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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1.30 19:35 수정 : 2005.11.30 19:35

올덴버그가 복원된 청계천 들머리 광장에 설치할 조형물 ‘스프링’의 조감도. 나선형 조개 모양의 조형물 밑쪽 구멍에서 청계천 물이 실타래처럼 흘러 내려오는 얼개다.

서울문화재단 “높이 20m 조형물 350억에 계약” 미술계 “공공미술에 공론화 과정 빠져” 거센 반발


클라에스 올덴버그(76). 빨래집게, 톱, 변기, 타자기 따위의 일상 용품들을 우스꽝스런 꺽다리 조형물로 둔갑시켜 현대미술사에 이름을 올린 스웨덴 출신의 팝아트 노장이다. 2005년이 저무는 지금 난데 없이 그의 팝아트는 한국 미술판의 입 도마에 올라있다. 시민들이나 미술계 인사들 대부분이 모르는 사이, 뜬금없이 그의 신작 조형물이 서울 청계천의 상징물로 등극했기 때문이다.

서울시 산하 서울문화재단(이사장 유인촌)은 지난 10월 중순 올덴버그와 340만 달러짜리(한화 35억여 원) 거대 조형물 계약을 맺었다고 최근 발표했다. 서울시가 복원한 청계천 들머리 동아일보사 앞 광장에 꽈배기 모양의 인도양 조개 조형물을 디자인해주는 대가로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극히 드문 거액(보통 세계적인 작가들의 조형물 작업은 액수가 200만 달러 안팎이라고 한다)을 준 것이다. 올 여름 시안을 건넨 작가는 계약금 가운데 제작비를 뺀 16억원 정도를 가져가는 것으로 전해졌다. 돈은 통신회사 케이티(KT)가 댔으며 이 회사가 조형물을 기부하는 형식으로 설치된다는 게 재단쪽 설명이다.

내년 3~6월께 설치될 예정이라는 이 조개 조형물은 최대 지름 6m, 높이가 20m가 넘는 나선형인데, ‘스프링’이란 이름이 붙었다. ‘봄’ ‘용수철’ ‘샘’의 세 가지를 뜻하는 영문 단어의 의미에 맞게 이 조개 아래쪽 구멍에서 청계천 원수가 흘러내려가고 용수철 같은 나선형 구조에 봄의 푸릇한 이미지를 강조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명박 시장이 ‘서울의 랜드마크가 될 것’이라고 호언한 올덴버그의 조개 조형물은 그가 청계천을 한번도 걸어보지 않고 미국 작업실의 탁상에서 자료만 보고 구상해 만들어진 것이다.

빨래집게를 소재로 만든 작가 특유의 거대 조형물 모습이다.
프로젝트는 작가의 윤곽이 드러날 때까지 철저한 보안 속에 진행되었다. ㅂ, ㄱ씨 등 미술계 관계자들은 2~3년 전부터 청계천 복원의 실무 사령탑을 맡았던 양윤재 당시 서울시 행정2부시장과 산하 실무진들이 미술평론가, 대학교수 몇몇을 조용히 접촉해 외국작가 가운데 조형물 대가들을 골라내라는 추천서를 돌렸다고 전했다. 이 과정에서 올덴버그와 조형물 ‘망치질 하는 사람’으로 유명한 보로프스키, 안토니 곰리 등이 거명됐고, 지난해 중반 국내에 작업이 없었던 올덴버그쪽으로 사실상 방침이 정해졌다는 것이다. 이후 올덴버그와 연락선이 있는 미술시장의 한 관계자가 양 부시장 팀과 올덴버그 사이에 중간고리 구실을 맡아 작품 설계 요청서와 청계천 관련 자료를 보내고 협상액을 조정하는 구실을 했으며, 올 여름 조형물 시안까지 받아 서울시쪽에 건네준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아직 한번도 방한하지 않은 올덴버그의 조형물 제작은 대학교수인 중견 공예가의 제작공방이 맡을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쪽은 올초 올덴버그 내정 사실이 일부 보도된 뒤 시민단체들이 문제삼자 기업기증으로 제작할 것이며 작가는 확정되지 않았다고 답한 바 있다.

미술계쪽은 보수, 진보 진영 할 것 없이 반발 일색이다. 30일 미술인회의, 문화연대, 민예총, 민미협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드문 공공미술 작업에 최소한의 문화적 공론화 과정이 빠진 것은 이명박 시장의 불도저식 행정을 보여주는 반민주적 처사”라는 규탄성명을 내고 선정 무효화, 재공론화를 촉구하는 저지운동을 선언했다. 상당수 미술인들이 불쾌해하는 것은 또 있다. 애초 서울시가 기획 단계에서 밀실 거래 식으로 관여하다가 올덴버그의 선정방침이 언론에 보도되어 말썽이 일자 덜컥 케이티와 서울문화재단이 사업주체인 양 포장한 것은 본말 흐리기가 아니냐는 의혹이다. 서울시쪽은 시 미술장식품 분과위의 심의를 거쳤기 때문에 절차상 하자가 없다는 견해다. 시의 건립 방침이 뚜렷한 만큼 일부 미술단체의 저지운동이 효과를 거둘지는 미지수다. 공공미술 기획자 박삼철씨는 “공공미술의 민주적 참여가 미술판의 화두인 요즘 대선 가도를 바라보는 이명박 시장의 문화관을 냉정하게 평가하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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