조 사코의 <안전지대 고라즈데>에 버금가는 수준높은 작품이라고 평가했다는데, 과연 <평양..>이 <쥐>나 <..고라즈데>와 함께 언급될만 한 책일까?(최근 새만화책에서 출간된 <페르세폴리스>역시 <쥐>, <고라즈데>와 함께 언급되고 있다는 사실이 재밌다.)

북한이 폐쇄된 사회이고 올바로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 많은 탓에 많은 경우 호기심과 두려움으로 그 닫혀있는 문 틈을 엿보며 보이지 않는 부분을 상상해보게 된다. 만화 <평양>은 암흑세계일 것만 같은 북한에도 '일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러나 만화가 기들릴이 체험한 평양의 일상은 극히 제한된 일상이었고, 그는 만화적 상상력으로 그 제한되었던 일상을 드러내 보여주기보다는 자신의 체험을 지극히 주관적인 시선으로 풀어내면서 통제적인 사회와 그런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는 '인간'들을 마음껏 경멸하고 조롱할 뿐이다. 그리고 그 내용 속에서 자신은 서구 선진국의 자유로운 시민이라는 터무니없는 우월감이 드러난다.

책장을 넘기며 북한 생활을 대리체험하는 재미에 빠져있다가도 사람을 사람으로 바라보지 않고 그저 관찰의 대상물 정도로만 여기는 작가의 차가운 시선이 느껴질 때면 '비판과 풍자'보다는 '경멸과 조롱'으로 가득한 그 시선에 어쩐지 나 자신이 조롱당하는 듯한 기분에 빠져버리게 되는 만화 <평양>. 하지만 이런 우울한 기분을 단숨에 해소시켜주는 만화도 있다. 바로 한국전력 직원이자 만화가인 오영진의 <남쪽손님 빗장열기>(길찾기)가 그것.

, 오영진, 길찾기./필진네트워크 피터팻
비슷한 시기를 북한에서 보냈던 두 만화가가(그러나 체류 기간은 각각 달라서 기들릴은 두 달, 오영진은 1년 반)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해서 그린 만화이지만 두 만화에는 커다란 차이점이 있는데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이 그것이다. 오영진의 만화에서는 북한사람들도 '사람'이다. 놀랍게도, 북한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사람과 사람이 만남으로써 그 안에서 다양하고 풍부한 대화와 이야기들이 만들어진다.

기들릴의 만화가 '관찰기'라면 오영진의 만화는 '체험기', 기들릴의 만화가 '체험기'라면 오영진의 만화는 '생활기'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간극이 두 만화 사이에 존재한다. <평양..>의 행간에서 냉기가 불어나온다면 <남쪽손님..>의 행간에서는 훈풍이 불어나온다. 어떤 책을 펼쳐볼 것인지, 선택은 독자들의 몫일 것이다. 그리고 우연히도 지금

때는 겨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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