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동관음입상 90여년만에 일본서 소재 확인
소장자 “한국 귀환 바란다…환수 나서야”
옷주름 음영·굴곡진 몸매 완벽 세공
“백제 7세기 가장 아름다운 보살상”
‘국보 293호’와 함께 1907년 부여서 출토
1920년대 일본인 매입, 반출 뒤 ‘베일’
소장자 고심 끝 공개…환수 절호의 기회
특별예산 편성 등 범정부 계획 세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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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내 학계가 일본에서 소재를 확인한 백제금동관음보살입상의 전신상. 보관을 쓰고 자비롭고 인자한 표정을 지은 머리 부분과 천의를 두르고 영락 등의 장식을 걸친 상하반신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한국 불교미술의 최고 걸작이다. 문화유산회복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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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아름다운 ‘백제의 미소’를 찾았다. 한국 미술사 최고의 걸작으로 꼽혔으나 1907년 충남 부여에서 출토된 뒤 일본에 반출돼 90여년간 공개되지 않았던 백제 금동관음보살입상의 소재가 최근 일본에서 확인됐다.
문화유산회복재단(이사장 이상근)은 이 관음상을 소장해온 일본의 한 기업인이 지난해 12월 도쿄를 방문한 한국미술사학회의 최응천(동국대), 정은우(동아대) 교수에게 불상을 공개했으며 두 교수는 이 관음상이 진품임을 공식 확인했다고 3일 <한겨레>에 밝혔다.
7세기 전반에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이 불상은 높이 28cm로, 머리에 보관을 쓰고 왼손에 보병을 든 관음보살이 당당하게 서있는 자태를 형상화하고 있다. 인자한 미소를 띤 표정, 어깨·허리 등을 살짝 비튼 자세, 천의를 두르고 구슬장식(영락)을 걸친 모습 등이 완벽한 조화와 미감을 보여준다. 학계에서는 국보 78호·83호 반가사유상, 국보 287호 백제금동대향로와 맞먹는 명품으로 평가하고 있다.
한 농부가 발견한 이 불상은 1922년 일본인 이치다 지로에게 팔려 해방 직후 그가 일본에 갖고 간 것으로 전해진다. 재단 쪽은 “70년대 이치다한테서 불상을 사들인 현 소장자를 3년 전 찾아내 협의한 끝에 지난 연말 동의를 얻어 공개하게 됐다”며 “소장자는 불상이 귀환했으면 좋겠다는 뜻도 내비쳤다”고 전했다. 불교미술사가인 김리나 홍익대 명예교수는 “반드시 돌아와야 할 한국 미술의 대표작이다. 정부와 학계가 환수를 위해 모든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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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충남 부여 규암리에서 함께 발견된 국보 293호 백제금동관음보살입상(높이 21.1cm). 원래 일본인 소장품이었으나 해방 뒤 압수해 현재 국립부여박물관이 소장, 전시하고 있다. ‘미스 백제’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일본에 소장된 금동관음상과 달리 대좌(받침대)가 붙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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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금동관음보살입상의 뒷모습. 다른 삼국시대 불상들은 뒤태가 대개 평면적이거나 거칠게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불상은 이례적이라고 할 만큼 옷주름 음영이나 몸체의 굴곡까지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다. 특히 하반신 옷주름은 국보 83호 금동반가상의 옷주름과 빼어닮아 학계의 오랜 논란거리인 국보 83호의 국적 문제를 푸는데 단서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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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금동관음보살입상의 상반신 모습. 가슴부분 띠장식에서 보이는 구름무늬, 당초무늬는 백제금동대향로(국보 287호)의 뚜껑과 받침대 사이에 있는 무늬와 똑같다. 같은 장인이나 그가 일했던 공방에서 제작됐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문화유산회복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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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일본학자 세키노 다다시가 펴낸 <조선미술사>에 실린 백제금동관음보살입상의 옛 흑백사진. 지난해 12월 불상 실물이 일본 도쿄에서 공개되기 전까지 학계에 알려졌던 몇안되는 사진들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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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상의 왼손 부분. 천의를 손목에 휘감은 채 주둥이가 구부러진 정병을 들고있다. 구름무늬 새겨진 가슴부분의 띠장식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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