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12.06 18:34
수정 : 2005.12.06 18:34
초서연구가 노승석씨 원본 판독 오류 수정 8500여자 추가 완역
기존 번역본의 잘못을 바로잡은 이순신의 <난중일기> 번역본이 나왔다.
초서연구가 노승석씨는 기존 번역서에서 되풀이해온 오류 100여곳의 잘못을 바로잡고 8500여자를 새롭게 번역하여 <난중일기>를 완역해 냈다. 이 작업은 초서로 흘려쓴 <난중일기> 원본에서 글자를 판독하여 직접 다시 번역함으로써 가능했다.
<난중일기>는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중 경험과 느낌을 기술한 일기로 전황 및 이순신의 됨됨이를 보여주는 기록이다.
<난중일기> 탈초(필기체인 초서에서 정자체인 해서로 옮겨적기)는 정조 때인 1795년 (<충무공전서>), 1935년(조선사편수회의 <난중일기초>) 두 차례 있었다. 전자는 원본 내용과 상당한 차이가 있고, 후자는 전자보다 낫지만 오류가 적지 않았으나 옳거니 여겨왔다.
이번에 노씨가 인명과 지명을 상당수 바로잡아 역사적 사실을 바로 세우는 데 일정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인 것을 보면 병신년 1월7일치 ‘부산에서 왔다(自釜山出來云)’에서 부산이 그동안 애산(厓山)으로, 무술년 9월20일, 11월11일, 11월12일 묘도(猫島·전남 여수시 묘도동)가 유도(柚島·여천군 율촌면 송도)로 잘못 알려져 있음을 밝혀냈다. 또 병신년 3월11일치 ‘無上欣田子’에서 ‘無上(무상)’을 ‘물긷는 군사’가 아닌 ‘돛대를 조정하는 선원’으로, 9월11일치 이순신과 함께 술을 마신 기생을 내산월(초두아래올래山月)이 아닌 세산월(歲山月)로 바로잡았다. 정유년 7월11일치에서는 ‘종이로 말의 뱃대끈을 만들었다(馬帶以紙造)’가 ‘말가죽을 종이로 만들었다(馬革以紙造)’로 엉뚱하게 되어있음도 발견했다.
그러나 계사년 5월10일치 ‘늦게 작은 봉우리에 올라가 앉았다(晩上坐小頂)’로 알려진 구절에서 ‘소정(小頂)’을 ‘수정(水頂)’으로 보아 제주도 남제주군 대정현 소재의 수정악으로 비정하는 잘못을 보였다. 노씨는 일부 오류가 발견돼 3쇄에서 고칠 예정이라고 밝혔다. 동아일보사 펴냄. 1만5000원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