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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1.22 15:01 수정 : 2005.11.22 15:17

명확한 의미를 찾기 힘든 'B급 영화'할리우드의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과 더불어 충무로의 박찬욱 감독이 부각되면서 우리의 귀에는 약간 생소한 단어가 귀에 들리기 시작했다. 바로 'B급 영화'다. 이 단어는 분명 생소한 단어다. 게다가 뚜렷한 뜻을 가진 단어도 아니기 때문에 영화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정확한 개념을 파악하기 힘든 단어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 문제의 'B급 영화'란 어떤 의미를 가진 말일까?언뜻 봤을 때, 'B급 영화'라는 말은 작품성이나 완성도가 보통의 영화보다 떨어지는 영화로 이해하기 쉽다.

하지만 그렇게 쉽게 정의내릴 수 있는 말이었다면, 이 말이 처음으로 통용되던 당시의 소문난 영화 마니아들까지 이 말에 대해 고개를 갸우뚱할 것까지는 없었을 것이다. 물론 'B급 영화'라고 반드시 작품성과 완성도가 떨어지는 작품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른바 A급 영화와 B급 영화의 차이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널리 알려진 영화사적인 이야기를 간단히 언급할 필요가 있다.영화가 본격적인 유행세를 타기 시작할 무렵인 1920년 대는 당연히 TV가 없던 시대였다. 그런만큼 영화는 지금 이상으로 대중문화와 관련해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했고, 그런 영화의 위치를 상업화의 천국인 미국이 가만히 놔둘리 없었다.

당연한 수순이지만, 영화는 그때부터 단순한 상업화를 넘어 산업화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고전의 대표격으로 거론되는 영화인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나 <벤허> 등의 영화는 영화가 본격적인 산업화의 길을 걸었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입증하는 영화다. 윌리엄 와일러 감독의 1959년판 <벤허>도 당시로서는 엄청나다고 할 수 밖에 없는 물량을 동원한 영화였지만, 그 이전에 제작되었던 2편의 <벤허>도 그에 못지 않은 물량을 동원한 영화였다.

영화의 산업화를 상징하는 영화 의 한 장면 ⓒ 뉴라인시네마/필진네트워크 박형준

특히 1925년판 벤허는 12만 5천명의 배우가 등장해 10년 동안 제작한 작품이라니, 우리로서는 지금도 엄두를 못내는 물량 동원이기 때문에 더욱 놀랍다. 참고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역시 1939년 기준으로 600만 달러라는 기록적인 제작비를 동원했던 영화였고, 그 흥행기록은 30년 가까이 흥행수익 역대 1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렇듯 산업화된 영화는 예나 지금이나 많은 대중들이 폭넓게 관람할 수 있는 영화가 대부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렇듯 큰 영화만 존재해서야 저마다 다른 취향을 가진 많은 관객들을 모두 만족시킬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때부터 태어난 장르가 바로 B급 영화라고 볼 수 있겠다. 이 당시의 B급 영화는 A급 영화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적은 제작비를 투자해 무명 배우를 기용하면서 특정 장르의 마니아층 관객을 고려한 자극적인 영화들이 대부분이다.


▲ 장 끌로드 반담의 수많은 액션물 중의 하나 <디 오더> ⓒ 아이비젼엔터테인먼트

장 끌로드 반담의 수많은 액션물 중의 하나 ⓒ 아이비젼엔터테인먼트/필진네트워크 박형준
소수를 위한 '자극'을 중요시하는 것이 B급 영화의 본질적인 특성이기 때문에 B급 영화는 대개 공포와 코미디, 액션과 에로 장르에 치중한다. 한동안 마이클 베이와 샘 레이미, 그리고 로버트 저멕키스가 열심히 리메이크 제작했던 <텍사스 전기톱 연쇄살인사건>이나 <아미티빌 호러>, <하우스 오브 왁스> 등의 공포 영화는 그 당시에 제작됐던 B급 공포 영화를 원본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현대에 들어서 B급 영화는 TV의 등장과 더불어 마틴 스코시즈 감독과 같이 B급 영화 장르에 종사하던 영화인들이 메이저 영화계로 진출하는 사례가 일반화되면서, 그런 리메이크 공포물이나 장 끌로드 반담, 스티븐 시걸 등의 배우들이 기용돼 만들어진 액션 장르로 구분되는 듯했다.

하지만 이런 구분은 <양들의 침묵> 시리즈의 탄생, 그리고 쿠엔틴 타란티노의 등장과 함께 곧 허물어지게 된다.이중에서 특히 쿠엔틴 타란티노의 등장이 주목할만 한데, <펄프 픽션>이나 <킬빌> 시리즈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쿠엔틴 타란티노는 이른바 B급 정서에 가까운 내용과 형식을 기반으로 내로라 하는 유명배우들의 기용과 더불어 많은 제작비를 투입해 '상업화'의 수준에 머물러 있던 B급 영화를 본격적으로 '산업화'의 단계로 끌어올린다. B급 영화의 산업화는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들과 더불어 "B급 영화 제작을 가시적으로는 중단한 할리우드가 이제는 쉽게 1억불 예산을 들이며 B급 영화를 A급 영화처럼 선전하고 있다"면서 그 예로 산악 영화 <버티칼 리미트>를 언급한 시카고 트리뷴의 평론가 로저 에버트의 평 속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렇다면 국내의 B급 영화는?

▲ 270만 관객을 동원한 전설적인 흥행작 <영구와 땡칠이> ⓒ대원기획

270만 관객을 동원한 전설적인 흥행작 ⓒ대원기획 /필진네트워크 박형준
충무로에서는 박찬욱 감독이 B급 영화를 이야기하면서 B급 영화가 본격적으로 마니아들 사이에서 거론되기 시작했지만, 굳이 분류하자면, 이미 국내에서도 오래전부터 B급 영화가 존재하고 있었다. 국내의 B급 영화를 이야기하자면, 빼놓을 수 없는 이는 충무로 최고의 '빨리찍기 대가'로 통하는 남기남 감독이다.

심지어는 3일 만에 완성한 영화도 있다는 에피소드에서 알 수 있는 독특한 장기를 가진 남기남 감독은 언론의 특별한 주목을 받은 적은 없지만, 이소룡 사후, 그의 영화와 비슷한 아류작들이 분위기를 타던 홍콩에서 액션영화 감독으로서 성공한 특별한 이력을 가지고 있는데, 그런 그의 대표작은 비공식적으로 270만 관객을 동원했다는 <영구와 땡칠이>와 무명 코미디언 이주일을 스타로 만든 <평양 맨발>이 되겠다.

<영구와 땡칠이>와 최근 그가 연출한 <갈갈이 패밀리> 시리즈 등에서 엿볼 수 있는 남기남 감독 영화 특유의 '엉성함'은 1990년대 초반에 어린이들 사이에서 유행을 일으키며, 심형래, 김정식, 이창훈, 이경규 등의 유명 개그맨들이 아동용 영화로 진출하게 되는 계기를 만들어나간다. 그 외에도 <애마부인> 시리즈 등의 에로티시즘을 표방한 영화들과 <용팔이> 등의 액션 시리즈 등이 지금의 시각으로 보자면 분명히 B급 영화 장르에 속한다고 볼 수 있지만, 그 시대의 관점과 기준으로 보았을 때, 이런 영화들을 과연 B급 영화로 분류해야 할지 다소 난해하다는 문제가 있다.

꼭 A급과 B급을 분류할 필요가 있을까?어디까지나 개인적인 판단이지만, 한편으로 B급 영화는 그 속에서 또 하나의 장르를 탄생시켰다는 점에서 또다른 흥미를 느끼게 한다. 소수를 위한 '자극' 차원에서 제작됐던 B급 영화는 1970년대 중반에 들어서 짐 샤먼 감독의 <록키 호러 픽쳐 쇼>의 탄생과 더불어 일반인들에게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구조를 가졌지만, 소수를 위한 '자극'을 넘어 그들의 집단적인 추앙을 받는 '컬트 영화'로 분화되며,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그리고 이러한 컬트 영화의 맥은 대개 참혹할 정도로 흥행에 실패한 대중 영화들 사이에서 뭔가 새로운 것을 발견한 소수 마니아들의 열광적인 응원을 받는 등의 패턴으로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결국 영화 장르에 있어서 A급과 B급, 그리고 컬트 등의 분류는 영화의 발전 척도와 시대의 변화, 그리고 다양한 취향에 따라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변화는 궁극적으로 그 분류가 어떻게 보면 큰 의미를 둘 수 없는 성격의 분류임을 증명한다.

특히 샘 레이미나 피터 잭슨 등, <스파이더 맨> 시리즈와 <반지의 제왕> 시리즈를 통해 할리우드 내에서도 톱으로 통하는 감독들이 애초에는 B급 냄새가 물씬 풍기는 공포와 컬트 장르에서 일가견을 자랑하는 감독이었다는 사실과 더불어 무명 시절의 강제규 감독 역시 B급 영화의 성격이 강한 옴니버스 공포 영화인 <공포 특급>을 연출했던 적이 있다는 사실은 이 분류의 의미를 더욱 모호하게 만든다는 의미를 가진다. 이렇듯 우리가 B급 영화라고 부르는 영화들도 영화의 발전, 그리고 감독 개개인의 발전에 있어서 큰 의미를 가지는 경우도 대단히 많다.

더욱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영화의 산업화와 더불어 이제는 '원조'라고 볼 수 있는 과거의 분위기와 비슷한 B급 영화들은 쉽게 찾아보기 힘들고, 혹시 찾게 되더라도 평론가들의 대대적인 공격 속에서 짧은 시간동안 최대한의 수익을 뽑아내는 구조로 고정된 경우가 많다. 하지만 산업화의 틀 속에서도 B급 영화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는 것은 흔히 말하는 주류 영화 못지 않게 그런 영화를 열심히 감상한 나로서는 대단히 즐거운 의미를 갖는다. 크게 주목받은 적도 없고, 산업화의 틀로 편입된 B급 영화지만, 일상 속의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카타르시스를 느끼기에는 그들 영화처럼 좋은 영화를 찾기는 힘들어보인다.

그렇듯 장르를 더욱 풍성하게 하고, 취향의 다양성을 확실하게 드러내는 계기가 된 B급 영화는 산업화의 틀 속에서 영화의 어떤 발전을 이끌어낼지 궁금해진다. 쿠엔틴 타란티노와 샘 레이미, 피터 잭슨이 그런 의미에서 할리우드에서 더 많은 진가를 발휘하면서 국내에서도 B급 정서를 확실하게 반영하면서도 많은 사람들의 즐거움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진가를 발휘할 영화가 많아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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